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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눈이 마주치던 순간, 사랑하게 됐다

등록 2016-01-26 20:28수정 2016-01-26 20:28

영화 ‘캐롤‘. 사진 시지브이 아트하우스 제공
영화 ‘캐롤‘. 사진 시지브이 아트하우스 제공
영화 ‘캐롤’이 품은 세가지 이야기
이 사랑이 무엇 때문에 시작됐는지, 그만 잊어버렸다. 누구의 사랑인지도 중요하지 않게 됐다. 우연히 만난 두 여자가 서로를 사랑하게 된다는 영화 <캐롤>(2월4일 개봉)은 관객들을 기이한 사랑의 경험으로 끌어들인다. 남의 사랑을 사랑하게 되는 경험을 하고 나선 묻지 않을 수가 없다. 우리를 이렇게 홀리는 그 감정의 정체는 무엇인가? <캐롤>의 사랑이 품고 있는 몇 가지 비밀이 있다.

벼락처럼 맘에 들어온 동성연인
퀴어영화로 한정할 수 없을 만큼
사랑, 그 아름다움에 관한 영화

■ 퍼트리샤 하이스미스 <소금값> 이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의 원작인 <소금값>은 뜻밖에도 ‘20세기의 에드거 앨런 포’로 불리는 스릴러 작가 퍼트리샤 하이스미스의 작품이다. <리플리> 등의 작가인 하이스미스는 일생에 단 한번 자전적 경험을 담은 사랑 이야기를 썼다. 1950년 크리스마스 시즌을 앞두고 백화점 장난감 가게에서 일하던 하이스미스는 금발머리에 모피코트를 입고 물건을 사러 온 어느 중년 여성에게 반하고 만다. 영화 속 우아한 손님 캐롤 에어드(케이트 블란쳇)에게 마음을 빼앗긴 젊은 여성 테레즈 벨리벳(루니 마라)이 하이스미스인 셈이지만, 실제론 둘 사이에 어떤 로맨스도 벌어지지 않았다. 작가는 그날 밤부터 이 소설을 쓰기 시작했고, 가게에서 일하다가 아이들로부터 수두가 옮는 통에 다시는 그 가게에 나가 일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 소설은 성애 장면에 대한 화려한 은유들, 두 여자의 심리에 대한 치밀한 묘사 등으로 지금까지도 인기를 얻고 있지만, 하이스미스는 클레어 모건이라는 필명으로 이 책을 발표한 뒤 1990년대가 되어서야 자신이 이 책을 썼음을 인정했다. 원작 소설을 한국어로 번역한 김미정씨는 “하이스미스가 자신에게 ‘레즈비언 소설 작가’라는 꼬리표가 붙는 걸 원치 않았기 때문”이라며 “1952년 이 소설을 쓸 당시 하이스미스는 서른살에 불과했고, (동성애를 범죄시하는) 시대 분위기에서 커밍아웃 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라 추측한다. <소금값>은 동성애를 다룬 소설 중 처음으로 행복한 결말을 택한 작품으로 꼽힌다. “두 사람은 천 개의 도시, 천 개의 집, 천 개의 외국 땅에서 함께 할 것이다. 그리고 천국이든 지옥이든 같이 갈 것이다.” 소설은 거침없이 선언하며 끝맺지만, 하이스미스는 1960년대에 들어서야 커밍아웃을 했다.

■ 케이트 블란쳇·루니 마라 사랑의 중심은 캐롤인가, 테레즈인가. 사랑하는 두 여자의 자아는 둘로 쉽사리 쪼개지지 않는다. 작가는 어느 땐 캐롤의 입을 빌어 “자신의 본성대로 살지 못하는 것이야말로 타락”이라고 한탄하고 또 다른 장면에선 테레즈의 목소리로 “저 모습이 바로 내가 사랑했던 캐롤”이라고 속삭인다.

캐롤은 부유한 중산층 사회의 일원으로 살아온 30대 중반 여성이다. 그가 먼저 테레즈를 알아보고 다가오는데 엘프 여신(<반지의 제왕>)이며, 여왕(<엘리자베스>)인 케이트 블란쳇의 우아하고 고혹적인 부탁을 거절할 방법은 없다. 루니 마라가 연기하는 테레즈는 마라가 연기했던 <밀레니엄:여자를 증오한 남자들>의 불안정한 영혼, <트래쉬>의 곧은 눈길을 지닌 여성 등을 합친 모든 것이다.

케이트 블란쳇·루니 마라가 열연
하이스미스가 자전적 경험 쓴
소설 ‘소금값’이 영화의 원작

■ <델마와 루이스>~<브로큰백 마운틴> 사랑의 문앞에서 망설이던 캐롤과 테레즈는 함께 여행을 떠난다. 두 여자가 여행을 떠남으로써 현실에서 벗어나려 시도하는 이야기는 다른 소설과 영화에서도 종종 반복돼온 설정이다. 문학평론가 테리 캐슬은 <소금값>(1952)이 나보코프의 <롤리타>(1955년)에 영향을 주었다고 분석한다. 2부로 나뉜 구성, 두 주인공이 미국을 횡단하는 자동차 여행을 떠나는 내용 등에서 두 작품은 유사한 구석이 있다. 리들리 스콧 감독의 <델마와 루이스>(1993)나 <몬스터>(2003)의 비극을 떠올리는 관객들은 그들의 여행을 불안하게 지켜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영화는 아름다움으로 관객들을 도취시킨다. 화려한 이미지는 톰 포드 감독의 <싱글 맨>(2010)에 견줄 만한 것이며, 이성애자들의 ‘거부감’도 쉽게 허물어뜨릴 만큼 아름다운 사랑의 경험은 <브로크백 마운틴>(2006) 이후 오랫만이다. 토드 헤인즈 감독은 “영화는 분명 레즈비언의 사랑을 그리고 있지만, 내가 정말 그리고 싶었던 것은 모든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두 사람’의 격정적인 사랑”이라고 말했다. 영화 속 테레즈도 “난 여자이고, 그저 여자를 사랑하는 것뿐”이라고 말한다. <캐롤>은 퀴어 영화로 한정할 수 없는, 순전한 사랑에 대한 영화다.

남은주 기자 mifoc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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