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신비한 동물사전>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 포스터
16일 개봉한 해리 포터 시리즈 외전 <신비한 동물사전>(감독 데이비드 예이츠)이 22일 200만 관객을 넘었다. 이번 주말을 지나면 300만 관객을 넘어 지금껏 국내 개봉했던 해리 포터 시리즈를 통틀어 가장 좋은 성적을 거둘 것으로 예상된다. 극장가에선 이 영화의 흥행 요인을 해리 포터 팬들의 결집으로 바라본다. 씨지브이에서 집계해보니 예매 관객 중 20대가 56%, 30대가 22.3%로 1, 2위를 차지했다. 1997년 첫 해리 포터 책이, 2001년 시리즈 첫 영화가 나왔을 때 해리와 비슷한 나이대로 책·영화를 보고 자란 25~35살 독자들을 ‘해리 포터 세대’라고 부른다. 마법적 세계관과 판타지 장르에 처음 개방됐던 해리 포터 세대의 특성을 짚는 일은 지금 문화소비의 주요 경향을 돌아보는 일이다.
2007년 “모든 것이 무사했다”는 말을 남기고 마지막 책 <죽음의 성물>이 끝을 맺으면서 호그와트 마법학교로 가는 9와 4분의 3번 승강장이 닫혔다. 2010년 “이제 모든 것을 끝내야 한다”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시리즈의 마지막 영화가 나오면서 해리 포터는 완전히 추억 속으로 사라진 듯 보였다. 그러나 <신비한 동물사전>은 개봉 첫주 북미에서만 1억달러 매출을 올렸고 앞으로 10년 동안 5부작 시리즈로 이어질 예정이다. 마법은 다시 시작됐다. 아니 실은 중단된 적도 없었다.
■ ‘전세계 동시 개봉’의 원조 해리 포터 시리즈 새 책이 나오는 날이면 아마존과 한국의 서점은 구매자들로 붐볐다. 영화조차 세계 동시 개봉이란 개념이 없을 때 해리 포터는 처음으로 전세계 동시 발간 정책을 폈다. 장은수 편집문화 실험실 대표는 이를 “글로벌 동시 소비에 익숙한 세대의 등장”이라 부른다. “마법을 사랑하고 환상을 수용할 수 있을 정도로 순수를 상실하지 않고 이를 즐길 만한 정신적 여유를 가진 계층으로서 (…) 넘치지 않을 정도의 과시와 자기 충족감을 지닌 세대”(조기숙 <새 세대의 문화 기호, 해리 포터 읽는 아이들>)의 등장이다. 해리 포터 성공 이후 나온 <트와일라잇> <헝거게임>부터 지금도 발간되는 <윔피 키드>까지 세계 동시 발간은 관례가 되고 있으며 지금 핼러윈과 영미 소설 감수성에 익숙하게 자란 한국의 아이들은 세계적으로 똑같은 콘텐츠를 소비하는 게 일상이 됐다.
<신비한 동물사전>에 나오는 이상한 동물들은 해리 포터 세대들이 키웠던 낯선 세계에 대한 상상력을 현재의 것으로 되살린다. 워너브라더스코리아 제공
■ 판타지가 내면화된 세대 미국으로 무대를 옮긴 <신비한 동물사전>엔 해리, 헤르미온느, 론은 없지만 온갖 종류의 동물들이 바글거린다. 반짝이는 것들을 끝없이 집어삼키는 니플러, 은으로 된 알을 낳는 오캐미, 몸을 투명하게 할 수 있는 데미가이즈 등 이름도 낯선 생명체들이 익숙한 주인공을 대체하는 신기한 상황은 인간과 요정과 괴물이 각자의 지분을 갖고 공생하는 해리 포터 세계라서 가능한 일이다.
스스로를 해리 포터 세대라 부르는 홍성호(23)씨는 “해리 포터 첫 권만 해도 다른 나라의 흥미로운 이야기로 여겼다면 10년 동안 시리즈와 같이 성장하면서 마법이나 공상이 내 세계의 일부가 되는 경험을 하게 됐다”고 말한다. 2001년 할리우드에선 해리 포터 시리즈의 첫번째 영화가, 일본에선 <센과 치히로의 모험>이 나오면서 판타지의 토양이 무르익었다. 2002년 개봉한 <반지의 제왕>까지 3개 판타지 작품은 세계적인 매출 기록을 거뒀다. 번역가 박나리(31)씨는 “90년대 후반 한국도 이영도, 이수영, 홍정훈 같은 1세대 판타지 작가들이 나오기 시작하며 판타지문학 전성기를 맞았지만 당시엔 권마다 비슷한 내용의 기승전결을 반복하는 연재소설이 대부분이어서 공장에서 찍어낸 듯한 양판소 소설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그런데 이때 각 권마다 완성도를 갖추고 여러 권이 모여 하나의 거대한 퍼즐을 이루는 판타지 소설, 중세적 세계관이 아닌 동시대의 판타지 소설이 도착했다”고 했다. 한국의 판타지 붐이 영국산 해리 포터로 모이면서 서양의 요정과 괴물 이야기를 공유하는 한국의 해리 포터 세대가 자랐다.
해리 포터 세대의 가장 큰 특징은 스스로 마법세계를 창조해내려는 욕구다. 미국 팬들이 쓰고 한국 팬들이 번역한 해리 포터 문화 비평서 <해리 포터 이펙트>. 엑스북스 제공
■ ‘포터 모어’ 끝없는 이야기 홍성호·박나리씨는 지난 1월 나온 <해리 포터 이펙트>(엑스북스 펴냄) 한국어 번역 작업에 참여했다. 미국 해리 포터 팬 16명이 공동 저술한 해리 포터 현상에 대한 문화비평서를 한국 해리 포터 팬 16명이 번역한 것이다. 해리 포터 세대의 가장 큰 특징은 2차 창작작업에 적극적이라는 점이다. 해리 포터 팬카페는 마법세계의 방대한 역사를 만들고 기록하는 공동 작업을 한다. 해리 포터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을 보도하는 <예언자 일보>를 발행해온 팬들도 있다. 시리즈 작가인 조앤 롤링은 웹사이트에서 팬들과 함께 해리 포터 세계에 관한 새로운 이야기를 계속 만드는 ‘포터 모어’ 작업을 진행해왔다. 독자들은 끊임없는 재창작을 통해 우리가 사는 세상에 해리 포터를 소환하고 평행 우주에 마법세계가 있으리란 믿음을 놓지 않는다.
<해리 포터 이펙트> 번역에 참여했던 이정은(22)씨는 포터 모어가 계속되는 이유를 이렇게 이야기한다. “중학교 2학년 때 외고 입시를 준비하느라 너무 힘들었는데 해리 포터를 보겠다는 생각으로 하루를 견뎠다. 해리 포터 세대들은 대부분 오색찬란하고 아름다운 마법의 이야기를 접하면서 어려운 경쟁의 시기를 건너왔는데 여전히 각박하고 엉망인 청년기가 해리 포터 세계관에 다시 빠져줄 이유가 되고 있다”고 했다.
남은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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