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리우드텐 다룬 영화 ‘트럼보’. 사진 그린나래 미디어 제공
할리우드 텐 다룬 영화 ‘트럼보’
1940년대 미국서 사상검증 당해
‘표현자유’ 위기겪는 현재에 일갈
1940년대 미국서 사상검증 당해
‘표현자유’ 위기겪는 현재에 일갈
4월7일 개봉하는 영화 <트럼보>(감독 제이 로치)는 ‘할리우드 블랙리스트’에 올라 익명으로 영화를 만들어야 했던 시나리오 작가 달튼 트럼보(브라이언 크랜스톤)의 일대기를 담았다. 할리우드 블랙리스트는 1947년 미 하원 반미활동조사위원회가 사상이 의심스럽다는 이유로 소환했던 사람들의 명단을 말한다. 위원회에 나와 자신이 공산주의자가 아니라고 공언하고 동료들을 고발하지 않으면 감옥에 가야 하는 냉혹한 상황에서 처음 소환됐던 사람들 19명 중 10명이 진술거부를 택했다. 이들을 ‘할리우드 텐(10)’이라고 부른다. 트럼보는 그 중 하나였다.
할리우드 텐 대부분은 시나리오 작가였다. 그런만큼 영화 속 이들의 대사는 냉전시대의 핵심을 찌르며, 여전히 표현의 자유가 위협받는 사회에선 거듭 되새김될 만하다. 한 시대의 믿음을 보편적인 신념으로 만든 <트럼보>의 대사를 들여다본다.
“네,·아니오만 하는 사람은 바보 아니면 노예”
공산주의자 친구들은 시나리오 1편당 2만4000달러를 받는 스타 작가 트럼보를 “너무 부자이고 유명하다”며 의심의 눈초리를 보냈다. 하지만 종군기자로 복무하며 퓰리처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던 그의 민주주의에 대한 신념은 확고했다. “공산당 당적을 보유한 적 있는지 네, 아니오로만 답하라”는 위원회의 요구에 트럼보는 “‘네, 아니오’로만 대답하는 사람은 바보 아니면 노예밖에 없다”고 답한다. 작가인 존 하워드 로슨, 감독 에드워드 드미트릭, 제작가 에이드리언 스콧 등 할리우드 텐의 나머지 9명을 조합해서 만든 캐릭터인 영화 속 친구 알런 허드(루이스 시 케이)는 “잠깐만요, 내 주치의가 양심도 수술로 제거할 수 있다고 하면 알려주겠소”라고 답한다. 둘은 나란히 의회모독 혐의로 기소된다. 이들은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는 미 수정헌법 1조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기꺼이 진술거부를 택한 것이다.
“이 금 조각상은 친구들의 피로 덮여 있다”
블랙리스트에 올랐던 사람들은 일자리를 찾을 수 없었다. 당시 배우였던 로널드 레이건과 디즈니 창립자인 월트 디즈니 등이 ‘불순분자 색출’에 앞장섰다. 트럼보는 다른 블랙리스트 작가들과 함께 익명으로 각본을 쓰며 생계를 유지한다. 많은 작가·감독·배우들이 영화판을 떠나거나 숨졌다. 그러나 트럼보가 동료 시나리오 작가인 이안 맥켈란 헌터의 이름으로 쓴 <로마의 휴일>, 로버트 리치라는 가명으로 쓴 <브레이브 원> 등이 오스카 각본상을 받으면서 할리우드 ‘공포 정치’에 균열이 생겼다. 수상 소감을 묻자 트럼보는 “그 작고 값어치 없는 금 조각상은 내 친구들의 피로 뒤덮여 있다”고 매카시즘의 횡포를 비판했다.
“신념 때문에 예술가를 처벌했던 시대 끝났다”
1970년 전미작가조합 로렐상 시상식에서 “미약한 개인들이 감당하기엔 너무나 가혹한 시절, 우린 각자의 본성과 필요와 신념에 의해 반응했다”는 말로 시작하는 트럼보의 연설은 오랫동안 사람들 기억에 남았다. 10년 넘게 ‘미국의 적’으로 몰려 작가로서 이름을 잃어버렸던 트럼보는 “(이 전쟁엔) 영웅이나 악당은 없었고 희생자들만 있었을 뿐”이라고 결론짓는다. 영화는 “정치적 신념을 근거로 예술가를 처벌하던 반공주의자들의 횡포가 막을 내렸다”는 시상자의 대사로 끝맺지만, 각종 검열 논란이 한창인 한국에선 전혀 다른 울림을 안긴다.
남은주 기자 mifoc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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