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글혼’ ‘사우스포’ 이어
‘파더 앤 도터’ 10일 개봉
버림받거나, 가족을 버린
아버지들의 절망과 분투
‘동화’ 같은 결말 아쉬워
‘파더 앤 도터’ 10일 개봉
버림받거나, 가족을 버린
아버지들의 절망과 분투
‘동화’ 같은 결말 아쉬워
12월 극장가가 ‘아버지의 사랑’으로 눈물 바다다. 3일 딸을 위해 링에 서는 한 권투선수 이야기를 담은 영화 <사우스포>(감독 앤트완 퓨콰)가 개봉한 데 이어 10일엔 아버지에 대한 기억을 그린 <파더 앤 도터>(감독 가브리엘 무치노)가 상영을 시작한다. 11월26일 개봉한<맹글혼>(감독 데이비드 고든 그린)은 가족과 소통하지 못한 채 고립된 아버지를 그린다. 절망하는 아버지, 분투하는 아버지, 화해를 청하는 아버지의 모습들이다. 겨울이면 모성애, 부성애로 추위를 녹이는 영화들이 트렌드처럼 찾아오지만 올겨울 그들의 분투는 더욱 눈물겹다. 언제 깨질지 모를 위태로운 요즈음 아버지의 위상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 가족을 잃어버린 아버지들
<사우스포>의 주인공 빌리 호프(제이크 질런홀)는 고아원 출신으로 라이트 헤비급 복싱 세계챔피언이 된 입지전적 인물이다. “멋진 집, 당신의 이 예쁜 드레스, 레일라(우나 로런스)의 사립학교비, 다 내가 싸워서 번 거야. 주먹으로 벌어들인 거라고.” 전형적인 자수성가형 아버지의 대사다. 그러나 성질을 참지 못하고 주먹을 휘두른 날 그는 모든 것을 잃는다. 그리 큰 잘못이 아닌데도 부인이 죽고, 파산하고, 딸을 빼앗긴다는 설정은 지금 아버지들의 박탈감을 대변하는 듯하다.
<파더 앤 도터>에도 모든 것을 잃은 아버지가 나온다. 퓰리처상 수상 작가인 제이크(러셀 크로)는 사고로 부인을 잃고 그 후유증으로 요양원에 들어간다. 퇴원하고 나니 이미 세상은 예전 같지 않지만 그는 남아 있는 유일한 가족 딸 케이티(아역 카일리 로저스)와 헤어지지 않기 위해 몸부림친다.
두 영화 모두 법원에서 자격 없는 아버지라는 판정을 받는다면 자식과 헤어질 수밖에 없다는 미국적 현실에 바탕을 두고 있지만, 실상 아버지가 언제든 집 밖으로 쫓겨날 수 있는 존재가 되었다는 위기감은 미국만의 것이 아니다. 일본 정신과 의사 오카다 다카시는 <아버지 콤플렉스 벗어나기>에서 사회적인 현상으로 ‘아버지 부재 증후군’을 진단한다. 책에 따르면 아버지 부재 가정의 비율이 미국은 30%, 일본은 10%다. 한국이라고 사정이 크게 다를 것 같지는 않다.
■ ‘아버지의 귀환’이라는 동화
영화 속 가족을 잃어버린 아버지들은 혼란→분노→무기력의 정체성 상실 단계를 밟아간다. <맹글혼>에서 홀로 외롭게 살아가는 맹글혼(알 파치노)은 이미 가족 밖으로 밀려난 지 한참 되어서 사랑하는 법조차 잊어버린 사람처럼 보인다. 아들과 어린 손녀에게 다가가려 해보지만 결국 상처만 안긴다. 그는 좋은 아버지, 괜찮은 남자였던 시절에 사랑했던 여자 클라라에게만 진심을 털어놓으려 한다. 현실 인물들과는 소통하지 못하면서 죽은 사람인 클라라에겐 계속 편지를 쓰는 그의 모습은 소통의 다리를 잃어버린 남자들을 대변한다. 경제적 역할을 주로 담당하며 어머니를 통해 자식을 대리 양육하던 경제성장기의 가부장은 사라졌다. 영화는 ‘대체 가능한 존재’가 된 아버지들의 박탈감과 슬픔을 묘사하며 자식과 직접적 스킨십을 통해 살아남을 준비를 하는 아버지들의 상태를 보여준다.
버림받은 아버지들, 혹은 가족을 버린 아버지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 영화에서 제시하는 방법이 아버지의 사회적 재기라는 점은 아이러니하다. <사우스포>에서 아버지는 어린 딸의 원망을 들으며 다시 샌드백을 두드린다. <파더 앤 도터>의 아버지도 비평가들의 혹평을 딛고 새로운 작품을 쓰기 시작한다. 뼈를 깎고 살을 저며 다시 이상적인 아버지가 되어야만 가족을 찾을 권리를 얻는다는 뜻일까?
올겨울 아버지들의 영화는 추락한 아버지의 현실에서 출발하면서도 환상에 기댄다. <사우스포>와 <파더 앤 도터>모두 안타까운 부성애로 가슴을 녹이면서도, 후반부 현실감을 놓친다. 사회적 가능성이 희박한 ‘동화’이기 때문이다. 지금 현실의 아버지들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맹글혼>주인공처럼 너무 늦기 전에 소통하고 사랑하는 법을 배우는 것밖에 달리 없을 듯하다.
남은주 기자 mifoco@hani.co.kr
영화 <사우스포>. 사진 씨네그루(주)다우기술 제공
영화 <파더 앤 도터>. 사진 (주)영화사 빅 제공
영화 <맹글혼>. 사진 박수엔터테인먼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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