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도 하지 않고 애를 가졌다면) 다들 째려보시더라고요.” 영화 속 이 대사는 김혜수(사진)가 직접 만들어낸 말이다. “아, 어른들 진짜 너무하네. 그럼 얘는 아무 일도 하지 말란 말인가요.” 이것도 인간 김혜수로서 내질렀던 역정이다. 29일 개봉하는 영화 <굿바이 싱글>(감독 김태곤)은 ‘발연기’에 가십 제조기 여배우를 주인공으로 삼아 세상이 다 아는 김혜수의 이미지와의 거리감과 오랫동안 연예계에서 산전수전 다 겪은 여자라는 일치감 사이를 오가며 노는 영화다. 김혜수는 영화에서 연하 배우와 임신 스캔들을 일으키는 장수 톱스타 역을 맡았다.
“저도 속에 있는 말 다 해요. 할 말은 다 하는데 좀 가려서 하는 편이죠.” 13일 서울 삼청동 한 카페에서 만난 김혜수는 할 말, 못 할 말 다 하고 다니는 영화 속 고주연이 부럽지 않으냐는 말에 이렇게 대답하며 웃었다. 영화는 20년 넘게 톱스타로 살아온 여배우를 그렸지만 16살에 영화 <깜보>로 데뷔한 김혜수가 현실 이미지와 영화 캐릭터 사이를 오가며 놀았던 세월은 30년이다. 영리하고도 대범한 배우로 자리잡은 뒤엔 강하고 센 캐릭터, 마구 망가지는 여자를 맡으면서도 늘 말끔히 제자리로 돌아와 자신의 이미지를 지켜왔다. “대부분의 관객과 동시대를 살아온 덕분에 사람들이 그동안의 김혜수를 고스란히 알고 있으니까 항상 애정 어린 해석을 전제하는 듯하다”고 하는 걸 보면 스스로도 자신의 강점을 안다.
<굿바이 싱글> 여주인공은 화려한 연예계 생활과 인간적 외로움 사이에서 갈팡질팡한다. 김혜수에게도 그런 시절이 있지 않았을까? “대학 다닐 때 가장 하고 싶은 일이 엠티, 데모, 아르바이트였어요. 왜 피자가게나 햄버거가게에서 모자 쓰고 아르바이트하는 거 있잖아요. 생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아르바이트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듣기엔 철없이 들릴지 모르지만 나는 남들이 대학 가면 당연히 한다고 생각했던 일들을 하나도 못 하고 살았거든요. 대부분의 사람들에겐 당연한 일상이 통째로 빠져 있다는 사실은 생각보다 두고두고 영향이 큰 것 같아요.” 김혜수는 “어릴 때 일찍 어른들의 특수사회에 영입이 됐잖아요. 나의 청소년기나 청년기가 결핍 아니면 과잉으로 양극화될 거란 걸 그땐 몰랐어요. 그런 데서 오는 결핍이라는 건 어떤 식으로든 사람을 바꿔놓아요. 만약 알았더라면 그때 시작을 안 했거나 미뤘을 것”이라고 솔직히 털어놓으면서도 “그러나 나이 들어도 결국에 내 직업은 과잉과 결핍에서 발버둥 치는 일이었다”고 정리한다.
그래도 그 과잉과 결핍 사이에서 이뤄놓은 것이 많다. 이십대 초반엔 첫사랑의 대명사(영화 <첫사랑>)였고, 영화 <분홍신>과 <얼굴 없는 미녀>로 여자 단독 주연의 시대를 열었다. <타짜> <도둑들> <관상>부터 최근 드라마 <시그널>까지 그의 존재감은 더욱 커져만 왔다. “많은 사람들이 절 배우로 평가할 때 <타짜>를 이야기하는데 찍을 땐 몰랐거든요. 징검다리처럼 이 돌을 밟을 땐 이 돌이 큰 건지, 뿌리가 있는 건지 그땐 몰라요. 하나하나 조심스럽게 밟다 보니 여기까지 온 느낌이에요. 가끔은 나를 빠트리거나 발목을 잡았던 돌도 있었죠. <굿바이 싱글>도 지금은 모르지만 다른 의미를 갖지 않을까요?” 10년 전, 20년 전엔 내가 2016년에도 배우를 하고 있을 줄은 몰랐다는 김혜수가 돌아보는 30년이다.
남은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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