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회 전주국제영화제 ‘월드 시네마스케이프: 마스터스’ 섹션 초청으로 한국을 찾은 '클랜'의 파블로 트라페로 감독.
영화 ‘클랜' 파블로 트라페로 감독
베니스 은사자상…전주영화제 찾아
아르헨티나 독재 시대 실제 사건
평범한 이웃이…대를 이은 납치범죄
베니스 은사자상…전주영화제 찾아
아르헨티나 독재 시대 실제 사건
평범한 이웃이…대를 이은 납치범죄
아버지는 납치를 총지휘하고 아들은 돕고 어머니는 인질에게 밥을 주었다. 지하실에 감금된 인질의 비명을 들으며 딸은 수학 숙제를 한다. 화목하고 평범해 보였던 그들이 알고 보니 누군가를 납치해 몸값을 받아내는 ‘가족 사업’을 해왔다는 이야기는 아르헨티나에서 실제 있었던 사건이다. 1980년대 아르헨티나를 떠들썩하게 했던 푸치오 가족 이야기를 영화로 만든 <클랜>의 파블로 트라페로(45) 감독이 전주국제영화제 기간 동안 한국을 찾았다.
“이 영화는 한 가정의 초상을 그리고 있지만 아르헨티나 군부 독재가 끝나고 민주주의가 탄생하고 있던 시대의 자화상이다.” 전주 영화의 거리에 있는 한 카페에서 만난 트라페로 감독은 <클랜>을 이렇게 설명한다. “민주주의는 과연 유지될 것인지 의문이 가득하던 시대, 공포와 희망이 팽배해 있는 분위기가 가족에게까지 이어지는 것이 영화를 이루는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한다”는 감독은 지금까지 푸치오 가족의 이야기를 소재로 나왔던 다른 범죄물과는 달리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만들었다. 씨족이라는 뜻의 ‘클랜’은 푸치오 가족을 부르는 말이기도 하지만 핏줄로 얽혀 한데 움직이는 모든 집단들을 의미하기도 한다.
영화는 실종자 진상규명위원회를 맡은 에르네스토 사바토의 연설로 시작한다. 1983년 레오폴도 갈티에리 장군이 물러나면서 군부독재 7년 동안 사라진 3만명의 사람들을 찾는 일이 시작됐다. 군부의 지시를 받아 정치적 인사들을 납치하는 일을 해온 아버지(기예르모 프란첼라)는 범죄에서 발을 빼고 싶어하는 아들 알렉스(피터 란사니)를 다그치고 달래면서 유괴 사업을 한다. 정치·사회적 상황이 바뀌면서 그를 비호해주던 사람들은 물러나지만 가족 관계는 영원하다고 믿는 아버지는 민주주의를 향한 시도는 곧 끝날 것이라 믿으면서 가족 자산을 늘리기 위해 범죄를 계속한다. “보편적인 가족 관계와는 거리가 멀어 보이지만, 실은 다른 부자 관계도 비슷하다. 나도 두 아이가 있는데 내가 내리는 결정들이 과연 아이를 위한 것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관객들이 이 가족과 멀고도 가깝게 느껴지는 경험을 하도록 하고 싶었다”는 감독의 질문은 호소력이 컸다. 제72회 베니스(베네치아)국제영화제에서 감독상(은사자상)을 받은 <클랜>은 지난해 아르헨티나에서 개봉해 역대 두번째로 많은 관객을 동원한 영화가 됐다.
1999년 <크레인 월드>로 영화를 만들기 시작했던 파블로 트라페로 감독은 아르헨티나 영화의 황금기를 여는 ‘뉴 아르헨티나 시네마’ 세대의 일원이다. 여러 차례 칸과 베니스 국제영화제에 초청됐으며 베니스, 산세바스티안, 로카르노 영화제 심사위원을 맡고 있기도 한 그는 여러 차례 한국을 다녀가기도 했다. “<사자굴>(2008), <카란초>(2010) 등은 한국과 공동 제작했던 영화들이며 이를 자랑스럽게 생각한다”는 감독은 박찬욱, 홍상수, 김기덕의 영화들을 자세히 알고 있었으며 “최근 개봉한 한국 영화로는 <내부자들>을 인상적으로 봤다”고도 했다.
전주국제영화제 ‘월드 시네마스케이프: 마스터스’ 섹션에 초청된 <클랜>은 12일 극장에서 개봉한다. 108분. 15살 이상 관람가.
전주/글·사진 남은주 기자 mifoc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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