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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살아남은 자의 시간은 길고 가혹했다”

등록 2017-02-06 10:48

<아주 긴 변명> 니시카와 미와 감독 인터뷰
사고로 아내 잃고도 울지 못하는 남자
대지진 이후 일본 사회 자화상 ‘반향’
<아주 긴 변명> 개봉을 앞두고 한국을 찾은 니시카와 미와 감독. 남은주 기자 mifoco@hani.co.kr
<아주 긴 변명> 개봉을 앞두고 한국을 찾은 니시카와 미와 감독. 남은주 기자 mifoco@hani.co.kr
아내가 갑자기 죽었는데 눈물 한 방울 나질 않는다. 아내가 죽은 그 시간 실은 다른 여자와 함께 있었다는 사실을 고백할 겨를도 없이 세상은 그를 불쌍한 유가족으로 대한다. 나는 비정하거나 비열한 사람이 아닐까? 자신을 들여다볼 용기가 없는 이 남자, 대신 자신의 아내와 함께 죽은 여자의 가족들을 돌보기 시작한다.

16일 개봉하는 영화 <아주 긴 변명>은 가장 가까운 사람을 잃은 뒤에 일어나는 일들을 그린, 니시카와 미와 감독이 직접 쓴 소설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다. <유레루>(2006), <우리 의사 선생님>(2009) 등으로 한국 영화 팬들에게도 친숙한 감독을 2일 서울 종로구 계동 한 카페에서 만났다.

“사실… 한번도 제가 먼저 꺼내본 적이 없는 이야기이긴 한데… 대지진 이후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이 이야기를 처음 구상했던 것은 맞다. 그런데 그 이전에 저와 오랫동안 함께 영화 작업을 해왔던 프로듀서가 뇌경색으로 세상을 떠나고 만 일이 이 영화의 내적 동기가 됐다. 사랑하는 사람이 갑자기 사라지는 경험, 그 이후 혼자 살아가야 했던 시간이 반영된 것이다.” <아주 긴 변명>은 일본에선 2011년 동일본 대지진 이후 살아남은 사람들의 삶을 그린 영화로 반향을 일으켰지만, 감독은 조심스럽게 재난이나 사고 이전 보편적인 상실에 대한 이야기라고 덧붙였다.

감독은 창작활동을 뒷받침해주던 프로듀서를 잃은 자신의 처지를 유명 소설가가 될 때까지 자신을 뒷바라지해주고 죽기 전날에도 머리를 잘라주던 미용사 아내를 잃은 소설가 주인공으로 비유했다. “자신감이 없기도 하고, 사회생활 하는 사람들과는 달리 자기주장만 앞서는 유치한 면도 갖고 있는 극중 소설가는 내 퍼스낼리티이기도 하다”고 서슴없이 말하기도 했다. 물론 상실 이후에 삶을 어떻게 이끌고 갈 것인지는 지금 일본의 보편적 주제이기도 하다.

아이를 원하지 않고 늘 돌봄만 받던 예술가 주인공은 핏줄과 상관없이 남을 돌보면서 자기 정체성을 새롭게 채워간다. 가족관계를 새롭게 조명한다는 점에서 미와 감독을 ‘포스트 고레에다 히로카즈’로 부르기도 하지만, <아주 긴 변명>에서 미와는 가족 너머의 이야기를 발견한다. 엄마를 잃은 두 아이가 주는 눈물과 희망으로 영화는 따뜻하지만, 단순한 낙관만을 보여주진 않는다. 감독은 “사람은 그리 쉽게 성장하고 간단히 변하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그리고 싶었다. 잃었던 인간성을 회복했다고 생각하는 순간 또 다른 병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고 설명했다.

“처음 감독으로 데뷔할 땐 좋은 원작을 찾고 싶다는 욕구가 있었지만 10년 동안 찾아도 찾지 못했다. 좋은 원작일수록 뛰어넘을 자신이 없었다”는 미와 감독은 늘 직접 이야기를 쓰고 영화로 만든다. 소설가, 매니저, 조감독 등 여러 등장인물이 각기 1인칭 시점으로 이야기하는 내용의 원작 소설은 2016년 일본 서점대상 4위에 오르기도 했다. “소설은 어떤 공상도 돈이 들지 않는다는 게 가장 좋다”며 웃는 감독은 한국에서도 <유레루> <어제의 신>에 이어 3번째 장편소설 <아주 긴 변명>을 출간할 예정이다. 감독은 “영화 현장에서도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은 이야기를 만드는 일이다. 이야기를 포기한다면 나란 존재는 아무것도 아닐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일본은 왜 유독 동일본 대지진에 대해서는 작품의 직접적 소재로 삼는 대신 가족이나 친구 등의 상실에 빗대어 돌려 말하는 것일까? 한참의 침묵 뒤 답을 들을 수 있었다. “그것은 정말 엄청난 트라우마, 쉽게 손댈 수 없는 상처, 잊고 싶은 기억이기 때문일 것이다. 일본의 누가 그런 이야기를 보고 싶어할까? 우리는 잊고 싶은 마음과 절대로 잊어선 안 된다는 사명감 사이 딜레마에 빠져 있다. 과연 어떤 식으로 접근하고 어떻게 보여져야 할까. 창작자들은 그 거리감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 상태다. 지진과 원전은 또 다르다. 원전은 돈 문제가 걸려 있어서 스폰서가 중요한 티브이에선 정말 다루기 어려운 문제다.” 그렇게 <아주 긴 변명>은 일본의 비극에 대해, 개인적인 상실에 대해 말한다.

남은주 기자 mifoc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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