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김하늘. 필라멘트 픽쳐스 제공
“온 국민이 다 아는 청량하고 밝은 김하늘의 이미지를 전복시켜보고 싶었다”는 김태용 감독은 영화 <여교사>에서 배우에게 “한번도 보지 못했던 김하늘의 얼굴”을 주문했다. “저는 김태용 감독님이 나한테 왜 이 대본을 줬는지 너무 궁금했어요. 처음 만나자마자 대체 어떻게 날 이 역할로 생각할 수 있냐고 물었어요. 그런데 감독님이 제가 <힐링캠프>에 나왔을 때 잠깐 보였던 가라앉아 있는 표정에서 효주(<여교사>의 주인공)를 봤다는 거에요. 그 얘기를 듣곤 이분이 나의 어떤 점을 찾아냈구나, 믿어버렸어요.” 그러니까 <여교사>에서 음지의 식물 같았던 김하늘의 연기는 변신이라기보다는 발견이었다.
<여교사>에서 김하늘은 잡무를 떠넘기는 정교사와 대드는 아이들 사이에 끼어 치사하고 더러운 일상을 감수해야 하는 계약직 여교사 효주 역을 맡았다. 그런데 재단 이사장 딸 혜영(유인영)이 같은 화학 교사로 발령받아온다. 결혼까지 미루고 기다려도 발령받을 수 없었던 정교사 자리를 너무 쉽게 가로챈 혜영을 좋아할 수 없었던 것은 당연했다. 어느날 혜영이 자신이 맡은 반 학생 재하(이원근)와 특수한 관계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효주는 이 사실을 십분 활용해 지금까지의 굴욕을 갚으려 한다. 김하늘의 표정이 영화의 공기를 만들어가는 <여교사>에서 영화는 무기력한 분위기인 전반부와 갑자기 살아 팔딱거리는 후반부로 나뉜다.
여교사역으로 데뷔 19년만에 새로운 캐릭터를 찾아냈다는 평가를 받는 배우 김하늘. 필라멘트 픽쳐스 제공
“재하와 가까워지는 장면부터 감독님과 생각이 많이 엇갈렸어요. 감독님은 사랑이라고 생각하고 연기하라고 하셨는데 저는 그냥 착각이었다고 생각했어요. 아무 즐거움, 희망, 위안이 없이 살던 여자에게 나타난 흥미로운 일을 사랑이라고 착각한 거죠. 시나리오에서 재하가 벗어놓은 교복을 보면서 냄새를 맡는 장면이 있는데 저는 그냥 그 옷을 개어놓는 것으로 바꿨어요. 여자의 입장에서 의견을 많이 냈고 그 의견이 대부분 받아들여지는 과정이 정말 재미있었어요.”
“열손가락 깨물어 안아픈 손가락 없다지만 <여교사>는 내게 가장 아픈 손가락”이라는 김하늘에게 이 영화는 특별하다고 했다. “여러 영화에서 여주인공을 했지만 대부분 슬픈 표정을 얼굴 가득 짓거나 마음에 사랑을 가득 담고 표정이나 눈에서 그런 걸 발산하는 연기를 했던 것 같아요. 이번엔 무표정하고 무미건조한 얼굴이었으니 정말 달랐죠.”
‘로코퀸’ 김하늘이 결혼뒤 처음으로 선보인 영화가 여자들의 심리를 바탕으로 한 스릴러 드라마라는 점도 의미있다. 많은 여배우들은 결혼하고 나면 갑자기 망가진 모습으로 돌아와야 했다. 기혼 여배우를 위한 역할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김하늘은 지난 11월 막을 내린 드라마 <공항가는 길>에 이어 4일 <여교사>가 개봉하면서 자신이 서있을 자리를 넓힌 것으로 평가받게 됐다. “데뷔했을 땐 여리여리하고 청순하고 청승맞은 연기를 했어요. 그런 캐릭터들 위주였어요. 그러다 어느 순간 당차고 코믹한 캔디 같은 역할을 하다가 <온에어>부터는 싸가지도 없고 본인 할 말은 다하면서 사랑받는 그런 여주인공을 맡았던 것 같아요.” 1998년 <바이준>으로 데뷔해 벌써 연기생활 19년째를 맞는 그가 맡아온 배역들이 바로 여자 캐릭터의 역사라 할 만하다. 요즘 <여교사>로 ‘제2의 전성기’라는 이야기를 자주 듣는다는 그는 “제가 30살에 <온에어>를 했을 때 ‘제2의 전성기’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요. 그땐 나 이제 마지막인가 했는데 거의 10년뒤 그런 이야기를 또 들으니 이젠 희망이 생긴다”고 했다. <여교사>는 김하늘이 걸어갈 새로운 길을 보여주는 영화다.
남은주 기자
mifoco@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