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년차 연기자 윤다경(43)은 크고 작은 영화에서 존재감을 강하게 드러내온 배우다. 이번에 영화 <인 허 플레이스>로 아부다비 영화제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사진 홀리가든 제공
영화 ‘인 허 플레이스’의 윤다경
“너 죽어야겠다!” <범죄의 재구성>에서 자신을 속인 제비의 목을 찌르던 그 마담. “어차피 죽으면 썩을 몸, 맘껏 불태울 거야.” <사물의 비밀>에서 두고두고 기억에 남을 만한 정사신을 보여준 그 횟집 주인. 이번엔 중산층 부인이 되었는데 그 역도 맞춘 듯 꼭 맞았다. 배우 윤다경은 지난 17일 개봉한 영화 <인 허 플레이스>로 ‘2014 아부다비 국제영화제 뉴허라이즌 경쟁부문’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십대 소녀가 낳은 아이를 입양하는
강남 중산층 여성의 복잡심경 연기
2014 아부다비영화제서 여우주연상 “몸 움직여 공간 장악해” 평 들어
영화 ‘나를 잊지말아요’ ‘해빙’으로
내년에도 자신의 자리 만들어낼 것 <인 허 플레이스>에서 그가 맡은 역은 ‘여자’. 영화가 시작하면 고급스러운 자동차를 타고 남편과 함께 어떤 시골집을 찾아가는 ‘여자’의 모습이 나온다. 여자가 찾아간 집엔 임신한 십대 소녀와 그 어머니가 살고 있다. 영화가 진행되면서 관객들은 자연스레 여자는 십대 소녀가 아이를 낳으면 바로 데려가기 위해서 함께 지내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게 된다. 입양 계약으로 엮인 ‘여자’ ‘소녀’ ‘엄마’라는 세 여자 주인공의 미묘한 감정적 긴장이 영화의 전반적인 정서를 형성한다. “나한테 올라오는 알 수 없는 감정을 막지 않으면서도 일정한 상태로 유지한다는 게 어려운 일이었는데 스릴 있었어요.” 21일 서울 압구정씨지브이 앞에서 만난 윤다경은 카메라가 돌아가면 실제 여자의 감정 그대로 소녀(안지혜)와 어머니(길해연)를 보게 되는 신기한 경험을 했다고 말했다. 영화에선 특히 소녀와 함께 목욕하는 장면에서 여자의 눈빛을 통해 드러났던 감정이다. 경탄과 질투, 젊음을 얕잡아보면서도 경외하는 마음. 이 복합적인 감정은 윤다경 자신이 실제로도 품었던 것이라고 털어놓았다. 윤다경은 이화여대 독문과를 나와 1997년 유씨어터의 실험극 <봄>(임재찬 연출)으로 배우 생활을 시작했다. 영화는 고은기 감독의 <액체들>이 데뷔작이다. 지금까지 25편이 넘는 영화에 출연했다. 올해만도 <그놈이다><특종: 량첸살인기>등 3편의 영화에 출연했다. 조연으로 출연하더라도 한가지 캐릭터로만 소비되지 않는 존재감 강한 여자 배우다. “그런데 갑자기 아팠어요. 2013년 갑자기 병명도 알 수 없는 병에 걸려서 카메라 앞에 설 수 없을 만큼 피부가 상했어요. 내가 과연 다시 연기할 수 있을까 하는 상황에서 <인 허 플레이스>대본을 들고 알버트 신 감독님이 찾아왔어요.” 캐나다 출신 한국인인 알버트 신은 <사물의 비밀>을 보고 자신의 첫 장편 주인공으로 윤다경을 캐스팅했다. 알버트 신 감독은 “얼굴만으로 연기하는 게 아니라 몸을 움직여서 자신이 있는 공간을 장악하는 느낌이 인상 깊었다”며 “병이 나을 때까지 촬영을 접고 기다리겠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필사적으로 노력한 덕분인지, 아니면 배우로서 무한한 신뢰를 받고 있구나 느끼며 자존감을 회복한 덕분인지 5개월 뒤 완쾌했고 촬영은 시작됐다. <인 허 플레이스>는 산세바스티안 국제영화제와 토론토 국제영화제 등에 초청되고 타이베이 국제영화제 등 여러 곳에서 상을 받았다. 하지만 윤다경이 이 영화를 “제2의 생명을 준 영화”로 꼽는 이유는 수상보다도 배우로서 큰 위기를 겪고 돌아와 찍은 작품이기도 하고, 다른 작품에선 느껴보지 못했던 몰입과 공감 경험을 했던 영화이기도 한 때문이다. “어쩌면 (나도 여자와) 비슷해요. 아티스트로 산다고 마흔을 넘겨 결혼하고 아이 낳는 것도 미뤄왔는데 어린 배우를 볼 때 예쁘기도 하고 서글프기도 하고.” 그리고 부잣집에 시집가서 아이를 낳기 위해 애쓰는 친구들의 모습도 모델이 됐다. “언제나 최선을 다하고 내가 좋은 사람이라고 믿으면 돼.” 영화에서 여자는 시골 철물점집 딸로 태어나 강남 중산층으로 살아가는 자신을 강조하지만 공허하기 짝이 없다. 윤다경은 “안정된 위치를 차지하고 살아가는 여자들이 그 위치를 유지하기 위해 견뎌야 하는 고독을 느꼈다”며 자기 또래 여자들의 처지와 감정을 예민하게 의식하고 연기했다고 한다. 작품에 따라 변하는 이 예민한 감정선을 지니고 20일까지 두산아트센터에서 상연했던 연극 <인코그니토>에서는 1인5역으로 연기했다. 이 연극은 내년에도 앙코르 공연될 예정이다. 2016년에 개봉할 <나를 잊지 말아요>와 <해빙>에도 그가 있다. 배우는 자신이 있을 자리를 만들어내는 사람이다. 남은주 기자 mifoco@hani.co.kr
강남 중산층 여성의 복잡심경 연기
2014 아부다비영화제서 여우주연상 “몸 움직여 공간 장악해” 평 들어
영화 ‘나를 잊지말아요’ ‘해빙’으로
내년에도 자신의 자리 만들어낼 것 <인 허 플레이스>에서 그가 맡은 역은 ‘여자’. 영화가 시작하면 고급스러운 자동차를 타고 남편과 함께 어떤 시골집을 찾아가는 ‘여자’의 모습이 나온다. 여자가 찾아간 집엔 임신한 십대 소녀와 그 어머니가 살고 있다. 영화가 진행되면서 관객들은 자연스레 여자는 십대 소녀가 아이를 낳으면 바로 데려가기 위해서 함께 지내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게 된다. 입양 계약으로 엮인 ‘여자’ ‘소녀’ ‘엄마’라는 세 여자 주인공의 미묘한 감정적 긴장이 영화의 전반적인 정서를 형성한다. “나한테 올라오는 알 수 없는 감정을 막지 않으면서도 일정한 상태로 유지한다는 게 어려운 일이었는데 스릴 있었어요.” 21일 서울 압구정씨지브이 앞에서 만난 윤다경은 카메라가 돌아가면 실제 여자의 감정 그대로 소녀(안지혜)와 어머니(길해연)를 보게 되는 신기한 경험을 했다고 말했다. 영화에선 특히 소녀와 함께 목욕하는 장면에서 여자의 눈빛을 통해 드러났던 감정이다. 경탄과 질투, 젊음을 얕잡아보면서도 경외하는 마음. 이 복합적인 감정은 윤다경 자신이 실제로도 품었던 것이라고 털어놓았다. 윤다경은 이화여대 독문과를 나와 1997년 유씨어터의 실험극 <봄>(임재찬 연출)으로 배우 생활을 시작했다. 영화는 고은기 감독의 <액체들>이 데뷔작이다. 지금까지 25편이 넘는 영화에 출연했다. 올해만도 <그놈이다><특종: 량첸살인기>등 3편의 영화에 출연했다. 조연으로 출연하더라도 한가지 캐릭터로만 소비되지 않는 존재감 강한 여자 배우다. “그런데 갑자기 아팠어요. 2013년 갑자기 병명도 알 수 없는 병에 걸려서 카메라 앞에 설 수 없을 만큼 피부가 상했어요. 내가 과연 다시 연기할 수 있을까 하는 상황에서 <인 허 플레이스>대본을 들고 알버트 신 감독님이 찾아왔어요.” 캐나다 출신 한국인인 알버트 신은 <사물의 비밀>을 보고 자신의 첫 장편 주인공으로 윤다경을 캐스팅했다. 알버트 신 감독은 “얼굴만으로 연기하는 게 아니라 몸을 움직여서 자신이 있는 공간을 장악하는 느낌이 인상 깊었다”며 “병이 나을 때까지 촬영을 접고 기다리겠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필사적으로 노력한 덕분인지, 아니면 배우로서 무한한 신뢰를 받고 있구나 느끼며 자존감을 회복한 덕분인지 5개월 뒤 완쾌했고 촬영은 시작됐다. <인 허 플레이스>는 산세바스티안 국제영화제와 토론토 국제영화제 등에 초청되고 타이베이 국제영화제 등 여러 곳에서 상을 받았다. 하지만 윤다경이 이 영화를 “제2의 생명을 준 영화”로 꼽는 이유는 수상보다도 배우로서 큰 위기를 겪고 돌아와 찍은 작품이기도 하고, 다른 작품에선 느껴보지 못했던 몰입과 공감 경험을 했던 영화이기도 한 때문이다. “어쩌면 (나도 여자와) 비슷해요. 아티스트로 산다고 마흔을 넘겨 결혼하고 아이 낳는 것도 미뤄왔는데 어린 배우를 볼 때 예쁘기도 하고 서글프기도 하고.” 그리고 부잣집에 시집가서 아이를 낳기 위해 애쓰는 친구들의 모습도 모델이 됐다. “언제나 최선을 다하고 내가 좋은 사람이라고 믿으면 돼.” 영화에서 여자는 시골 철물점집 딸로 태어나 강남 중산층으로 살아가는 자신을 강조하지만 공허하기 짝이 없다. 윤다경은 “안정된 위치를 차지하고 살아가는 여자들이 그 위치를 유지하기 위해 견뎌야 하는 고독을 느꼈다”며 자기 또래 여자들의 처지와 감정을 예민하게 의식하고 연기했다고 한다. 작품에 따라 변하는 이 예민한 감정선을 지니고 20일까지 두산아트센터에서 상연했던 연극 <인코그니토>에서는 1인5역으로 연기했다. 이 연극은 내년에도 앙코르 공연될 예정이다. 2016년에 개봉할 <나를 잊지 말아요>와 <해빙>에도 그가 있다. 배우는 자신이 있을 자리를 만들어내는 사람이다. 남은주 기자 mifoc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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