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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거꾸로’ 시대 소년의 생채기와 억척 엄니

등록 2005-11-02 18:34수정 2005-11-03 14:42

영화 - ‘사랑해, 말순씨’ 리뷰
<사랑해, 말순씨>의 배경인 1979년에서 1980년, 박정희가 죽었고 짧고 잔인했던 봄을 거쳐 전두환이 청와대 안방을 차지했다. 그리고 ‘국부’를 자처한 자들이 역사의 시계바늘을 거꾸로 돌려대던 그 시절에도, 무기력한 ‘생물학적 아버지’를 사우디로 떠나보낸 중1 소년 광호(이재응)는 억척스런 엄마 말순씨(문소리)와 함께 생의 시계바늘을 따라 성장하고 있었다.

이 영화는 그 또래 소년들이 으레 그렇듯 뽀대 안 나는 엄마를 밀쳐내려하고, 옆집 누나를 성적 판타지로 꿈꾸며 성장해가는 광호의 이야기를 다룬다. 하지만 폭압적인 세월은 소년의 성장에 더 어둡고 깊은 생채기를 냈다. 불발탄을 가지고 놀다 손가락이 잘린 친구 태호는 불량배로 찍혀 퇴학을 당했고, 지능이 낮았던 동네 다운증후군 형 재명은 위험인물로 분류돼 정신병원으로 끌려갔다. 광호의 짝사랑 은숙 누나도 전라도 사투리를 감추고 간호사인 척하는 간호조무사로 서울에 살지만, 급박한 순간 제 고향말을 내지르며 고향으로 돌아갔다. 그들은 저마다 억울했고, 그들의 억울함을 증언하지 않았던 광호는 쉽게 내려놓을 수 없는 죄의식을 얻는다.

<인어공주> 박흥식 감독의 새 영화 <…말순씨>는 박 감독이 광호 또래로 그 시절을 앓지 않았다면 만들어지지 않았을 영화다. 하지만 감독은 광호와 광호 주변 인물들의 세월을 직설적으로 그 시대의 탓으로 돌리지 않는다. 다만, 자신의 기억들을 꼭지점으로 찍어 스케치를 마친 뒤 그 시대를 거쳐 온 사람들이 기억하는 빛을 보태 색을 입히듯, 개인적인 이야기 위에 역사를 살포시 포갤 뿐이다. 그로 인해 <…말순씨>는 아직 끝나지 않은 역사를 맥빠지게 박제화하는 듯한 느낌을 주기도 하지만, 시대를 직설적으로 증언하는 다른 영화들보다 그 시대를 살았던 이들의 기억에 정직하게 다가가는 측면도 있다. 광호가 ‘너무 오래 걸려있어 사진을 떼내도 벽에 흔적으로 남은 박정희의 얼굴’과 ‘대통령이 죽었는데 운동장에서 축구를 했다고 죽도록 얻어맞았던 추억’을 곧바로 ‘그 시대’로 이해할 수 없었던 것처럼, 많은 이들이 자신의 일상에 파고들었던 그 시대의 흔적을 예민하게 자각하지는 못했을테니 말이다.

또 하나, 이 영화가 70~80년대를 다룬 다른 영화들보다 좀 더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부분은 바로 말순씨, ‘엄마’다. 버스에 빈자리가 생기면 일단 궁둥이부터 들이밀고 큰 소리로 아들의 이름을 불러대는 그 엄마는, 그 시절 자식들에게는 “모르는 사람인데요” 하고 싶을 정도로 창피했지만, 이제와 생각해보면 더없이 애틋한 그 시대의 억척스런 보통 어머니였다. 3일 개봉.

전정윤 기자 ggum@hani.co.kr, 사진 블루스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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