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김재환 감독은 이명박 정부 5년을 결산하는 영화 <엠비의 추억>을 만들었다. “5년마다 한번씩 현직 대통령에 대한 이야기를 하겠다”던 그는 지금 <미스 프레지던트>를 만들고 있다. <미스 프레지던트>의 ‘미스’는 신화(Myth-)이기도, 실수(Mis-)라는 뜻이기도 하다. 박근혜 지지자를 통해 박근혜를 분석한다는 영화는 잘못된 선택인 줄 알면서 박근혜를 대통령으로 만든 박정희 신화의 근원을 파헤친다.
“지난 8월15일 육영수 여사 서거일에 육 여사 생가에 모였다가 흩어진 사람들을 따라갔는데 거기 모인 사람들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일당 2만원을 받고 극우단체를 따라다니는 이들과는 좀 달랐다. 주체적이고 자긍심이 강하고 애국심이 투철했다. 박사모나 어버이연합과는 결이 또 달랐다. 이들이 지난 대선 박근혜를 찍었던 우리 부모님들과 정서를 같이하며, 실은 그 정서의 출발점이라는 생각이 들어 하나하나 이야기를 나누게 됐다”는 것이 감독이 말하는 영화의 시작이다. ‘일베’(일간베스트저장소)가 지금 우리의 어두운 얼굴이라면 이 와중에도 박근혜에 대한 지지를 버리지 않는 5%는 우리 과거의 일부다. 영화는 박정희·육영수를 너무나 사랑한 탓에 그의 딸까지 대통령으로 만든 사람들을 조명한다.
촛불이 온 나라를 덮을 때 촛불의 반대편, ‘박근혜 하야’를 요구하는 피켓을 부수고 욕하는 무리 속에 있었던 카메라는 우리가 익숙한 세계와는 전혀 다른 가치관과 이야기를 전한다. 촬영 횟수 20여차에 걸쳐 박정희·육영수 신화가 영원하기를 바랐던 노인들을 쫓아다닌 감독은 그들을 부정하기보다는 먼저 속내를 차근히 들어보는 쪽을 택했다. “박정희 시대를 그리워하는 남자와 여자의 언어가 달랐다. 여자들은 ‘내게도 육영수 여사 같은 어머니가 있었더라면…’ 하고 탄식했고, 남자들은 한결같이 ‘그때 얼마나 살기 좋았습니까’라고 말을 맺곤 했다. 그 시절 유일하게 사람대접 받으며 사는 듯 보인 여자처럼 되고 싶은 소망 속에서 ‘육영수 어머니론’이 만들어졌다면, 그전까지 잉여노동 취급을 받았던 남자들에겐 박정희가 자신들에게 ‘새마을운동 역군’이라는 존재 의미를 부여해줬다는 판타지가 존재한다.” 일상적으론 착하고 선량한 이들 노인들의 믿음을 바꾸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다.
“실은 산업화 시대의 저임금 노동자라는 값싼 연료로 자신을 태우며 젊은 시절을 견뎌온 그들에겐 객관적인 사실과 토론이 고통이 된다. 우리 쪽에서 그들을 알고 놓아버리는 청산절차를 밟을 수밖에 없다”는 감독의 말에 따르면 <미스 프레지던트>는 ‘박정희 신화’를 떠나보내는 퇴마의식 같은 영화이며, 그들에게 자긍심을 담보잡힌 세대들을 위한 진혼굿이다.
어린 시절의 박근혜가 근령·지만과 청와대에서 뛰어노는 장면으로 시작해 그가 탄핵과 조기 대선으로 청와대에서 나오는 장면으로 끝맺을 예정인 영화는 촬영 1회차를 더 남겨두고 있다. <미스 프레지던트>는 원래 2004년 김재환 감독이 당시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를 한달 동안 밀착취재하며 찍었던 자료들을 활용해 인간 박근혜와 정치인 박근혜에 대한 총체적 분석으로 만들어질 예정이었으나 영화가 기획됐던 지난봄만 하더라도 현직 대통령을 정신분석하겠다는 정신분석가들이 없어서 방향을 틀었다.
남은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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