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일의 썸머> <서프러제트> <나의 소녀시대>…. 최근 씨지브이(CGV)에서 단독 개봉했던 영화들이다. <바그다드 카페: 디렉터스 컷> <겁쟁이 페달: 더 무비> <불의 전차> 등은 메가박스가 아닌 다른 영화관에선 보기 어려웠다. 복합상영관들의 예술영화 단독 개봉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일반 상영관과 작은 예술극장들은 주목받는 예술영화를 상영하지 못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다양성 영화’의 생태계를 해치고 관객들의 볼 권리를 제한하는 대형 극장들의 과당경쟁에 대한 우려와 비판이 커지고 있다.
지난 6일 서울에서 열린 전국독립예술영화전용관 모임에선 대형 복합상영관들의 단독 개봉에서 생겨난 여러 피해 사례들이 공개됐다. 지난 2월 전주디지털독립영화관은 관객투표로 영화 <드레스 메이커>를 ‘만나고 싶은 예술영화’로 선정했지만, 씨지브이 단독 개봉이라는 이유로 배급을 받지 못했다. 당시 300m 거리에 새로 생긴 씨지브이 전주고사점이 개관 기념으로 이 영화를 하루 동안 무료 상영할 때도 작은 영화관은 아예 상영 기회조차 얻지 못한 것이다. 이 극장은 7월에도 관객들이 <바그다드 카페: 디렉터스 컷>을 기대작으로 선정했지만 역시 메가박스 단독 개봉이라는 이유로 배급을 거절당했고, <500일의 썸머>는 개봉한 지 3~4주가 지나서야 상영이 가능하다는 회신을 받았다. 부산 국도예술관도 최근 “부산은 씨지브이 아트하우스가 잘되어 있으니 (다른 상영관엔) 예술영화를 줄 수 없다”는 이유로 예술영화 배급을 받지 못한 일이 있었다. 멀티플렉스 단독 개봉 영화들은 씨지브이 등 대형 극장 체인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는 이유로 수입·배급사들이 예술영화관들에서는 상영을 미루다가 개봉한 지 한참 지나서야 배급하는 일이 되풀이되고 있다.
대형 멀티플렉스 ‘단독 개봉’ 경쟁의 시작은 지난해 11월 10년 만에 재개봉한 영화 <이터널 선샤인>으로 꼽힌다. 씨지브이에서 단독 개봉한 이 영화가 50만 가까운 관객을 모은 뒤 씨지브이는 <쇼생크 탈출> <무간도> <인생은 아름다워> 등으로 단독 개봉을 이어갔다. 여기에 메가박스도 <부활> <미라클 프롬 헤븐> <벤허> 등 충성도 높은 관객층이 있는 종교영화로 단독 개봉 경쟁에 나섰다. 최근엔 새 영화까지 단독 개봉하면서 작은 상영관들엔 젖줄이 말라가는 현상이 생겨나고 있다. 이전까지는 멀티플렉스 단독 개봉 영화들은 1년에 1~2편 정도였으며 단독 개봉을 하더라도 작은 영화관들엔 특별히 배급을 제한하지 않았다.
지역에서 수십년 동안 예술영화관을 운영해온 한 영화관 관계자는 “가뜩이나 영화진흥위원회(영진위)에서 선정한 영화를 일정 편수 상영해야 한다는 ‘예술영화관 유통지원사업’으로 영화 선정 자유가 제한된 상황에서 대형 극장들까지 단독 개봉이라는 공격적 마케팅을 펼치면서 정부와 시장이 함께 작은 극장의 숨통을 틀어막는 상황”이라고 성토했다. 예술영화관 모임은 씨지브이가 단독 개봉으로 주요 예술영화를 독점하는 상황을 시장지배자의 횡포로 간주하고 영진위에 실태 조사 및 규제 방안을 모색해달라고 요청하기로 뜻을 모았다. 영진위 공정환경조성센터 한인철 팀장은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지금까지 공식적으로 접수된 사례는 없지만 영화시장 불공정행위 유형에 포함해, 필요하다면 전수조사라도 나서겠다”고 말했다.
단독 개봉에 따른 피해가 사실로 밝혀져도 시정권고 외에는 별다른 규제방안이 없는 것도 문제다. 만약 시장 지배적 사업자인 멀티플렉스가 나서서 일반 상영관 개봉을 막았다면 공정거래법을 위반한 것이지만 이 또한 주장이 엇갈리고 있다. 씨지브이 편성팀 강경호 팀장은 “씨지브이가 단독 개봉을 제안한 일은 거의 없고 배급사 쪽에서 먼저 요청한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마케팅 수단이 마땅치 않은 작은 영화 입장에선 단독 개봉 마케팅 효과 등을 고려한 것이고 실제 <나의 소녀시대> <서프러제트> <본 투 비 블루> 등은 씨지브이 지원으로 기대 이상의 성과를 얻게 된 영화”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상영 공간을 줄이는 것이 작은 수입·배급사들의 자율적 결정이었겠느냐는 의심도 여전하다.
또 스크린의 절반 이상을 한 멀티플렉스에서 소유하고 있는 상황에서 단독 개봉 방식이 공정한가에 대한 의문도 있다. 단독 개봉은 다른 영화 상영 기회를 제한할 뿐만 아니라 관객들이 특정 영화를 보기 위해선 특정 극장에 가도록 유도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서울 서대문 아트하우스 모모 최낙용 부대표는 “단독 개봉은 특정 제품을 특정 업체에서만 팔겠다는 것인데, 관객을 위해 올바른 선택일지 생각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남은주 기자
mifoco@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