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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시인이 되고 싶어 부끄럽다던 당신

등록 2016-02-02 18:55

영화 ‘동주‘. 사진 ㈜루스이소니도스 제공
영화 ‘동주‘. 사진 ㈜루스이소니도스 제공
이준익 감독 저예산 영화 ‘동주’
윤동주와 그의 사촌 송몽규 열사
29살 짧은 인생 흑백화면에 담아
윤동주 시처럼 서정적이고 소박

과거에서 보낸 듯한 영화가 도착했다. 시인 윤동주(강하늘)와 그의 사촌 송몽규(박정민) 이야기를 그린 영화 <동주>(2월18일 개봉)다. 이준익 감독은 흑백필름으로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짧게 살다 간 두 청년을 그려낸다. 영화는 두 사람의 이야기를 특정한 시기에 갇히지 않는, 누구나 거쳐왔을 청춘의 보편적 서사로 빚어낸다.

이 영화가 만들어지게 된 사연을 먼저 살펴야 한다. 2013년 가을, 이준익 감독은 <프랑스 영화처럼>의 신연식 감독과 함께 출장을 다녀오다 문득 언젠가는 윤동주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고 싶다는 이야기를 꺼냈다. 이 감독은 그동안 윤동주의 시처럼 단아하고 소박한 이야기를 만들고 싶은데 시대물에 걸맞은 투자를 받다 보면 거창해지는 게 아닌가 하는 걱정에 구상을 혼자서만 간직하고 있었다. 저예산 독립영화를 여럿 선보여온 신 감독은 투자자 간섭 없이 감독이 만들고 싶은 이야기를 펼칠 수 있는 ‘노하우’를 알고 있었던 터. 결국 이 감독이 연출과 각색을, 신 감독이 각본과 제작을 맡기로 하고 그날 바로 모든 기획을 끝냈다.

영화 ‘동주‘. 사진 ㈜루스이소니도스 제공
영화 ‘동주‘. 사진 ㈜루스이소니도스 제공
적은 예산 때문에 영화는 19회차 짧은 촬영에 흑백으로 만들어져야 했지만 결과적으로 흑백필름은 이 영화의 장점이 됐다. 1930년대 북간도와 경성, 일본 등을 무대로 한 영화에서 고증을 거친 화려한 세트 대신 흑백 톤의 정서가 화면을 채운다. 차창 밖 풍경은 수묵화처럼 뭉개지는데다가 조명이 세련되지 않은 탓에 대낮의 빛은 탁하고 밤하늘만 유독 빛나는데 그게 또 당시 시대적 분위기와 맞아떨어진다. 애초 우리가 필요했던 것은 완벽한 재현이 아니라 충만한 서정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윤동주와 송몽규는 1917년 만주 북간도의 명동촌에서 석달 차이로 태어났다. 소학교, 연희전문, 일본 유학까지 함께했지만, 성격은 온순한 문학청년(윤동주), 적극적인 독립지사형(송몽규)으로 많이 달랐다고 한다. 윤동주가 남긴 시들은 ‘부끄러움의 미학’이라고 평가받을 만큼 자기 성찰의 조용한 빛을 발하고 있는 데 비해 송몽규는 백범 김구를 찾아 혼자 만주를 돌아다녔으며 일본 유학 당시엔 조선인 유학생을 규합했던 ‘요시찰 인물’이었다. 영화는 같으면서도 다른 두 사람의 청춘을 묘사한다. 이들이 함께 지내던 북간도 고향은 얼마나 평화로운가. 서로 질투하거나 못마땅해할 때조차도 청년들의 낯빛은 얼마나 고운가. 광복을 6개월 앞두고 20일 차이로 일본의 감옥에서 죽게 되는 둘의 운명을 알고 있는 관객들은 그들의 장밋빛 시절을 보면서도 가슴이 저릿해진다.

각본을 쓴 신연식 감독은 “시인이 되지 못한 동주의 운명에 영화감독이 되지 못한 채 떠돌았던 나의 청년시절을 투사했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영화에서 윤동주가 숭배하던 시인 정지용(문성근) 등은 그를 자꾸 ‘윤 시인’이라고 불러준다. 이준익 감독은 “비극적 역사 속에서도 개인적 가치를 건지고 싶었다”고 했다. 윤동주와 송몽규를 다시 불러내며 감독이 말하고 싶었던 개인적 가치는 무엇이었을까? 영화에서 동주는 죽기 직전에 이런 시대에 시인이 되고 싶어하던 자신을 부끄러워하고, 몽규는 치열하게 살았지만 지금은 그가 남긴 몇편의 작품으로만 기억된다. <동주>는 “시를 사랑하는 것과 세상을 사랑하는 것이 결국 같았다”는 말로 요약된다.

남은주 기자 mifoc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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