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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뻔한 얘기에 스펙터클 덧칠…블록버스터 속편은 헛헛해

등록 2016-07-04 14:21수정 2016-07-04 20:09

인디펜던스 데이: 리써전스
줄거리·등장인물 고스란히 반복
장엄한 화면이 오히려 지루해

레전드 오브 타잔
1억8천만달러 들인 만큼 볼거리
영웅같은 주인공 외 모두 들러리

정글북
실제보다 더 실제 같은 CG의 세상
정글 개척·정복하던 그때 세계관
지금 극장가는 할리우드에서 보내온 리메이크 블록버스터들로 가득하다. 러디어드 키플링의 원작소설을 기반으로 한 <정글북>, 1996년 영화 <인디펜던스 데이> 속편인 <인디펜던스 데이: 리써전스>, 돌아온 타잔의 이야기 <레전드 오브 타잔> 등이 잇달아 개봉했다. <정글북>과 <타잔>은 이미 여러 차례 영화로 만들어질 때마다 발전하는 기술을 보여줬지만 이번에는 한층 더하다. 그러나 그 막강한 기술을 통해 그들이 전달하는 이야기는 전편과 달라지지 않았거나 되려 후퇴한 인상이다.

그들이 다시 돌아왔다. 20년만에 나온 속편 <인디펜던스 데이:리써전스>는 전작의 영웅들을 호출하며 과거의 꿈에 매달린다.
그들이 다시 돌아왔다. 20년만에 나온 속편 <인디펜던스 데이:리써전스>는 전작의 영웅들을 호출하며 과거의 꿈에 매달린다.

■ 변함없는 미국 <인디펜던스 데이: 리써전스> 대표적인 예가 20년만에 돌아온 <인디펜던스 데이: 리써전스>다. 이 영화를 두고 블록버스터의 재앙이라고들 하지만 실은 할리우드 후속편의 공식에 충실한 영화다. 전편을 기억하고 있는 팬들이 너무 나이들기 전에 새로운 기술에 열광적인 젊은층을 함께 사로잡을 수 있는 다음편을 내놓아야 한다는 계산과 압도적인 스펙터클을 보여줘야 한다는 강박은 줄거리는 물론 등장인물까지 고스란히 반복하는 영화를 낳았다. 땅과 바다가 뒤집혀지는 스펙터클은 더욱 장엄해졌지만 새로운 서사가 없는 스펙터클은 지루하다.

20년 동안이나 외계인의 침공에 대비해왔다면서 막상 그들이 다시 쳐들어오자 이를 막을 수 있는 사람은 전편에 등장했던 영웅들밖엔 없다. 윌 스미스가 맡았던 ‘스티븐 힐러’의 아들, 대통령의 딸, 혈기왕성한 조종사 제이크 모리슨(리암 헴스워스) 등 새로 등장한 젊은 전사들의 이야기는 전편에 이어 직접 전투기 조종석에 앉는 전직 대통령(빌 풀만), 외계인의 기술을 연구하며 준비해온 데이빗 레빈슨(제프 골드브럼) 등 돌아온 중년들의 이야기에 가려 빛을 잃는다.

중국인 사령관과 여자 대통령, 그리고 실제 전쟁을 겪어보지 않은 젊은 군인들이 계속 어이없는 실수나 거듭하고 있을 때 위기가 닥치고 때마침 오래된 영웅들이 잠에서 깨어난다는 설정은 정말 우연이었을까? 영화는 나이든 사람들의 잔소리처럼 계속 ‘우리가 하나로 뭉치면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되풀이하면서 미국을 중심으로 세계가 단결하는 전쟁으로 우리를 소환하려고 하는데 이는 미국의 보수적 관객들의 소망이기도 하다.

<레전드 오브 타잔>은 제국주의자들에게 맞서는 영웅으로 타잔을 새롭게 그렸지만 백인남성우월주의는 채 버리지 못하고 정글을 뛰어다닌다.
<레전드 오브 타잔>은 제국주의자들에게 맞서는 영웅으로 타잔을 새롭게 그렸지만 백인남성우월주의는 채 버리지 못하고 정글을 뛰어다닌다.
■ 자가당착 <레전드 오브 타잔> 새로운 서사를 그려내려는 시도가 없는 것은 아니다. 아기 때 아프리카의 밀림에 버려져 유인원들이 기른 타잔이 미국인 과학자의 딸 제인과 만나고 사랑에 빠져 영국으로 돌아온다는 이야기는 1936년 첫 영화로 만들어진 뒤 수도 없이 재창작됐다. 29일 개봉한 타잔 영화 <레전드 오브 타잔>은 그 후일담에 실화를 접목한다.

1890년 미국 역사학자 조지 워싱턴 윌리엄스는 벨기에의 지배를 받는 콩고에 갔다가 그곳 원주민들의 참상을 폭로하는 <레오폴드 2세에게 보내는 공개 서한>을 썼다. 윌리엄스가 멕시코전쟁, 남북전쟁에 참여한 흑인이라는 점도 실화다. 영화는 윌리엄스가 영국에 돌아와 귀족으로 살고 있는 타잔과 함께 다시 콩고로 간다는 설정으로 인종과 계급에 반대하는 타잔이라는 캐릭터를 만들어내려고 시도했다.

그러나 1억8000만달러(약 2065억원)를 들여 만든 블록버스터는 새로운 주제의식을 구현하기보다는 실화와 재미를 적당히 섞는 쪽을 택했다. 미국식 영웅주의의 함정은 인종적, 계급적으로 딱 들어맞는 주인공 말고는 다른 사람들은 모두 들러리처럼 보이게 한다는 것이다. 백인 남성 타잔이 미국 군인 출신의 흑인, 콩고의 원주민들, 심지어는 정글의 동물들까지 이끌어 콩고의 노예해방에 나선다는 줄거리, 게다가 영국과 미국 등의 백인우월주의는 그대로 두고 ‘지나친’ 벨기에 왕의 행동만 나무라는 영화는 과거에서 온 편지처럼 보인다. 제인과 타잔의 관계에서 남성 위주의 서사는 한층 강화된 인상이다.

무에서 유를 만들어내는 헐리우드의 능력은 정점에 이르렀다. 그러나 주제의식은 그리 성장하지 못했다. 영화 <정글북> 한 장면.
무에서 유를 만들어내는 헐리우드의 능력은 정점에 이르렀다. 그러나 주제의식은 그리 성장하지 못했다. 영화 <정글북> 한 장면.
■ 이상한 학교 <정글북> 늑대로 자란 소년, <정글북>의 모글리도 타잔만큼이나 인기있는 주인공이다. 이미 <정글북>을 애니메이션으로 만들기도 했던 디즈니는 이번엔 모글리만 빼고 동물부터 정글까지 모두 컴퓨터 그래픽으로 창조해낸 실제보다 더 실제같은 세상을 선보였다. 놀라움은 딱 여기까지다.

인간이 생태위기의 근원으로 지목되고 있는 마당에 약 100년전 나온 책을 원작으로 한 영화는 인간이 정글을 ‘개척’하고 ‘정복’하던 그 시절의 세계관에 머물러 있다. 모글리는 험한 세상에 던져진 어린이들을 상징하는 존재다. 그 어린이들이 두려움을 이기고 친구들을 지키기 위해서는 정글의 질서를 마음대로 어지렵혀도 좋은가? 영화 마지막에 모글리가 자신을 죽이려는 쉬어칸에게 맞서기 위해 한 행동은 오히려 “‘붉은 꽃’(불)을 마음대로 다루는 인간은 위험한 존재”라는 쉬어칸의 말이 옳았음을 입증한다. 영화가 끝나면 쉬어칸이 늑대들에게 한 질문이 마음에 남는다. “사람의 자식 하나가 다른 많은 생명을 대신할 가치가 있다는 건가?”

익숙한 서사 속에서 새로운 것을 보여준다는 할리우드 리메이크의 법칙이 있지만 기술적 새로움에만 집중한 영화들은 심지어 제국주의 시대의 생각까지 드러낸다. 과연 이 영화들을 아이들과 함께 보아도 좋을까?

남은주 기자 mifoco@hani.co.kr, 사진 각 배급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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