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회 부천판타스틱영화제 21일 개막
장르팬 위한 호러·병맛·판타지 추천작 10편
장르팬 위한 호러·병맛·판타지 추천작 10편
올해로 20번째,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가 화려해졌다. 올해 칸국제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 감독상을 수상한 맷 로스 감독의 <캡틴 판타스틱>을 개막작으로, 20일 개봉하는 연상호 감독 <부산행>의 전편 격인 애니메이션 <서울역>을 폐막작으로 들여온 데서 보듯이 장르영화나 비(B)급 영화에 특화됐던 영화제의 성격을 좀더 대중적으로 바꿔보려는 노력이 엿보인다. 상영작은 총 320편으로 지난해에 비해 85편이 늘어났다.
그러나 오랜 단골을 위한 메뉴는 변하지 않았다. 부천영화제 마니아들이 영화제를 찾는 이유는 일반 상영관에선 보기 어려운 B급 영화들을 볼 수 있기 때문인 만큼, 올해도 밑반찬은 마니아 영화다. 12년째 부천영화제에서 일해온 유지선 프로그래머는 “최용배 집행위원장과 정지영 조직위원장으로 새롭게 조직을 정비하면서 여러 세대를 아우를 수 있는 작품을 상영하는 것으로 혁신의 가닥을 잡았지만 부천영화제를 지탱해온 마니아층 또한 갈수록 두터워지는 것을 느낀다. 새로운 대중과 오랜 관객 누구 하나 놓쳐선 안 된다는 것이 부천의 과제”라고 했다. 부천영화제는 2014년 괴수영화의 원조인 <고질라>전을, 지난해엔 공포영화의 거장인 소노 시온 특별전을 했다. 특별전은 전회차 모두 매진됐다. “부산영화제 유료 관객은 12만명, 부천영화제는 6만~7만명 정도로 집계된다. 한국영화 천만 관객 시대에 10만명 안팎을 두고 다투는 꼴이지만 전체 영화 시장에 불을 지피는 마니아 관객들의 충성도와 영향력은 크다고 판단한다.”(유 프로그래머)
올해도 장르 ‘덕후’들의 가슴에 불을 지필 부천영화제의 기괴하고 무시무시한 B급 영화들을 김영덕·유지선·유세윤 프로그래머의 추천을 받아 정리했다.
■ 피와 살이 튀는 밤 금기를 넘어서는 위험한 영화들을 위한 섹션 ‘금지구역’은 부천영화제의 고유명사와도 같은 프로그램으로, 올해는 새로운 변화와 전통적인 고집이 함께 보인다.
새롭다면 <울트라섹스를 찾아서>(프랑스)나 <기름범벅 교살자>(미국) 같은 영화들에서 느껴지는 ‘병맛’일 것이다. <울트라섹스를 찾아서>는 수많은 포르노 영상물들을 짜깁기해서 <스페이스 오디세이> 같은 우주물로 짜놓은 어처구니없는 우주 포르노다. 무한성욕 바이러스가 전세계로 퍼져가자 지구를 구하기 위해 우주 비행사들이 나서는데, 비행사들이 하나같이 포르노 스타다. 심지어 지구방위군 대장의 이름도 ‘대장 거시기’쯤으로 번역될 수 있는 ‘캡틴 콕’이다. 형사물, 액션물, 공상과학물 등 장르의 탈을 쓴 수많은 포르노들에 브루노 라벤, 니콜라 샤를레 두 감독이 모두 목소리를 입혔다는 것도 병맛이다.
<기름범벅 교살자>는 잔인한 폭력물이지만 역시 끔찍하다기보다는 괴이하고, 섹스 장면조차 전혀 야하지 않다. 아버지와 아들의 여행을 그린 영화에서 아버지는 툭하면 사람을 죽이고 맹인이 운영하는 세차장에 가서 기름을 씻어낸다. 아버지는 전라로 나오지만 성기 부분이 기이한 형상으로 만들어져 있다. 밑도 끝도 없는 이야기인데다가 일부러 사람들의 신경을 건드리는 이 영화는 선댄스 영화제에서도 화제가 된 바 있다. 이 영화를 들여온 김세윤 프로그래머는 “관객들 절반은 반드시 영화 중간에 나갈 것”이라고 장담했다. <반지의 제왕>에서 호빗으로 나온 배우 일라이저 우드가 제작을 맡은 작품으로 그의 취향이 궁금해질 영화다.
이에 비해 일본 영화 <낮비>와 멕시코 영화 <우리는 고깃덩어리>는 전통적인 금지구역의 분위기에 충실한 영화들이다. 후루야 미노루 작가의 <이나중 탁구부>를 원작으로 만들어진 <낮비>는 특히 만화 속 사이코패스에 집중한다. 뼈와 살이 모두 드러나는 장면 등 적나라한 폭력 묘사는 등장인물들에 대해 전혀 동정과 연민을 가질 수 없도록 하기 위한 장치라고 한다. 에밀리아노 로차 민테르 감독의 <우리는 고깃덩어리>가 그리는 폭력에도 이유가 있다. 어느 폐건물에 남매가 들어오면서 시작하는 이야기는 그곳을 지배하는 이상한 남자와 그곳에 모인 사람들이 벌이는 이유 없는 폭력과 정사로 점점 한없는 바닥으로 가라앉는다. 카메라는 발기된 성기는 물론이고 오럴 섹스, 살인 같은 강도 높은 폭력도 거리낌없이 비춘다. 마지막 장면에서 이 모든 폭력의 이유가 밝혀진다. 멕시코의 현실을 세기말적인 은유 속에 담아내는 이 영화는 로테르담 영화제 상영 당시 찬사를 받았다.
■ 수상한 연애 부천영화제에도 사랑이 있다. 물론 평범한 사랑은 아니다. 이시이 가쿠류로 이름을 바꾼 일본 독립영화 대표주자 이시이 소고 감독이 만든 <금붕어, 여자>는 자신이 키우던 금붕어와 사랑에 빠진 작가의 이야기다. 여기에 작가의 전 여자친구가 귀신으로 나타나 사람-금붕어-귀신의 묘한 삼각관계가 형성된다. 핑크영화에 몰두했던 감독 작품답게 야한 금붕어와 남자들의 판타지인 듯도 하지만 알고 보면 여자가 주도하는 정사 장면들이 에로틱하다.
<인어와 함께 춤을>(감독 아그니에슈카 스모친즈카)에서는 인어와 사랑에 빠진다. 언니 인어의 사랑은 무시무시하고 동생 인어의 사랑은 지고지순하다. 우리에게 익숙한 80년대 팝음악을 배경으로 뮤지컬 같기도 하고 뱀파이어 영화 같기도 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지난 베를린 영화제에선 폴란드 영화가 주목받았는데 그중에서도 여러 장르를 합성해둔 것 같은 이 영화는 ‘폴란드 영화의 약진’으로 꼽혔다.
동물의 가면을 쓰고 사랑을 벌이는 남녀도 있다. <사랑은 부엉부엉>에선 부엉이 탈을 쓴 남자가 판다 옷을 입은 여자와 사랑에 빠진다. 소심하고 내성적이었던 사람들이 동물의 탈을 빌려서 가까워지는 연애담이기도 하다. 영화를 만든 랑지 베디아 감독은 프랑스 코미디영화에서 자주 볼 수 있는 배우다.
■ 변태들의 왕 이런 이상한 이야기들은 비정상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태어났다. 다수의 눈으로 본다면 변태다. <암살교실: 졸업편>(감독 하스미 에이이치로)은 올해 초 일본에서 개봉해 박스오피스 10위권 안에 든 인기작품이다. 인기작품이라고 해서 방심하면 안 된다. 문어선생님을 암살하라는 지령을 받은 학생들이 그 선생님을 죽이기 위해 애쓰는 이야기는 공상과학물을 표방하지만 황당무계 코미디에 가깝다.
<변태가면2: 잉여들의 역습>(감독 후쿠다 유이치)도 2013년 부천영화제에서 상영했던 <변태가면>의 속편이다. 자그마치 슈퍼히어로물인 이 영화에선 영웅의 복장이 중요하다. 흠모하는 여자아이의 팬티를 입고 초영웅적인 힘을 얻게 된 교스케는 슈퍼맨처럼 악당을 물리칠 때 이 속옷을 입고 다닌다. 컴퓨터 그래픽을 활용한 민망한 장면들은 덤이다.
<테라포마스>(감독 미이케 다카시)에선 바퀴벌레와의 싸움이다. 괴물로 변한 화성의 바퀴벌레들을 무찌르기 위해 지구방위 요원들도 스스로 특수 약품을 주입해 벌레가 된다는 이야기는 비(B)급 영화의 거장 미이케 다카시 감독과 공상과학영화의 만남으로 기대를 모았지만 결국은 황당한 영화가 됐다. 유지선 프로그래머는 “이런 병맛 공상과학 영화가 부천이 아니면 어디로 가겠느냐 싶었다”고 말했다. 괴상한 영화들의 카니발을 꾸미는 부천영화제 프로그래머들도 수상하다.
남은주 기자 mifoco@hani.co.kr
<기름범벅 교살자>.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제공
<울트라섹스를 찾아서>.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제공
<낮비>.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제공
<우리는 고깃덩어리>.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제공
<사랑은 부엉부엉>.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제공
<인어와 함께 춤을>.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제공
<금붕어, 여자>.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제공
<변태가면2: 잉여들의 역습>.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제공
<암살교실2: 졸업>.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제공
<테라포마스>.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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