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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장면 하나로도 영화는 눈빛을 바꾼다

등록 2015-12-24 21:09수정 2015-12-25 09:43

‘또 하나의 영화’ 감독판·확장판 왜 만들까
영화 <내부자들>에 50분이 더 붙은 확장판 <내부자들: 디 오리지널>이 31일 개봉한다. 극장에서 상영되지 않았던 촬영본을 더해 재편집한 영화를 감독판, 혹은 확장판이라고 부른다. 무려 3시간짜리 확장판은 한국영화에선 처음 있는 일이지만 감독판이나 확장판 자체는 꾸준한 흐름이다. <놈놈놈>을 국내용과 국제용 두가지로 만들었던 김지운 감독은 부산영화제에선 <악마를 보았다>감독판을 상영했다. <내 머리속의 지우개><슈퍼맨이었던 사나이><박쥐><댄서의 순정>등도 인터넷으로 감독판을 상영하거나 디브이디로 나왔다. 시간이나 등급에 제한 없이 자신의 이야기를 완결하고 싶은 감독의 욕망, 더 듣고 싶은 관객의 바람이 만나 영화의 여러가지 버전을 낳는다. 최근엔 <내부자들: 디 오리지널>처럼 새 개봉영화에 이어 감독판이나 확장판을 재개봉하는 흐름이 생겨나고 있다. 막바지 관객수를 늘리기 위한 상술이라는 비판이 따르기도 한다. 그들이 굳이 감독판이나 확장판을 만드는 속사정을 들여다본다.

시간·등급 제한 받는 극장판 비해
감독의 의도 오롯이 살릴 수 있어
삭제된 장면 살리거나 되레 빼기도

<써니> 15세 관람가 위해 잘랐던 욕설 장면 살려 ‘19금’ 복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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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늑대소년> 슬픈 결말에 관객들 울상…확장판은 ‘해피엔딩’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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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인공들, 사랑하게 해주세요”

2009년 ‘못다 한 이야기’라는 부제를 달고 개봉한 <국가대표>를 시작으로 <최종병기 활>(2011) <써니>(2011) <늑대소년>(2012) <은밀하게 위대하게>(2013) 등이 지금까지 감독판이나 확장판으로 재개봉한 한국영화들이다. 대부분 600만~700만 이상 관객을 동원한 작품들이 처음 개봉한 지 2~3개월 안에 다른 버전을 내놓곤 했지만 확장판의 흥행은 원작품과는 또 다르다. 이 중 확장판에서 가장 많은 41만4083명의 관객을 동원한 <늑대소년 확장판>은 순이(박보영)가 할머니가 되어서야 늑대소년(송중기)과 만나는 결말을 안타까워하는 관객들 때문에 만들어졌다. 감독은 애초 늑대소년을 할머니가 되어서 만난다는 결말과 사랑할 때의 그 모습 그대로 다시 만난다는 결말 두가지를 찍었다. 처음 상영할 때 슬픈 결말을 택했는데, 팬들의 바람이 행복한 결말을 다시 살려낸 것이다.

<국가대표>도 관객 700만명을 넘기면서 팬 서비스로 ‘완결판-못다 한 이야기’를 내놓았다. 등장인물들의 캐릭터를 좀더 생생히 묘사하고 전체적인 구성을 다듬은 것이 15분 분량을 재편집하고 7분을 새로 추가해 만든 완결판이다.

<국가대표> 애국가 부르는 장면 삭제…남루한 인물에 눈길 집중
<국가대표> 애국가 부르는 장면 삭제…남루한 인물에 눈길 집중

■ “내 영화를 살려내라”

보통 영화는 상영시간 2배 정도로 완성컷을 추려낸뒤 3시간 정도로 줄였다가 120분 안팎으로 최종 편집하는데, 감독판이나 완결판은 보통 이 3시간짜리에서 나온다. 그런데 김용화 감독은 “<국가대표 완결판>은 오히려 일부 장면을 빼거나 넣으면서 좋아졌다. 특히 애국가 부르는 장면을 빼면서 사뭇 다른 영화가 됐다. 원래 의도는 처참한 상황에서도 누군가 애국가를 부르니까 따라 부르는 장면에서 역설적인 느낌을 주자는 것이었는데 극장에선 애국심을 고취하는 장면처럼 보였다. 한마디로 ‘국뽕’ 같았다. 원래는 애국가를 부를 때 태극기가 툭 떨어지는 장면도 있었는데 투자사 쪽에서 오해의 여지가 있다고 빼자고 했다. 감독판에선 아예 애국가 장면을 없애니까 남루한 아이들 쪽으로 더 눈길이 많이 가고 좋아졌다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이와는 반대로 <써니>는 심의 때문에 잘려나갔던 부분을 감독판으로 복원했다. 여고생 이야기를 다룬 <써니>가 폭력적이라는 이유로 청소년 관람불가 판정을 받자 제작사와 감독은 문제가 될 만한 장면을 다 잘라내고 다시 심의를 받았다. 그때 만약 <써니>가 관객 300만을 넘는다면 원래 영화를 상영하기로 약속했단다. 감독이 15세 관람가 등급을 얻기 위해 잘랐던 장면들은 아이들이 새엄마나 선생님한테 욕하며 대드는 장면과 선생님이 아이들을 때리는 장면이었다. 강형철 감독은 “편집을 할 땐 한 프레임 자르는 것조차 고민이다. 1초도 안 되는 시간을 자르면서 감정들이 달라지는 것이 느껴진다. 심의를 의식하면서 영화의 뉘앙스가 완전히 바뀌었다”고 기억한다.

<내부자들> 무려 50분 더 붙은 확장판…완전히 새로운 결말 준비
<내부자들> 무려 50분 더 붙은 확장판…완전히 새로운 결말 준비

■ “이게 진짜 하고 싶던 말”

영화 <내부자들>은 안상구(이병헌)가 미래자동차 비자금 파일을 들고 기자회견을 여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그때부터 130분 동안 영화는 반전을 거듭하다 깡패 안상구와 우장훈 검사(조승우)가 권력에 한 방 먹이면서 끝난다. <내부자들: 디 오리지널>은 안상구에게 어느 기자가 “진짜 이유가 뭔가요?”라고 묻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마지막에 새로운 결말이 생겼다. 영화는 관객들에게 “당신들이 원하는 것은 진실이 아니라 누굴 씹어대면서 스트레스를 풀곤 잊어버리는 것 아니냐”고 묻는다. <내부자들>은 이미 이 영화를 본 650만 관객에겐 희망으로 끝난 영화였다면, ‘디 오리지널’만 볼 관객들에겐 권력자의 여유있는 웃음으로 기억될지 모른다.

23일 감독판 언론시사회 뒤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우민호 감독은 “(영화에서만 정의를 찾는 우리들의 모순을 짚음으로써) 이 영화가 경각심을 심어주길 바랐는데 결과적으론 이 영화를 보는 대중들에게 회의감과 절망감만 주지 않을까 해서 편집했다”는 사정을 밝혔다. 결말만이 원래 감독이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아닐 수 있다. 확장판엔 “있는 사람에게 붙어서 쪽은 다 파는 대한민국 검사”나, 검찰과 기업을 중재하는 기자 등 권력에 빌붙어 권력을 가꾸는 인물들에 대한 적나라한 묘사가 덧붙었다. 이런 말을 잘라냈다는 것은 대중영화가 성공하려면 누군가의 기분을 거스르거나 노골적인 비판을 삼가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외압이나 외압을 의식한 자발적인 검열이 이어진다면, 당분간 한국영화에선 감독판이나 확장판이 원래 하고 싶던 말을 뒤늦게 토로하는 창구 노릇을 할 수밖엔 없을 것 같다.

남은주 기자 mifoco@hani.co.kr, 사진 각 제작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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