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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큰‘형’ 못지않게 아름다운 ‘작은형’

등록 2016-11-21 14:39수정 2016-11-21 16:22

<작은형>, 조정석·도경수 <형>과 비슷한 설정
3억 예산 작은 영화지만 순도높은 주제·열연 호평
<작은형>이 그려내는 성묘 장면은 웃음과 눈물을 중시하는 한국 가족물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장면으로 꼽힐 만한다. 파인스토리 제공
<작은형>이 그려내는 성묘 장면은 웃음과 눈물을 중시하는 한국 가족물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장면으로 꼽힐 만한다. 파인스토리 제공
기묘한 우연이다. 23일 영화 <형>(감독 권수경) 개봉에 이어 30일엔 영화 <작은형>(감독 심광진)이 관객을 찾는다. 심지어 설정도 유사하다. <형>은 경기 도중 사고를 당해 시신경에 손상을 입고 앞이 보이지 않게 된 동생(도경수) 앞에 사기 전과 10범인 형(조정석)이 나타나 사기를 치려고 한다는 이야기고, <작은형>은 부동산 사기로 막 출소한 동생 동현(전석호)이 지적장애인인 둘째 형 동근(진용욱)을 찾아가면서 사건이 시작된다. 형제를 주인공 삼아 비슷한 시기에 개봉하는 두 편의 영화가 내용마저 형제처럼 닮았다. 그런데 3억원이라는 보잘것없는 예산으로 나중에 개봉하는 <작은형>이 주는 감동은 씨제이(CJ)엔터테인먼트라는 대형 배급사를 통해 먼저 개봉하는 영화 <형> 못지않다.

<작은형> 심광진 감독은 형제 영화가 함께 개봉하게 된 것에 대해 “1999년 4월 짜장면을 소재로 김성홍 감독 <신장개업>과 김의석 감독의 <북경반점>이 일주일 간격으로 개봉했던 것처럼 순전히 우연의 일치”라고 했다. 감독은 또 “설정에서도 서로 힌트를 얻거나 한 일도 없다. 심지어 권수경 감독과 친한 사이라서 권 감독이 촬영하러 갈 때 대신 강의를 맡아준 일도 있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그게 <형>이었다. 우리는 작은 영화라 먼저 개봉한 큰 <형>에 업혀가지만 <작은형>은 2012년 영진위 제작지원을 받은 영화라서 알고 보면 우리가 진짜 형님”이라며 웃었다.

형제 이야기는 언제나 남자들을 울리거나 어깨를 으쓱하게 만드는 남자들의 약점이자 자랑이다. <형>은 코미디, <작은형>은 드라마로 장르는 다르지만 두 영화는 비슷한 성분의 웃음과 눈물로 이루어졌다. 그러나 <작은형>은 신파의 함정을 훌쩍 뛰어넘어 가족물을 통해 이를 수 있는 가장 즐거운 세계로 관객을 인도한다. 바로 나와 종이 다른 사람들과의 사랑이다.

영리하고 약삭빠른 사기꾼 동생에게 지적장애가 있는 형은 ‘하자’ 있는 인간일 뿐이었다. 형과 같은 시설에서 지내는 시각장애인, 다운증후군을 앓는 청년도 비슷한 부류로 보였다. 그러나 그들에게 돈을 뜯어내기 위해 함께 지내다 보니 ‘빼먹고 덤비지 못하게 한다’는 약육강식의 셈법 대신 다른 종류의 법칙이 생겨난다. 사기꾼이 사기꾼이기 위해서는 겉은 친절하고 속은 극도로 냉정해야 하는데 장애인들의 신뢰를 얻기 위해 필요한 것을 채워주려다 점점 서로에게 필요한 존재가 되어버린다. 앞을 못 보거나 아이큐가 48밖에 안 되거나 다운증후군에 걸린 동거인들은 더듬거리며 세상을 살아가지만 욕망의 덫에서 허둥대는 동생보다 유능해 보인다.

영화는 지금까지 다른 영화에서 그려온 비극의 주인공, 하자 있는 인간, 동정받아야 할 대상으로서의 장애인이라는 캐릭터들을 모두 치워버리고 개성과 이야기가 있는 장애인 캐릭터들을 펼쳐 보인다. 작은형 역의 진용욱,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시각장애인을 연기한 이정주, 다운증후군을 앓고 있는 청년 역 이혁 등의 배우들은 모두 영화를 보는 내내 실제 지적장애인이 아닌가 의심할 수밖에 없는 연기를 펼쳤다. 이들이 동근의 어머니 무덤 앞에 모여 춤추고 연주하며 성묘하는 장면은 가족드라마의 진경과도 같은 순간으로 기록할 만하다. 영화를 만든 심광진 감독은 동근과 비슷한 지적장애를 앓고 있는 사촌 동생을 보면서 영화를 구상했다고 한다. “감독님 짜고 찍지 맙시다.” 배우들은 하나같이 무엇에 홀리듯 연기했고 촬영감독은 아예 카메라 동선을 계획하지 않고 다큐멘터리를 찍듯 배우들을 포착하려 했다고 한다. 장애와 비장애, 가족과 남, 진짜 형제와 가짜 형제의 구별이 없는 영화는 이렇게 나왔다.

남은주 기자 mifoc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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