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영상 공유 사이트에서 광고를 검색하면 타이(태국)에서 만든 감동적인 광고들이 으레 상위권에 올라 있다. 팬틴 샴푸 광고는 바이올린 연주자가 된 청각장애 소녀 이야기를 담았고, 한 보험회사 광고는 이웃을 위해 헌신하는 청년을 그린다.
이번엔 영화다. 11월3일 개봉하는 <선생님의 일기>는 타이 광고를 만들던 니티왓 다라톤 감독이 만든 영화로 타이산 광고들이 보여줬던 정서를 잘 짜인 줄거리와 영상에 담았다.
전기도 수도도 없는 타이 북부 오지마을, 강 위에 세운 수상학교엔 학생도 4명뿐이다. 문신을 새겼다는 이유로 밉보여서 이곳으로 쫓겨난 앤은 억울함과 외로움, 아이들에 대한 마음과 생활 속 자잘한 사건 모두를 일기장에 털어놓는다. 앤이 떠나고 1년 뒤 이곳으로 발령난 체육교사 송은 앤의 일기장을 보면서 그를 사랑하게 된다. 한 남자가 우연히 발견한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여자의 일기장만으로 사랑에 빠져 그를 찾아내 결혼했다는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이야기다. 두 남녀를 잇는 빠른 교차편집과 재치있는 대사들, 타이의 자연이 한데 모여 태풍이 오면 흔들리는 협소한 수상학교는 로맨스의 공간이 된다.
한국에 타이 영화를 알린 <옹박: 무에타이의 후예>. 쇼박스 제공
타이 영화가 바뀌고 있다. 처음 한국에 알려진 타이 영화는 ‘옹박’ 시리즈로 2004년 <옹박: 무에타이의 후예>가 첫 주자였다. <옹박>은 마을의 수호신인 불상 머리가 도난당하자 무에타이 고수인 청년이 도시에 나가 이를 되찾아오는 액션영화로 한국에서 40만 관객을 동원했다. 다음해 <옹박: 두번째 미션>도 45만명이 봤다.
타이의 호러영화가 본격적으로 소개되기 시작한 것도 이즈음이다. 죽은 사람들이 사진에 찍힌다는 <셔터>(2005)는 34만, 홀로 남은 샴쌍둥이에게 벌어지는 일을 담은 <샴>(2007)은 52만, 멈추지 않는 악몽에서 시작하는 <바디>(2007)는 11만명이 보는 등 신비주의적 세계관을 공포스럽게 묘사한 타이 호러는 일본 공포영화의 대체재 역할을 해왔다. 2002년부터 2014년까지 네 편이 만들어졌던 ‘잔다라’ 시리즈처럼 드라마에 호러나 무협적 요소를 가미하는 시도 또한 끊임없이 이어져왔다.
타이 호러물은 다른 장르에서도 줄기를 제공했다. 공포 형식을 차용한 코미디로 타이에서 천만 관객을 모은 <피막>. 타임픽처스 제공
<선생님의 일기>는 타이 영화의 달라진 흐름을 대표하는 작품으로 꼽힌다. 2014년 <선생님의 일기>를 초청했던 부산국제영화제 김지석 수석프로그래머는 “태국은 2000년대 초반부터 새로운 감각의 로맨스영화가 붐을 이루고 있다”며 “<선생님의 일기>는 로맨스 장르의 간판 스튜디오인 지티에이치(GTH) 스튜디오 작품으로, 이곳에서 타이 젊은 감독들을 대거 배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유지선 프로그래머도 “과거 호러물에서 보여준 저력이 로맨스영화를 통해 성장하며 점점 작품성 있는 영화들로 나아가고 있는 추세”라고 전했다.
한국 드라마의 영향도 볼 수 있다. <선생님의 일기>에서 앤은 외진 학교에 앉아 “제주로 귀양 온 장금이도 아니고…”라며 투덜거린다. 타이에선 2003년 로맨스 장르가 태동할 때 이정국 감독의 <편지>를 리메이크한 바 있다. 2010년엔 <헬로 스트레인저>를 한국에서 촬영하기도 했다.
타이산 로맨스물만의 색깔도 짙다. 김 프로그래머는 “학창시절과 관련한 로맨스영화가 압도적으로 많고 동성애 로맨스 영화가 많다는 것도 특징”이라고 소개한다. <선생님의 일기>를 수입한 미로비젼 채희승 대표는 “일본은 일상과 판타지, 대만은 성장영화 위주인 데 비해 태국은 잘 자란 청년들의 순수한 감성을 이야기한다”고 했다. 깊어가는 가을, 열대 나라의 감성 드라마가 한국 관객의 마음을 건드릴 수 있을지 궁금해진다.
남은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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