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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로봇이 묻는 가족의 의미

등록 2016-01-19 20:29

영화 ‘로봇, 소리’ 27일 개봉
모든 소리를 듣는 로봇과 함께
10년 전 실종된 딸 찾는 이야기
자녀를 소유하려는 한국 가정에
진정한 가족의 의미 되물어봐

대구지하철 참사·도감청 등
사회·국제적 문제 연상되기도
영화 '로봇, 소리'. 사진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영화 '로봇, 소리'. 사진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로봇 영화인지 가족 드라마인지 장르를 한정하기 어렵다. 이런 일이 일어난 게 10년 전인지 아니면 지금인지 시대를 짐작하기 어렵다. 27일 개봉하는 영화 <로봇, 소리>는 지나온 기억과 답해야 할 질문을 모두 안고 있는 간단치 않은 영화다.

“보호는, 좋은 것입니까?” 관객이 안게 될 첫번째 질문은 가족에 대한 질문이다. ‘소리’라는 로봇은 “내가 너를 보호해줄테니 너는 내 딸을 찾는 일을 도우라”는 김해관(이성민)의 말을 듣고 이렇게 되묻는다. 10년째 실종된 딸을 찾아다니는 해관은 딸 유주(채수빈 분)를 보호하지 못했다는 자책으로 삶이 엉망이 된 상태였기 때문에 로봇의 질문이 곱게 들릴 리가 없다.

대체 이 로봇은 왜 “딸이 살아있다고 확신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같은 상식적인 질문은 하지 않는지, 로봇의 질문은 관객들에게도 엉뚱하게 들린다. 그러나 세상의 모든 소리를 들을 수 있지만 그중 의미있는 소리에만 반응한다는 로봇은 가족의 의미를 다시 묻는 영화의 주제에 가장 가까운 의미있는 질문을 던진 것이다.

<로봇, 소리>는 ‘메이드 인 대구’ 영화라고 할 수 있다. 2003년 일어났던 대구 지하철 참사를 소재 삼고 있으며 아버지 역을 맡은 배우 이성민과 로봇의 행방을 추적하는 국정원 직원 역을 맡은 이희준의 고향조차 대구다. 대구 지하철 참사가 있었던 날 중앙로 역에서 열차를 탔던 딸은 돌아오지 않았다. 시신이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에 가족들은 딸이 정말 죽은 것인지 믿지 못한다. 딸이 실종되던 날 아버지는 음악을 하고 싶어하는 딸을 나무라는데, 자신과 다른 생각은 들으려고조차 하지 않는 아버지의 태도, 보수적이고 가부장적인 어법은 실은 경상도만의 것이 아니라, 보편적인 한국 가장의 모습일 터이다. 딸이 살아 있다고 믿고 10년째 찾아 헤맬 때조차 아버지는 여전히 자기 고집에 갇혀 있는 것처럼 보인다. 영화는 한국의 축소판과도 같은 대구의 한 가장이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실은 가족을 속박했다는 사실을 스스로 돌아보게 될 때까지 차근차근 이야기를 이어간다.

영화 '로봇, 소리'. 사진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영화 '로봇, 소리'. 사진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로봇이 발설한 진실은 그뿐만이 아니다. 이 로봇은 미국에서 쏘아올린 인공위성 일부가 인천 앞바다에 떨어진 것으로 통신 추적과 도·감청을 위한 기계다. 그 때문에 한국 국정원 직원들과 미국 국가안보국(NSA)까지 로봇을 찾아 증거를 없애는 데 혈안이 됐다. 국제적으로 논란이 됐던 미국 정보기관의 무차별 정보수집 사건을 소재로 끌어들인 것이다. 이 인공지능 로봇은 자신이 감청한 내용 때문에 가족을 잃은 아프가니스탄의 한 소녀를 찾으려 한다.

영화에서 비중있게 다뤄지는 대구 중앙로 지하철 참사 장면에서 관객들이 최근의 비극, 세월호 참사를 떠올리게 되는 것은 자연스럽다. 영화를 보고 나면 참사 이후에 남은 가족들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 또한 저절로 이어진다. 과연 이 ‘메이드 인 대구’ 영화가 던지는 참사 이후의 삶에 대한 질문에 대구 관객들은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

영화를 만든 이호재 감독은 <한겨레>와의 전화 통화에서 “영화는 에드워드 스노든이 미 국가안보기관의 도청 사실을 폭로하기 전에 기획됐지만 도·감청 문제든 민간인 폭격이든 공공연한 비밀이었기 때문에 특별히 더 상상력이 필요하지는 않았다”고 했다.

또 영화가 세월호를 떠올리게 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오래 전에 시나리오가 쓰여졌기 때문에 오히려 참사 이후 이대로 영화를 만들어도 될지 심각하게 고민했다”며 “그래도 비껴가지 않고 실제 사건을 그대로 묘사하려고 했으며, 그 사건을 관객들을 울리는데 함부로 이용하고 싶지도 않아서 기억하고 있다는 뜻만 표현하려고 했다”고 덧붙였다.

대구든 세월호든, 도감청이든, 국정원이든 모두 잊고 내 딸만 살릴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영화에서 가족의 안정과 순응만을 바라던 경상도 아버지는 자식을 응원하는 사랑도 있다는 것을 깨우친다. 이호재 감독은 이 영화를 “(로봇이라는) 이질적인 존재가 합세한 휴먼드라마”라고 정의했다. 하지만, 실제 사건과 로봇이라는 판타지, 가족이 모두 주인공이면서도 결코 합체하지 않는 이 영화의 정체는 ‘소리’라는 로봇 만큼이나 수수께끼다.

남은주 기자 mifoc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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