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문화 영화·애니

‘사랑하기 때문에’가 착한 영화라고?

등록 2017-01-09 16:33수정 2017-01-09 22:44

[듀나의 영화불평]
영화 <사랑하기 때문에> 뉴 제공
영화 <사랑하기 때문에> 뉴 제공
<광속인간 샘>이라는 제목으로 방영되었던 <퀀텀 리프>라는 미국 드라마가 있다. 이 시리즈의 주인공인 물리학자 샘 베켓은 시간여행 실험을 하다가 과거에 사는 사람들의 몸속에 기생하는 신세가 된다. 그가 홀로그램으로 나타나는 친구 알 칼라비치와 슈퍼컴퓨터 지기의 도움을 받아 숙주의 인생을 더 나은 것으로 바꾸면 그는 다음 숙주의 몸으로 들어간다.

주지홍 감독의 <사랑하기 때문에>도 거의 같은 설정을 취하고 있다. 이 영화에서 차태현이 연기하는 작곡가 이형은 교통사고를 당한 뒤 샘이 그랬던 것처럼 기억을 잃고 다른 사람의 몸에 갇힌다. 에스에프(SF)와 시간여행 설정은 사라졌지만, 이형이 숙주의 몸을 떠나려면 그들의 삶을 더 나은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설정은 같다.

그런데 더 나은 삶이란 무엇일까? <퀀텀 리프>에서는 이게 분명하다. 현대 시간대에 있는 알과 지기가 샘에게 어떤 위기가 닥칠지 알려주기 때문이다. 샘의 목표는 그 주어진 위기를 피하는 것이다. 하지만 <사랑하기 때문에>에서 이형에겐 그런 정보통이 없다. 이형은 그 와중에도 최선을 다한다. 정확히 말하면 다른 사람들에게 더 나은 삶을 주려고 노력하는 게 아니라 어떻게든 몸을 빠져나갈 수 있는 규칙을 알아내어 자기 자신에게 돌아가려 하는 것이다. 그는 그 규칙을 만들어낸 어떤 존재가 선하다고 믿는다.

그 존재는 바로 이 영화의 작가들이다. 나 역시 영화를 보다 보니 그 작가들이 인간들 사이의 사랑을 믿으며 근본적으로 선한 의도를 갖고 있다고 믿게 되었다. 하지만 과연 그들이 만든 규칙이 옳은지, 그 선한 의도가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을 끼치긴 하는지는 확신하기 어렵다.

예를 들어 이혼을 앞둔 부부가 있다. 남편의 몸속에 들어간 이형에게 그 집 아이가 말한 것처럼, 이혼은 늘 싸우는 부부에게 최선의 선택일 수 있다. 물론 우리가 모르는 사연이 있어서 그 사연을 해결하면 다시 관계를 되돌릴 수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영화는 단 한 번도 이들의 과거를 깊이 파지 않는다. 이들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이형을 통해 둘 사이의 감상적인 감정만을 자극할 뿐이다. 부부는 결국 이혼을 포기하지만 그게 올바른 선택이란 걸 어떻게 아는가.

이형이 첫번째로 들어간 고등학생 이야기는 조금 더 심각하다. 1등을 놓친 적 없는 그 학생은 지금 임신한 상태다. 이형은 당연히 낙태를 선택한다. 하지만 이 영화의 작가들은 그 상식적인 선택을 거부하고 남자친구의 사랑과 키스, 그리고 대책없는 낙천주의를 선택하게 한다. 그 낙천주의가 믿을만한 근거에 바탕을 두고 있다면 동의할 수 있다. 하지만 영화는 판단 근거를 주지 않는다. 영화가 끝날 무렵, 우린 그 학생이 아기를 낳았고 서울대에 합격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하지만 영화는 우리가 아는 대한민국에서 이런 상황에 빠진 여자들이 당연히 마주치게 되는 역경을 그 학생이 어떻게 뚫었는지에 대해서는 티끌만한 정보도 주지 않는다.

이 영화의 선의는 굉장히 한국적이면서도 위험한 종류이다. 한국적인 건 당사자의 의사와 무관한 타인의 오지랖에 바탕을 두고 있어서이고, 위험한 건 미리 정답을 주고 여기에 대한 의심과 질문을 차단하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는 판타지지만 이 익숙한 자칭 ‘선의'는 아니다. 이 영화의 뽀샤시한 예쁨에도 불구하고 러닝타임 내내 미심쩍은 기분을 떨쳐낼 수 없었던 것도 당연하다.

듀나 영화 칼럼니스트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문화 많이 보는 기사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1.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2.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3.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4.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5.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