'크림슨 피크'의 주인공 미아 와시코브스카. 사진 유피아이코리아 제공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 ‘크림슨 피크’
대저택서 마주친 피투성이 유령
그보다 더 잔혹한 인간의 욕망
대저택서 마주친 피투성이 유령
그보다 더 잔혹한 인간의 욕망
<악마의 등뼈><판의 미로>를 만든 길예르모 델 토로 감독의 영화를 ‘다크 판타지’물이라 부른다. 강렬하고 아름다운 비주얼을 통해서 뒤틀리고 잔혹한 세계를 묘사하기에, 보통의 판타지와는 결을 달리 한다. <크림슨 피크>는 최근 코믹스를 원작으로 한 <헬보이>나 로봇괴수물 <퍼시픽 림>등 다른 흐름의 작품에 주력하던 감독이 오랜만에 자신의 본령으로 돌아오는 영화로 기대를 모은다.
다크 판타지물은 소설에서 시작되어 게임과 만화 등으로 장르팬을 만들어왔다. 그런데 헐리우드 상업 영화에서 본격 다크 판타지를 만든다면 사정이 좀더 복잡해진다. 전세계 수천만~수억명이 보는 영화에 어떻게 주인공마저 악에 압도당하는 철저한 다크 판타지의 세계관을 심을 것인가. <크림슨 피크>에서 길예르모 델 토로는 이 작업을 시도했다.
유령이 나오는 이야기를 쓰고 있는 소설가 지망생 ‘이디스’(미아 와시코브스카)는 영국 귀족 ‘토마스’(톰 히들스턴)와 사랑에 빠져 영국으로 향한다. 토마스는 하얀 눈이 녹을 때마다 드러나는 붉은색 땅, 크림슨 피크 위에 지어진 오래된 성에서 누나 ‘루실’(제시카 차스테인)과 살고 있다. 이곳에서 이디스는 피투성이 유령과 마주치고 유령보다 더 무서운 인간의 잔혹함을 마주한다.
감독은 <푸른 수염>같은 고딕 호러 소설, 초자연적인 존재를 그린 동화, 그리고 스릴러 영화의 3가지 요소를 모두 포함한 영화를 만들기를 희망했다고 한다. 그가 택한 방법은 시대와 이미지의 ‘중첩’인 듯 하다. 1900년 초 낭만적인 세계관을 가진 여주인공은 빅토리아 풍의 드레스를 입고 낭만주의 시대의 빛으로 반짝인다. 감독과 배우들은 달빛이 비치는 풍경을 표현했던 빅토리아 시대의 화가 그림쇼, 낭만화 풍의 판화를 제작한 캐스퍼 데이비드 프레드리히, 피라네시 등의 그림과 <프랑켄슈타인>, <우돌포의 미스터리>, <말피 공작부인>같은 고딕 소설과 고전화를 두고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고 한다.
주인공이 열쇠를 찾고, 트렁크를 열고, 미로를 빠져나오는 구성은 다크 판타지 게임과도 비슷하다. 또 토마스의 대저택은 어쩐지 팀 버튼의 영화 <가위손>의 신비한 성을 연상시키는데, 팀 버튼과 길예르모 델 토로는 모두 이탈리아 호러 영화의 거장 마리오 바바의 영향을 받았다. 다만 <크림슨 피크>의 줄거리의 매력은 <가위손>에 못미친다.
남은주 기자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