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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칸 화제작 러시…예술영화에 풍덩 빠져볼까

등록 2016-11-28 22:46수정 2016-11-28 23:03

황금종려상 <나, 다니엘 블레이크>
‘주목할만한…' 감독상 <캡틴 판타스틱>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의 <줄리에타>

지난 5월 칸 국제영화제에서 화제가 됐던 작품들이 한꺼번에 몰려온다. 17일 개봉한 <줄리에타>는 칸 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올랐던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의 영화다. 30일엔 ‘주목할만한 시선’ 감독상을 받은 맷 로스의 <캡틴 판타스틱>이 개봉한다. 칸 황금종려상을 받은 켄 로치 감독의 <아이, 다니엘 블레이크>는 12월 8일부터 상영에 들어간다.

<나, 다니엘 블레이크> 한 장면진진 제공
<나, 다니엘 블레이크> 한 장면진진 제공
<나, 다니엘 블레이크>: 켄 로치 ‘노답 세상’을 겨누다

드디어 12월8일 국내 개봉한다. 좌파 리얼리스트 거장 켄 로치(80)의 작품이다. 지난 5월 생애 두번째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았다. ‘이제려나 저제려나’ 기대를 부풀렸던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다.

영국 뉴캐슬의 59살 목수 다니엘 블레이크의 분투와 좌절을 그렸다. 그가 맞서 싸우는 대상은 국가이고 시스템이다. 무사안일, 복지부동의 관료주의가 그의 드러난 첫째 적이다. 그는 평생을 목수로 성실하게 살았다. 심장병 악화로 일을 쉬라는 주치의 진단을 받았다. 그러나 겹겹의 장벽에 부닥친다. 아픈 건 심장인데, 팔다리를 쓸 수 있다는 이유로 질병수당 신청은 기각된다. 재심 청구는 복잡하고 기약 없다. 콜센터는 1시간 넘게 통화 중이고, 돌아오는 대답은 ‘전달할 테니 기다리라’이다. 할 수 없이 실업수당을 신청하는 것도 지난하기만 하다. 마우스가 뭔지도 모르는 그에게, 당국은 인터넷으로만 접수할 수 있다는 원칙을 들이댄다.

그가 지키려는 것은 존엄성이다. 그는 결코 일부러 쉬려는 게 아니다. 하지만 당연히 누려야 할 시민의 권리를 인정받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오히려 시대 부적응자, 놀고먹으려는 놈팽이 취급을 받는다. 여기서 영화는 가려진 두번째 진짜 악당을 가리킨다. 성실하고 정직한 블레이크가 어째서 이런 부당함에 내몰리는 걸까?

카프카식 관료주의의 문제만이 아니라는 단서가 곳곳에 박혀 있다. 질병수당 심사관은 영국 정부 하청을 받은 미국 업체 소속이다. 콜센터도 외주이고, 인터넷 접수센터 또한 동떨어진 곳에 있다. 민영화와 외주, 분사 등 신자유주의 ‘혁신’의 세례가 공공 복지제도마저 찢어발긴 것이다. 그 후과는 가장 먼저 정직하거나 준비 없는 사람을 덮친다. 이 모든 건 복지 청구를 어렵게 해 비용을 줄이려는, 그럼으로써 사람들이 나쁜 질의 일자리나마 군말 없이 부여잡게 하려는 자본과 정부의 의도적 합작품임을 영화는 폭로한다. 복지센터에서 유일하게 온기를 품은 직원은 블레이크에게 말한다. “전에도 봤어요. 착하고 정직한 사람들이 거리로 나앉더군요.”

로치는 수상 소감에서 “다른 세상이 가능하다고 외쳐야 한다”고 말했다. 영화는 ‘분노’와 더불어 ‘연대’를 희망의 근거로 앞세운다. 블레이크는 끼니거리, 생리대도 마련하지 못하는 싱글맘 케이티 가족에게 따뜻한 손길을 내민다. 케이티는 마지막 장면 블레이크의 말을 대신 전한다. “나는 인간적 존중을 요구합니다. 나, 다니엘 블레이크는 한 명의 시민입니다.” 웃음, 눈물을 섞어 지루할 틈 없이 현실에 대한 숙고로 관객을 이끄는 거장의 솜씨는 ‘할배, 살아 있네!’를 절로 외치게 만든다.

손원제 기자 wonje@hani.co.kr

도시로 나온 캡틴의 가족. 더쿱 제공
도시로 나온 캡틴의 가족. 더쿱 제공
② <캡틴 판타스틱>: 자본주의 거부한 21세기 추장 가족

호소다 마모루 감독은 첫아들이 태어나자 도시를 벗어나 고향으로 돌아가 아이를 키울 꿈을 꾸며 <늑대 아이>를 만들었다고 한다. 린 램지 감독은 엄마 되기를 두려워하다 <케빈에 대하여>를 만들었다. 부모 됨의 꿈과 불안이 영화를 만든다. 30일 개봉하는 <캡틴 판타스틱>도 감독이자 배우인 맷 로스가 가진 한 가지 질문에서 나왔다고 한다. 최고의 부모가 되고 싶다. 그런데 그게 뭐지?

<캡틴 판타스틱>에서 캡틴(대장)이라 불리는 벤은 여섯 아이를 데리고 외딴 숲에서 산다. 18살 큰아들 보부터 7살 막내까지 아이들은 숲을 뛰어다니며 먹을거리를 사냥하고 짐승처럼 자란다. 이곳은 공동체적인 신념을 추앙하는 부모들의 낙원이다. “미국은 의료는 과잉이고 교육은 저질”이라는 벤의 비판은 한국 부모들이 갖는 문제의식과도 비슷하다. 아이들이 낮엔 정글에서도 살아남을 만한 생존법을 배우고 밤엔 <총, 균, 쇠>나 <우주의 구조> 같은 책을 읽으며 미국 사회에 대한 비범한 토론을 벌이는 생활은 홈스쿨이나 대안교육이 꿈꿨던 이상향이다. 아이들이 마오쩌둥이나 트로츠키, 심지어는 폴 포트까지 각자 원하는 영웅을 갖고 함께 먹고 노래하며 춤추는 생활은 자연주의적 공동체들이 꿈꿨던 그대로다. 그런데 병을 고치기 위해 멀리 도시로 나갔던 엄마가 그곳에서 죽으면서 공동체는 흔들린다. 아빠와 아이들은 기독교 장례식에 따라 묻힐 수밖에 없는 엄마의 정신과 육체를 구하기 위해 출동한다. 영화 포스터 속 빨간 양복 차림을 한 아빠와 머리에 꽃을 꽂은 아이들은 실은 장례식에 가는 중이다. 그들은 소비가 우리의 삶과 죽음 모두를 결정하는 사회에 속하기를 거부하는 21세기 히피, 가족 공동체다.

그렇지만 우리의 삶은 또래에 의해, 동시대 사회집단에 의해 결정된다. 고립됐지만 풍요로운 이들의 삶은 영원히 행복할 수 있는가. 7살에게도 성교와 죽음을 가르치고 아이들과 함께 슈퍼마켓을 터는 벤은 숲에선 캡틴, 도시에선 범죄자다. 보통 진보적이었던 부모들도 아이가 태어나면 가장 안정적인 양육방식을 택한다. 영화는 시시때때로 한때 진보적이었던 부모들을 풍자하기도 하고, 신념을 갖고 고립을 택한 부모들이 옳은지 묻기도 한다. 한때 다른 삶을 꿈꿨던 부모들이 지난 일기를 보듯 웃고 글썽이며 볼 수 있는 영화다.

올해 칸영화제 때 주목할 만한 시선 감독상을 받으며 화제가 됐던 영화는 선댄스 영화제 경쟁부문에도 올랐다. 어릴 때 실제 비슷한 공동체에서 생활했다는 감독은 “민중에게 권력을, 권위에 저항하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아이들을 찍기 위해 아역 배우들에게 하워드 진이 쓴 <미국 민중사>를 비롯한 책들을 읽게 했다고 한다.

남은주 기자 mifoco@hani.co.kr

<줄리에타> 쇼미미디어앤트레이딩 제공
<줄리에타> 쇼미미디어앤트레이딩 제공

③ <줄리에타>: 딸한테 들려주는 ‘지못미' 엄마의 삶

어느날 딸이 사라졌다. ‘내 인생에 엄마의 자리는 없다’는 듯 엄마를 거부하고 떠나버렸다. 12년 동안 딸의 흔적도 찾을 수 없는 고통. 이제 상처투성이 마음에 딱지가 앉고 겨우 새로운 삶을 시작하려는 때 딸의 행방에 대한 단서를 전해듣는다. 다시 딸을 찾아 헤매면서 엄마 줄리에타는 딸에게 자신의 인생에 대한 긴 편지를 쓰기 시작한다.

당신이 엄마라면, 딸이라면, <줄리에타>를 보는 것은 고통스러우면서도 매혹적인 경험이며, 자신의 상처를 어루만지는 행위이기도 할 것이다. 누구보다도 질기게 연결돼 있고, 가장 깊은 상처를 주면서도 끝내 화해를 갈구할 수밖에 없는 이 관계를 슬프고 아름답게 파고든 영화다.

딸에게 쓰는 편지 속에서 줄리에타는 20여년 전으로 돌아간다. 기차 앞자리에서 말을 걸어왔던 남자가 자살한 날 밤, 운명처럼 한 남자를 만나 사랑에 빠지고 딸 안티아를 낳는다. 말다툼을 한 날 남편은 폭풍 치는 바다로 나가 목숨을 잃는다. 그날 이후 무너져내린 엄마를 극진히 보살피고 서로 의지하며 살아가는 듯 보였던 딸의 마음엔 무엇이 쌓여간 걸까.

여성의 삶, 여성들 간의 관계를 탐구해온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의 20번째 작품이다. 캐나다 작가 앨리스 먼로의 소설 3편을 각색해 영화로 만들었다. 그의 전작들에 비해 이야기와 인물은 훨씬 간결하지만, 사랑, 죄책감, 애증, 상처, 분노, 용서를 통과해가는 여인의 삶을 간절하게 전달한다.

딸의 시선으로 어머니의 삶을 이해해가는 영화는 많지만, 이 영화는 어머니 자신의 이야기다. 어머니가 딸을 완전히 이해하고 화해할 수 있다고 섣불리 말하지도 않는다. 줄리에타는 나약하고 고통으로 주저앉는 어머니이지만, 용감하고 적극적으로 사랑하며 아름다운 여성이다. 사슴이 쫓아오는 기차에서 사랑의 격랑에 몸을 던지고, 딸이 머리를 말려주는 수건 아래서 나이든 여자로 변해버린 줄리에타는 신화 속 여인 같다. 아드리아나 우가르테, 에마 수아레스 두 배우가 젊은 시절과 중년의 줄리에타를 연기하며 독특한 매력을 발산한다.

감독은 애초 제목을 ‘침묵’으로 하려 했다고 한다. 가족 사이에 자기 삶을 솔직히 말하기는 얼마나 어렵던가. 그 침묵 때문에 얼마나 많은 오해와 상처가 쌓이는가. 줄리에타가 딸에게 자기의 삶을 털어놓는 편지를 쓰는 것은 가장 용기 있는 일이며, 인생을 직면하는 행위이기도 하다.

소중한 사람을 잃은 뒤에야 엄마의 고통을 이해하고 연락을 해온 딸을 찾아가는 어머니. ‘너 같은 자식 낳아 키워봐야 부모를 이해할 수 있다’는 뻔한 결론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모녀, 가족의 이야기란 어쩌면 가장 진부하면서도 강렬한 신화일 테니.

박민희 기자 mingg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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