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30일 밤 10시. 서울 종로구 소격동 씨네코드 선재에서 영화 <마스터>가 끝나고 스크린에 제작 참여자들의 이름이 올라가기 시작했다. 어둠속에서 엔딩 크레딧이 나오는 5분 동안 누구 하나 자리를 뜨지 않던 230명 관객들은 음악이 끝나자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영화 <마스터>는 이날의 마지막 영화면서 씨네코드 선재의 마지막 상영작이 됐다. 이날은 1995년 서울 대학로에 문을 연 예술영화전용관 1호 동숭씨네마텍에서 출발한 씨네코드 선재가 문을 닫은 날이다. 공교롭게도 영화의 마지막 배경음악은 페티 페이지가 불렀던 ‘체인징 파트너스’였다. 노래처럼 예술영화 관객들은 이제 파트너를 바꾸어야 하는 것일까? 불켜진 영화관에 남아 눈물을 닦는 관객들도 있었다.
20년간 독립예술영화의 비빌 언덕
경영난 위기에도 힘들게 버텼지만
11월30일 결국 마지막영화 상영
롯데·CGV 등 다양성 영화관 진출
관객 싹쓸이해 독립영화관 몰락
영진위까지 검열성 지원으로 가세
30일 씨네코드 선재 마지막 상영을 마친 뒤 극장을 빠져나가는 관객들.
■ ‘천만 시대’ 작은 영화들은 기근 씨네코드 선재가 걸어온 길은 우리나라 독립예술영화관의 역사 그대로다. 경영난에 시달리던 동숭씨네마텍은 2000년 시설과 프로그램을 정비해 하이퍼텍 나다로 다시 태어났지만 결국 지난 2011년 씨네코드 선재로 또 한 번 이름과 장소를 바꾸어야 했다. 그리고 이번에 씨네코드 선재도 하이퍼텍 나다 때처럼 건물 리모델링에 밀려 폐관이 결정됐다. 아트나인 정상진 대표는 “영화관의 개성이나 역사보다는 접근성·시설같은 멀티플렉스의 논리가 앞선 관람 문화에서는 임대료나 인건비를 제대로 감당할 수 없는 독립예술영화관은 점점 하락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아트하우스 모모를 운영하는 영화사 백두대간 최낙용 부사장도 “극장주가 손해를 감당하면서 극장을 지키는 지금까지의 독립예술영화관 운영방식은 사업이라기보다는 문화운동과도 같은 것이었다. 씨네코드 선재 폐관은 그 시대가 끝났다는 신호로 보인다”고 했다.
다양성 영화의 창구 노릇을 하면서 비싼 임대료를 감당해야 하는 독립예술영화 전용관의 이중고는 하루이틀이 아니지만 올해 들어 ‘위기’라는 표현이 나오는 것은 쏠림 현상이 심화됐기 때문이다. 전국 다양성 영화관 58곳 중 롯데나 씨지브이 계열 영화관이 21곳이며 이들이 다양성 영화 관객 대부분을 가져간다. 서울 광화문에 있는 예술영화관 씨네큐브는 지난해까지만 해도 해마다 10% 넘는 관객 증가세를 보여왔지만 올해는 하락세로 바뀌었다. 영화관 쪽은 “전용관은 상영작을 보고 찾는 관객들이 대부분인데 올해 천만 관객을 모은 한국영화가 2편이나 나오면서 관객들은 대형 영화에 쏠리고 작은 영화는 기근이 심해진 탓”이라고 풀이했다.
영화진흥위 보고서를 보면, 2014년 다양성 영화로 선정된 영화들 중 개봉 영화는 모두 367편으로, 전체 개봉 영화 1095편 중 약 34%였다. 다양성 영화 관객은 1428만명으로 전체 관객(2억1506만명)의 7%에 채 못미쳤다. 그나마 2014년엔 관객 400만명을 동원한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감독 진모영)나 340만명이 본 <비긴 어게인>(감독 존 카니) 등 성공한 저예산 영화들이 있었다. 올해는 2014년 12월31일 개봉한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감독 김성호)의 30만명이 최고다. 지난 11월30일까지 올 한 해 다양성 영화 개봉작은 320편, 관객은 643만명이다. 아직 집계되지 않은 각종 영화제나 기획전 숫자를 합쳐도 지난해의 절반을 넘을 수 있을지 의심스러운 숫자다. 저예산 영화 손익분기점으로 평가되는 관객 1만명을 넘긴 한국독립영화는 5편에 불과하다.
■ 영진위 ‘이상한 전용관 정책’ 영화진흥위원회는 불난 집에 기름을 붓고 있다. 2002년 시작된 다양성 영화관 지원 사업을 올해 들어 중단하고, 앞으로는 위탁단체인 사단법인 한국영화배급협회가 선정한 48편 중 24편 이상을 상영하는 상영관 중에서 골라 지원금을 제공하겠다고 밝혔다. 반발은 거세다. 지난 11월26일 한국독립영화협회는 성명을 발표하고 독립영화감독 120인의 영진위 예술영화 유통배급지원 사업 불참을 선언했다.
선언문에서 민용근 감독은 “다양한 영화를 자유롭게 선정하고, 자신의 극장에 맞는 방식으로 영화와 관객을 만나게 했던 독립예술영화관이 지금의 (독립영화) 저변 확대를 이끌어낸 힘”이라며 “영진위의 새 정책은 검열에서 자유롭고자 하는 독립예술영화관을 위기에 놓이게 하는 정책”이라고 비판했다. 고영재 한국독립영화협회 대표도 “영진위는 독립영화 지원금액은 몇년째 그대로 두면서 한국 독립영화를 지원하겠다는 명목으로 상영작을 정부 입맛대로 편성하고 있다. 대중성 있는 영화는 멀티플렉스가 독점하고 정치적 주장이 강한 영화는 정부가 상영을 막는다면 결국 작은 영화, 영화관의 정체성이 위태롭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영진위의 정책 변화가 가뜩이나 어려운 독립예술영화관의 경영 위기를 가중시킬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원승환 ‘독립영화전용관 확대를 위한 시민모임’ 이사는 “최근 독립예술영화전용관이 지역이나 협동조합에서 대안을 찾아가는 국면이었는데, 새 정책이 자라나는 영화관을 틀어막는 격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글·사진 남은주 기자 mifoco@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