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어깨 위 고양이, 밥> 이야기의 실존 모델인 제임스 보웬과 고양이 밥. 누리픽처스 제공
진중권의 고양이 루비는 책 <고로 나는 존재하는 고양이>의 모티브가 됐다. 천년의상상 제공
외로웠던 마음에 고양이가 찾아왔다. 간섭받기 싫어하는 이 동물은 불쑥 찾아와서 같이 살게 된 사람의 생활을 통째로 바꿔버린다. 4일 개봉한 영화 <내 어깨 위 고양이, 밥>(감독 로저 스포티스우드)에는 고양이 밥을 만난 뒤 밑바닥 생활에서 벗어나 노래를 만들고 책을 쓰게 된 청년의 이야기가 나온다. 키우는 고양이 이름을 따서 자신을 ‘루비 아빠’라고 부르는 문화평론가 진중권은 “이 특별한 존재와 만난 각별한 체험”을 “철학적 사건”으로 해석하고 <고로 나는 존재하는 고양이>라는 책을 썼다. 반려라는 말로는 부족하다. 개인적 사랑이 보편적 예술의 재료가 되듯 지금 고양이들은 예술가들의 뮤즈요 창작활동의 실타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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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을 구하는 고양이 영화 <내 어깨 위 고양이, 밥>의 실존 모델인 제임스 보웬은 노숙자 보호시설에서 지내며 마약중독에서 벗어나려고 애쓰는 사람이었다. 자신의 몸 하나도 지탱하기 어려운 그가 상처받은 길고양이 밥을 떠안게 되면서 주머니는 더욱 텅 비었지만 일상이 다른 것들로 채워지기 시작했다. 영화에서 카메라는 제임스가 아니라 밥의 시선으로 움직인다. 제임스가 남은 동전을 계산하고 걱정하는 모습, 다른 사람들의 불신을 느끼고 상처받는 것을 그저 무심하고 태평하게 관찰할 뿐이다. 그러나 외로움과 고립감을 잊기 위해 헤로인을 찾았던 인간은 그 고양이의 시선에서 위안을 받았다. 오라고 손짓하면 품속으로 파고들고, 외면하면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는 작은 동물 덕분에 그는 마약 없이도 살아갈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게 된다.
“밥은 나와 비슷한 길거리 생물일 뿐 아니라 정말 특별한 존재”라는 제임스의 주장은 다른 애묘인들과 다르지 않다. 그러나 어쨌거나 주인을 떠나지 않는 고양이 밥은 그가 길거리에서 노래할 땐 기타 위에, 주인이 생계를 위해 잡지 <빅 이슈>를 팔 땐 어깨 위에 앉아 있으면서 눈에 띄는 고양이가 됐다. 그들의 동영상이 유튜브를 타고 퍼져 나가자 주인은 자신들의 이야기를 책으로 썼고, 밥은 자신을 주연으로 한 영화에 출연하게 됐다. 영화에선 배우 루크 트레더웨이가 제임스를 연기했지만 고양이 밥은 직접 출연해 자신들의 이야기를 재현했다.
고양이와는 달리 인간은 타인의 시선에 의해 형성되는 존재다. 고양이 밥을 어깨에 얹고 나가던 날, 그전까지 그를 피하기만 했던 사람들이 미소짓고 말을 걸었다. 제임스는 “고양이를 통해 처음으로 인간으로 인정받았다는 느낌을 가졌다”고 했다. 인간다움이란 고양이의 가치를 알아볼 수 있는 능력이 아닐까?
■ ‘고양이 중심주의’ 선언 “인간중심주의에서 고양이 중심주의로 전환할 것을 요청”하는 책 <고로 나는 존재하는 고양이>는 이런 태도를 확실히 보여준다. 고양이가 죽으면 온 가족이 눈썹을 밀고 애도하던 고대 이집트인들이나 잠든 고양이를 깨우지 않으려고 옷소매를 잘라냈다는 선지자 무함마드의 시대를 거치며 고양이는 이교도의 수호신, 상징과도 같은 존재가 됐다. 이에 견줘 기독교 문화권에서 고양이를 마녀의 대리인으로 여기고 고문·학살하던 시대를 겪기도 했다. ‘몽테뉴의 고양이’를 통해 인간중심주의를 비판하고 고양이의 시선 앞에서 부끄러움을 느낀 데리다의 이야기를 전하며 ‘고양이-되기’를 권하는 이 책의 한 가지 목적은 역사와 철학을 털실뭉치처럼 돌돌 말아 쉽고 재미있는 놀잇감으로 던지는 것이다.
그보다 더 큰 목적은 고양이에 대한 찬사를 일삼으며 고양이의 매력에 흠뻑 빠진 심정을 공유하는 것이다. 진중권은 책에서 “철학적 사색의 높이와 깊이뿐만이 아니라 외모까지 너무나 흡사하기 때문에” 자신의 고양이 루비는 “호프만의 소설에 나오는 ‘수고양이 무어’의 후손임에 틀림없다”는 단언까지 서슴치 않는데 자식 자랑은 이기적인 행위지만 같이 있어도 절대 소유할 수 없는 고양이를 자랑하는 것은 죄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처럼 고양이에 대한 사랑은 공유할 수 있다고 믿는 태도가 고양이를 매개로 한 예술을 낳는다. “연기는 고양이의 털이 되고, 불길은 혀가 되고, 별은 눈이 되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세 가지가 하나로 합쳐져 만들어진 것. 그것이 바로 고양이다.”
영화 <내 어깨 위 고양이, 밥>의 한 장면. 누리픽처스 제공
철학자·예술가들과 그들의 고양이. 천년의상상 제공
책에 따르면 역사적으로 이처럼 고양이에 심취했던 시기가 또 있었다. 시인 보들레르가 “내 머릿속에는 예쁜 고양이가 산책을 한다”고 썼던 19세기 무렵이다. 장 폴 고티에, 스테판 말라르메, 델리오 테사…. 고양이는 시인들의 뮤즈요 동료였다. 책은 이 시대에 주로 시인, 지식인, 예술가 등 지식인을 중심으로 열렬한 고양이 예찬이 퍼져 나갔던 이유를 “분방한 자유주의, 철저한 개인주의, 확고한 실존주의, 극한적 자율주의 등 모더니즘의 신화를 체현하고 있는” 고양이성에서 찾는다.
<고로 나는 존재하는 고양이>를 포함해 최근 한달 새에만 고양이를 주제로 한 책이 5권 출간됐다. 지금 대중적으로 열렬한 고양이 예찬이 퍼져 나가고 있다. 고양이성의 대중화다.
남은주 기자
mifoco@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