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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다음 주인공 들어오세요, 어디가 아프십니까

등록 2016-03-23 20:39수정 2016-03-23 20:39

마음이 아픈 주인공 내세운 영화들

아이와 어른 누구나 가질 법한
내면의 상처 극복 과정 그리거나
실패하기까지의 과정에 집중

영화 속 주인공들이 아프다. 30일 개봉하는 일본 애니메이션 <마음이 외치고 싶어해>는 선택적 함묵증에 걸린 소녀 ‘준’이 주인공이다. 같은 날 개봉하는 미국 애니메이션 <아노말리사> 주인공도 세상 사람들이 모두 한 사람이라고 믿는 ‘프레골리 망상’에서 헤어나오지 못한다. 24일 개봉하는 <폴링>은 여학교에서 일어나는 집단 히스테리를 다룬다. 아이와 어른 누구나 가질 법한 내면의 상처와 극복, 치유, 때로는 실패하기까지의 과정에 집중하는 영화들이다.

말을 알아듣고 할 수 있음에도 특정한 장소, 조건이나 상황에서는 말을 하지 않거나 극히 제한된 단어만을 사용하는 것을 함묵증이라고 한다. 체질이나 기질, 신경 발달도 원인이 있지만 극심한 트라우마를 겪고 나서 말을 하지 않게 되는 외상성 함묵증도 있다. 나가이 다쓰유키 감독의 <마음이 외치고 싶어해>에서 소녀는 어느날 아빠가 다른 여자와 자동차를 타고 호텔에서 나오는 것을 보고 엄마한테 달려가 신나게 자신이 본 것을 이야기한다. “네가 너무 수다스러워서 이렇게 된 거야.” 불륜이 들통난 아빠는 딸을 비난하며 집을 떠났고, 상처입은 어린아이는 상상으로나마 스스로를 처벌함으로써 이 어처구니없는 상황을 어떻게든 받아들이려 애쓴다. 갑자기 달걀요정이 나타나 준의 입을 봉인해버리고 말을 하려고 들면 배가 아프게 되는 저주를 내린다. 자신을 벌하려 침묵을 택하는 주인공들은 <에이미>(1999년) 등 다른 영화에도 있었다. <마음이 외치고 싶어해>는 한발 더 나아가 각성과 치유의 과정을 그린다. 각성과 치유는 준만이 아닌 주변 사람들의 것이기도 하다. 이들은 말을 잃어버린 준의 고투를 지켜보면서 자신 또한 정작 하고 싶은 말을 하지 못하고 남에게 상처 주는 말만 하고 사는 ‘선택적 함묵증’을 앓고 있음을 깨닫는다.

찰리 카우프먼 감독은 다른 사람들을 구별하지 못하는 프레골리 망상에 대해 듣고선 프랜시스 프레골리란 필명으로 연극 <아노말리사> 각본을 썼다. 연극에서 단 3명의 배우가 모든 이야기를 전달했던 것처럼 영화에서도 세 배우가 수많은 캐릭터들의 목소리를 대신한다. 세상 사람들의 목소리가 모두 똑같이 들리는 증상에 시달리던 주인공은 겨우 한 사람 다른 목소리를 가진 여자를 만났지만 또다시 실망하고 만다. 프레골리 망상은 노인성 치매 증상의 일종이지만 감독은 이 병이 애착관계를 맺는 데 실패하는 현대인들에 대한 은유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영화는 치유와 희망 대신 결국 망상을 어쩔 수 없는 운명으로 받아들이는 주인공의 실패담을 따라간다. ‘아노말리’는 변칙·이례적인 것이라는 뜻인데 사람들 사이에서 고유하고 특수한 나를 정립하려는 생각 자체가 변종일지 모른다고 영화는 바라보는 것 같다. 인형을 활용한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 주인공이 더욱 시들어가며 무기력해지는 모습이 실감나게 그려진다.

1965년 영국 블랙번에서 한 학교 여학생 85명이 집단 현기증 증상을 일으켰다. 영국의 한 엄격한 여학교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 <폴링>은 여학생들이 호흡곤란을 호소하며 병원으로 실려갔던 이 실제 사건을 연상하게 한다. 어떤 집단에서 대규모로 피암시성에 따른 증상이 확산되는 현상들을 대중망상이라고도 부른다. 영화는 대중망상에 빠진 10대 소녀들의 이야기를 통해 통제가 야기하는 불안과 상처, 저항 등을 다루려는 것처럼 보인다. 세 영화는 저마다의 시선으로 인간 내면의 어두운 심연을 들여다보며, 관객들에게 이야기를 건넨다.

남은주 기자 mifoco@hani.co.kr, 사진 각 영화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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