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세하고 신비한 우화 작가, 이란의 영화감독 아바스 키아로스타미(사진)가 4일(현지시각) 프랑스 파리에서 세상을 떠났다. 향년 76.
이란 관영 <이르나>(IRNA) 통신은 키아로스타미 감독이 지난 3월 위암 진단을 받고 파리의 병원에서 치료를 받아왔다고 전했다.
이란 테헤란에서 태어난 그는 1970년 단편영화 <빵과 골목길>을 시작으로 50편이 넘는 영화를 연출했다.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1989), <올리브 나무 사이로>(1994) <체리향기>(1997) 등으로 한국에도 많은 팬을 가졌다. ‘체리향기’로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았으며, <사랑을 카피하다>(2010)로 쥘리에트 비노슈에게 칸 여우주연상을 안겼다.
키아로스타미 감독은 인간의 본성과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우화적인 방식으로 그려왔다. 종종 어린이의 시선으로 그 메시지를 전하기도 했는데, 이는 이란 당국의 검열을 피하기 위한 해법이기도 했다. ‘이란 북부 3부작’ 혹은 ‘지그재그 3부작’으로 불리는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 ‘그리고 삶은 계속된다’ ‘올리브 나무 사이로’는 영화사에 큰 획을 그은 대표작들이다. 그의 작품은 할리우드의 상업영화나 유럽의 관념적 예술영화와도 다른, 이란의 고유한 영화세계를 외부에 알렸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키아로스타미 감독은 이란의 민주주의와 인권에 대해 공개적으로 비판하는 발언은 하지 않았지만 정치적인 주제를 피하지도 않았다”며 “창조적 자기비판으로 열려 있었던 감독”으로 평가했다. 영화 <바람이 우리를 데려다 주리라>(1999)는 여자들이 발언하지 못하는 사회에서 불꽃처럼 살다 간 이란 여성 시인 포루그 파로흐자드의 시에서 영감을 받았으며, <텐>(2002) 이후 그의 영화들의 주체는 여성들이다.
담백한 영상과 절제된 화면 등 그의 미니멀리즘은 마틴 스코세이지 등 여러 감독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다.
남은주 기자
mifoco@hani.co.kr, <한겨레> 자료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