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수와 미녀
[영화] 야수와 미녀
<야수와 미녀>. 한 마디로 졸가리를 추리자니, ‘루키즘(외모지상주의) 공화국’의 신분을 뛰어넘는 사랑 이야기다. 다만 천한 신분의 소심한 야수는 세상에 대한 분노가 없고, 존귀한 신분의 철 없는 미녀는 여전히 사랑에만 눈 멀어 있다. 구김살이 없는 코믹이라 한참 웃지만, 에피소드만 진열된 멜로인 탓에 영화는 금세 낡아보인다. 구동건(류승범). 못 생겼다. 조폭과 마주치면 조폭이 먼저 놀란다. 만화 영화의 우주 괴물 소리를 전문으로 하는 성우다. 택시로 착각하고 당돌하게 자신의 승용차에 오르는 시각장애자 ‘미녀’한테 넋을 뺏기고는 헌신적으로 그의 눈이 된다. 앞 못 보는 미녀의 세상은 동건의 순애보적 사랑으로 채색되어, 영화처럼 따뜻하고 말갛다. 거기까진 좋았는데, 어쩌다 미녀에게 자신까지 영화배우 장동건만큼 잘 생긴 구동건으로 각인시키고 만다. 장해주(신민아). 곱다. 참하거나 발랄하거나 때론 엽기적. 장애에도 불구하고 3년 가까이 곁을 떠나지 않은 동건의 사랑으로 그늘이 없다. 동건이 받쳐준 우산을 쓰고 가던 어느날, 한 통의 전화가 걸려온다. 각막 기증자가 생겼단다. 동건의 얼굴이 일그러지는 걸 봤을 리 없는 해주, 눈 뜬 첫 날 병원을 찾아온 한 ‘야수’를 보고는 기겁을 한다. 어쨌거나, 웃음은 곳곳에서 새어나온다. 눈 뜬 해주를 만나기 전 이마의 흉터라도 지우려고 성형 수술을 받지만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눈썹까지 사라져버린 동건의 낭패를 지켜보는 일은 더 그렇다. 생김새로 웃기려는 방송 개그를 보는 듯 하다가도, 사랑하는 누구든 연인에게 감추고 싶은 하나씩의 애절한 콤플렉스를 은유하게 한다는 점에서 웃음은 종종 무게를 가진다. 해주가 동건의 생김새를 궁금해 했을 때, 동건은 ‘얼짱’ 탁준하(김강우)인 양 설명했다. 외모 콤플렉스를 삶의 굴레로 절감하게 해준 고교 친구였는데, 그가 하필 검사가 되어 눈 뜬 해주 앞에 나타나게 될 줄 동건은 짐작하지 못했을 것이다. 한국 멜로의 전용 클리셰 아닌가. 사랑이 위태로울 때 나타나는 훼방꾼 남자는 십중팔구 검사, 여자는 뭐, 무조건 미녀고. 그러나 동건과 해주가 잘 되기를 바라는 관객을 그리 애태우진 못한다. <올드 보이>를 조감독한 이계벽 감독의 첫 장편 데뷔작. 27일 개봉.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 사진 시오필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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