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정하담. 사진 '씨네21' 손홍주 기자
영화 ‘스틸 플라워’의 배우 정하담
“내가 몰랐던 나 자신 발견하게 돼”
피렌체 한국영화제 심사위원대상
‘검은사제들’ 피 뒤집어쓴 무당 역
“내가 몰랐던 나 자신 발견하게 돼”
피렌체 한국영화제 심사위원대상
‘검은사제들’ 피 뒤집어쓴 무당 역
그 걸음걸이가 예사롭지 않았다. 부둣가 방파제에서 네온사인 덮인 거리로, 도시 뒷골목에서 산동네로, 갈 곳이 없던 소녀는 자꾸만 사람이 오지 않는 곳으로 걸어간다. 영화 <스틸 플라워>는 처음 15분 동안 대사 한마디 없이 걷는 모습만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처음엔 불안하게, 나중엔 탭댄스를 추며 이야기를 끌어가는 사람은 하담 역을 맡은 배우 정하담(23)이다. <스틸 플라워>는 <들꽃>에 이은 정하담의 2번째 주연작이다.
“22살에 첫 영화 <들꽃> 촬영을 앞두고 너무 불안했어요. 감독님은 저한테 특별한 어떤 것이 있다고 생각하셨는데 그걸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그래서 아침에 일어나면 <들꽃> 주인공하고 똑같은 옷을 입고 무작정 집을 나와 걸어다니기 시작했어요. 허름한 차림으로 길에서 떠도니까 사람들이 저와 눈마주치는 것도 싫어하고 스칠까봐 겁내더라고요. 길에 있으니 보이는 것들이 달라졌어요.” <들꽃>과 <스틸 플라워>를 만든 박석영 감독이 정하담에게 발견한 “특별한 어떤 것”은 영화속 주인공의 삶 속으로 우직하게 들어가버리는 정직한 태도였을 것 같다. <들꽃>의 가출한 열여섯살 소녀, <스틸 플라워>에선 집을 찾는 이십대 여자는 자신에게 주어진 폭력과 빈곤의 좁은 길을 그저 걷는다.
“‘하담아, 다음 영화를 하자. 여자아이가 탭댄스를 추면서 화면 밖으로 나가는 엔딩이야’. 박석영 감독님의 이야기를 듣고 나는 울었다. 너무나도 생생했기 때문이다.” 인터뷰를 앞두고 정하담은 이렇게 영화를 소개하는 글을 적어 보내왔다. “<스틸 플라워> 속 하담은 강인한 인물이지만 내 답답하고 모자란 부분이 스며들어 갔다고 생각해요. 원래는 저한테 이런 게 있다곤 생각해본 적은 없어요. 두 영화를 하면서 내 속에 있는 어떤 점이 계발됐다고나 해야 할까요.” 그의 안에 있는 것은 그게 다가 아니다. 영화 <검은 사제들>에서 사제들이 구마의식을 하기 전 굿을 하다가 피를 뒤집어 쓰고 쫓겨갔던 무당과 곧 개봉할 박찬욱 감독의 영화 <아가씨>에서 입을 굳게 다문 하녀를 연기하기도 했다.
“한신대에 입학해 학교를 몇달 다니다가 그만두고 지금까지 오디션을 스무번쯤 봤는데 연기를 하고 싶다기보다는 담을 키우고 싶었어요. 오디션 볼 땐 얼마나 떨리나면 머릿속이 하얗게 되고 손에 땀이 넘쳐요. 그러고 나면 그 잔상이 계속 남아서 후회하느라 힘들어요. 감독님들이 ‘한 번 더 해볼래요?’ 했을 때 바보같이 보일까봐 안해놓고 내가 왜 그랬을까 하는 거죠. 그래도 기회가 생기면 또 보러가요.” 지난해 <들꽃>으로 서울독립영화제 독립스타상을 받았고 <스틸 플라워>가 피렌체 한국영화제에서 심사위원대상을 받았지만 바뀐 것은 별로 없다고 했다. 배우 정하담은 아직도 영화 속 하담처럼 머물 곳을 찾고 있다.
남은주 기자 mifoc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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