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뽀로로’ 성우 이선
16일 개봉작 ‘짐작보다 따뜻하게’
“연기에 대한 열정이 식지 않아
20년전부터 연극무대에 올랐죠”
“연기에 대한 열정이 식지 않아
20년전부터 연극무대에 올랐죠”
하마터면 모르고 지나칠 뻔 했다. 지난 6일 밤 9시, 서울 대학로 소극장 알과핵에서 방금 공연을 마친 연극 <왜그래>에 출연한 이선(44)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무대에 있던 그와는 전혀 다른 사람이 내려왔다. “이게 진짜 저에요. 화장 지우면 다들 못알아보더라고요.”<왜그래>에선 일제말 신여성, 운동권 학생, 요조숙녀의 3가지 역할을 했고, 애니메이션 <뽀로로> 목소리 역할로 유명한 성우기도 하지만 깔깔거리며 웃는 소리나 말할 때 부드러운 음성 등 목소리도 여러 가지다. 이선은 16일 개봉하는 영화 <짐작보다 따뜻하게>(감독 이상민)에선 또 다른 얼굴로 관객들을 만난다.
어린이들은 그를 뽀로로로, <베르사이유의 장미> 오스칼로, 어른들은 그를 미국 드라마 <어글리 베티>의 베티나 <로스트>의 케이트로, 아니면 한 화장품 광고의 “당신은 소중하니까요”라고 속삭이는 목소리로만 알지만 실은 이선은 오래 전부터 꾸준히 무대에 서왔다. 서울예대 방송연예학과를 다니던 이선은 20살때 덜컥 한국방송 23기 성우 모집시험에 합격하면서 성우가 됐다. “실은 저희 집안이 너무 어려웠어요. 제가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니까 아침에 일어나서 광고 녹음하고, 자리 옮겨서 애니메이션 녹음하고, 또 외화 더빙하고, 밤에는 자동응답기 녹음하고, 일만 하며 살았죠. 그렇게 지내도 연기에 대한 열정이 식지 않아 1996년부터 1년에 1~2편 정도는 항상 연극을 해왔어요.” 그러다 이제 더 이상 가족들을 위해 돈을 벌지 않아도 되겠다 싶으니 ‘딴 생각’이 본격적으로 찾아왔다.
“2014년 봄, 성우를 주인공으로 한 영화를 준비하는 이상민 감독님을 만났어요. 저는 그때 배우로 점점 더 영역을 넓히고 싶었는데 성우로 확고한 자리가 있다보니 선입견에 갇힐 때가 많았거든요. 시나리오를 봤을 때 모든 걸 다 버리고 올인해야 되겠다고 생각했어요. 방송 활동을 대폭 줄이고 영화에 전념했어요.” 이상민 감독은 “이선은 목소리로만 알려져 있어서 신인 배우 같은 신선한 느낌이 있었다”고 그를 캐스팅한 이유를 설명했다. 성우의 장점이 분명한 대사 전달, 미세한 호흡과 함께 소리로 자신을 표현하는 능력이라면 단점은 정형화된 연기에 갇히기 쉽다는 것이다. 이선은 <짐작보다 따뜻하게>에서 정형성을 벗기 위해 자신을 던졌다고 했다. “영화 속 은경 역에 너무 빠져든 나머지 나중엔 저도 주인공처럼 거식증 증세가 생겼어요. 나중엔 누구와도 밥을 먹지 못하게 됐어요.” <짐작보다 따뜻하게>는 한 어머니의 지독한 상실감을 통해 상처받은 사람에게 건네는 우리의 위로가 상투적이라는 사실을 비추는 영화다.
이선은 개봉을 기다리며 자신이 나온 영화를 지금까지 30번쯤 봤다고 한다. “볼 때마다 가슴을 치는 장면이 달라요. 어느날은 아들에게 습관처럼 전화하는 장면이 아프고, 다음날 볼 땐 제주도에서 넋이 나간채로 비맞고 앉아 있는 장면이 슬퍼요. 이건 너무 신기하지 않아요? 아 정말 영화를 많이 하고 싶어요.”
“첫영화가 개봉하니 나는 정말 운이 좋다. 지금은 새로 시작하기 좋은 때”라고 말하는 이선은 한껏 들떠있다. 영화 <짐작보다 따뜻하게>는 16일 서울아트하우스 모모 등 전국 14개관에서 관객들을 만난다.
글·사진 남은주 기자 mifoc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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