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일 대한극장에서 열린 <자백> 시사회 모습. 엣나인필름 제공
씨지브이의 문이 다시 굳게 닫혔다. 국가정보원의 간첩조작 사건을 다룬 다큐 영화 <자백>이 주요 멀티플렉스에서 시사회 개최도 거부당하면서 상영될 자리를 얻지 못하고 있다. 시사회는 영화 개봉을 앞두고 배급사가 극장을 빌려 좌석수에 맞춰 돈을 지불하고 여는 행사다. 사회비판적인 영화들에 대한 상영 차단 논란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최근엔 아예 대관조차 거부하는 사례들이 나오면서 영화계에선 멀티플렉스의 자체 검열이 갈수록 심각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29일 배급사 엣나인필름 정상진 대표는 “10월13일 개봉을 앞두고 영화 후원자들을 대상으로 한 시사를 열기 위해 여러 차례 멀티플렉스의 문을 두드렸으나 메가박스에서만 허락을 받았고 씨지브이와 롯데시네마 모두 자신들의 극장에서 <자백>을 상영할지를 아직 결정하지 않았으므로 사전 시사회도 곤란하다고 불허했다”고 밝혔다. 이날 롯데시네마는 다른 상영관이 없는 경주 지역에 한해 영화 <자백> 시사회를 허용하기로 했다고 알려왔다. 엣나인 필름 쪽은 “그동안 대부분 영화들이 상영여부와 관계없이 여러달 전부터 극장에서 시사회를 열어왔는데 유독 <자백>만은 ‘상영이 결정되지 않으면 시사도 열 수 없다’는 논리로 막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고 밝혔다.
<자백>은 지난 6~8월 포털사이트 다음에서 스토리펀딩을 진행, 1만7621명의 후원자를 모았다. ‘멀티플렉스에서 <자백>을 볼 수 있게 해달라’는 뜻으로 ‘내 극장표 예매하기’라는 주제로 진행된 이 펀딩을 통해 4만3천여명이 영화 후원에 나섰다. 제작사는 이들에게 티켓을 돌려준다는 차원에서 시사회를 진행해왔지만 주요 체인들의 거부 때문에 시사회 규모는 절반으로 줄어들게 됐다.
이름을 밝히지 말아달라는 한 배급사 대표는 “멀티플렉스가 작은 영화는 관객이 많지 않다는 이유로 상영횟수를 줄이는 경우는 있지만 배급사가 모든 비용을 대는 시사를 거부한 사례는 드물다. 수익을 내는 일을 굳이 마다하는 배경이 궁금하다”고 말했다. 또 시네마달 김일권 대표는 “최근 몇년 동안 멀티플렉스들은 정부비판적이거나 정치적으로 논란이 될 만한 영화에 대해선 시사회뿐 아니라 상영, 개봉 이후 단체 관람 등 모든 종류의 장소 제공을 거부해왔다”며 이번 사태 또한 멀티플렉스 쪽의 ‘정부 눈치보기’ 연장선에서 이뤄진 일이라고 지적했다. 시네마달은 <다이빙벨> <나쁜 나라> <업사이드다운> 등 세월호를 소재로 한 영화들을 잇달아 배급해왔지만 이중 어느 한편도 멀티플렉스에선 상영되지 못했다. 영화 <또하나의 약속>을 배급한 오에이엘 김이정 이사는 “<또하나의 약속>은 개봉 전엔 부성애를 담은 이야기라 해서 시사까지는 할 수 있었지만 개봉 이후 삼성반도체 노동자들의 이야기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극장은 단체관람도 거부하고 관객들에게 예매를 취소할 것을 요구하는 일까지 있었다”고 전했다. 영화계에서는 <또하나의 약속> <천안함 프로젝트> 등이 상영 중단되며 논란이 커지자 이제는 아예 논란이 예상되는 영화에 대해선 사전 시사부터 막으려는 것 아니냐는 추측도 나온다.
씨지브이는 지난해 6월 개봉한 <소수의견>과 2월24일 개봉한 영화 <귀향> 시사회도 불허했다. <귀향>은 개봉을 2주일 앞두고 상영 기회를 주지 않는 멀티플렉스에 대한 비난여론이 확산되면서 뒤늦게 3개 멀티플렉스 모두 상영을 결정하기도 했다. <자백> 최승호 감독은 “문화방송에서 내가 만든 프로그램이 ‘불방’되며 쫓겨났는데 극장에선 상영거부를 맞게 됐다”며 “멀티플렉스에서 관객들의 요구를 무시하면서 시장논리에도 어긋나는 시사회 거부에 나선 이유를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지금껏 50여 차례 1만명을 대상으로 시사회를 진행해온 <자백>은 앞으로 개봉전까지 40번의 시사회를 추가로 열 예정이다.
남은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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