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쩍이는 건 아니지만 쏠쏠하다. ‘무서운 장면 없이 무섭다’는 요즘 호러영화들의 흥행 성적이 그렇다. 10월26일 개봉한 <혼숨>은 첫 주 12만명이 들어 박스오피스 3위를 한 뒤 현재(20일)까지 28만8천명을 동원했다. 지난 9일 개봉한 <위자>의 위세는 더 놀랍다. 첫 주에 21만명을 동원했고 지난 주말(20일)까지 31만명이 영화를 보았다. 2016년의 남은 추운 날에도 굵직한 공포영화들이 개봉을 앞두고 있다. 24일 17년 만에 돌아온 <블레어위치>, 니콜라스 케이지 주연의 <페이 더 고스트>가 개봉한다. 소리 없이 강한 공포영화를 들여다보았다.
■ 한국 공포영화의 새 공식 ‘혼숨’
<혼숨>은 올해 단 한 편 개봉한 한국 공포영화다. 3~4년 전만 해도 여름 전 서너 편씩 개봉하던 공포영화는 지난해 <경성학교> 이래 ‘별종’ 신세가 됐다. 공포 장르 코드를 이야기 전면에 배치한 <곡성>, 좀비물로 천만 관객을 동원한 <부산행>은 ‘공포물’이라는 장르를 내세우지 않았다.
<혼숨>(이두환 감독)은 청소년을 겨냥한 소재를 가져와 저예산으로 제작하고, 타깃 맞춤형 마케팅을 했다. 인터넷 개인 방송 서비스인 ‘아프리카티브이’, 일본에서 시작되어 한국 학생들 사이에도 유행한 ‘혼자하는 숨바꼭질’이라는 ‘혼숨’ 괴담 등을 소재로 가져왔다. 영화 화면은 이동식 카메라를 사용하는 방송화면이 주를 이룬다. ‘실화입니다’라는 자막도 삽입해 ‘페이크 다큐’의 느낌을 강화했다. 시청자들의 반응을 실시간으로 보여주는 채팅창 화면 또한 청소년들에게 익숙한 방식이다. 영화 홍보사 쪽에서는 “공포영화는 호불호가 갈리는 장르라서 타깃을 분명히 했다”며 고등학교 주변에서 홍보물을 나눠주거나 10대들이 자주 드나드는 사이트에 홍보를 했다고 말한다. 개봉도 학생들의 중간고사 끝난 시기를 맞췄다.
김종철 영화평론가는 “일본의 공포영화 대가 구로사와 기요시는 호러 장르는 일반화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대중적이 되는 순간, 본연의 의미를 잃어버리기 때문”이라고 했다. 예산을 낮추고, 신선한 아이디어를 녹여내는 한국 공포영화의 도전이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 공포영화, 파이의 확대
공포영화 저변이 확대되는 것도 청신호다. 관객의 절반이 한국영화를 선호하는 시장에서 ‘제임스 완’ 브랜드로 대표되는 할리우드 공포물은 꾸준히 관객을 모아왔다. 6월 개봉한 제임스 완 감독의 <컨저링2>는 200만 조금 못 미치는 관객을, 8월 개봉한 제임스 완 제작의 <라이트 아웃>은 111만을 동원했다. 10월 초 개봉한 <맨 인 더 다크>(페데 알바레스 감독)를 본 관객은 100만명이다. 특히 <맨 인 더 다크>는 ‘18세 관람가’ 등급을 받아서 공포영화 주요 관객층인 고등학생들은 볼 수 없었다.
영화시장분석가 김형호씨에 따르면 지난 2014년과 2015년 공포영화(영진위 통합전산망 영화 정보기준) 관객 수는 각각 262만명과 246만명이었다. 올해는 11월20일까지 463만 관객을 모았다. <연가시>가 개봉한 2012년 이후 최고의 관객 수다.
김종철 영화평론가는 “외국 공포영화에 100만, 200만 관객이 나오는 것은 드문 일”이라며 호러 영화의 저변이 확대될 가능성도 높다고 바라봤다. “10대 등이 해방감을 놀이기구 타는 것으로 해소하듯이, 공포영화로 해소시켜야 할 스트레스 상황을 겪고 있는 이가 많다.”
■ 무서운 장면 없이 무섭다, 원조와 자매품들
‘무서운 장면 없이 무서운 영화’의 원조로 꼽히는 <블레어윗치>(1999년)는 드디어 후속작이 등판한다. 23일 제목 표기를 바꿔 개봉하는 <블레어 위치>(감독 애덤 윈가드)다. 1999년 <블레어윗치>에서 실종된 헤더의 동생 제임스(제임스 앨런 맥퀸)가 동영상에서 누나의 다른 흔적을 발견하고 친구들과 함께 누나가 실종됐던 숲으로 다시 들어간다는 이야기다.
역시 ‘무서운 장면 없이 무서운 현실감’을 내세우는 <펫>은 12월 개봉 예정이다. 자신을 스토킹하던 한 남자에 의해 철창 속에 갇힌 상황을 그린다.
30일 개봉하는 <페이 더 고스트>는 할로윈 데이에 사라진 아들 찰리를 찾는 아버지 마이크(니컬러스 케이지)의 이야기를 담았다. 마이크는 할로윈데이마다 사라진 아이들이 있고 그들이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 뒤 추적에 나선다.
구둘래 남은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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