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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엑스맨 시대에 보내는 아름다운 조사

등록 2017-02-27 18:12수정 2017-02-27 21:05

17년 엑스맨 지켜온 휴 잭맨 마지막 울버린 <로건> 개봉
<로건> 이해하는 두가지 열쇠 서부극과 <엑스맨의 탄생>
가장 오래된 슈퍼히어로, 새로운 어린 영웅 손잡으며 퇴장
영화 <로건>. 이십세기폭스코리아 제공
영화 <로건>. 이십세기폭스코리아 제공
지금으로부터 17년 전 돌연변이들이 엑스맨이라는 이름으로 모일 때 울버린이라는 금속 손톱을 단 이질적인 존재가 슬며시 끼어들었다. 착한 돌연변이와 나쁜 돌연변이의 치열한 전선을 어슬렁거리던 울버린은 곧 시리즈의 중심이 됐는데, 선한 의지로 싸울 때조차도 가차없이 적의 목을 베고 심장을 꿰뚫는 이 냉혈한은 인간성을 짐처럼 지고 있는 슈퍼히어로의 운명을 가장 날카롭게 드러내는 캐릭터이기 때문이다. 그가 사랑했던 여자들은 모두 다 죽었으며 그중엔 자신의 손으로 죽인 여자도 있었다.(<엑스맨 최후의 전쟁>) 심지어 원작 만화에선 환영에 홀려 자신의 손으로 엑스맨 동료들을 죽이기도 한다. 그는 대부분의 시리즈에서 잃어버린 기억을 찾기 위해 싸우다가 외로움과 분노로 피투성이가 되어 혼자 남곤 했다. 배우 휴 잭맨은 영화 <로건>을 마지막으로 울버린 역에서 하차할 것을 예고했다. 제2차 세계대전 참전군인이자 일본 사무라이기도 했던 전쟁터의 뱀파이어 같은 이 군인을 명예롭게 퇴역시키고 그에게 영원한 안식을 주는 길은 무엇일까? 울버린 시리즈의 2번째 편 <더 울버린>을 만든 제임스 맨골드 감독은 장엄한 서부극 스타일로 헤어지기를 기획했다.

28일 개봉하는 영화 <로건>을 이해하는 가장 좋은 참고서는 두 편의 울버린 영화를 포함해 이전 여덟 편의 엑스맨 시리즈가 아니라 감독의 전작 <3:10 투 유마> 같은 서부극일 것이다. 헐크에게 잡아먹혀도 그의 뱃속을 뚫고 다시 살아났으며, 지구상에서 가장 강한 금속으로 만든 무기를 가진 이 히어로는 마지막 영화에서 늙고 외로운 총잡이처럼 그려진다. 재생능력을 서서히 잃어가는 그는 더 이상 신나게 전쟁을 치르지 않으며, 살기 위해 구차한 노동을 하듯 사람을 죽일 뿐이다. 눈 깜짝할 새 튀어나오던 손톱을 이제는 힘겹게 뽑아들어 효율적으로 심장을 꿰뚫고 머리를 베어내는 그의 모습에선 분노보다는 슬픔과 피로가 느껴진다.

다른 돌연변이 동료들은 다 사라진 세상, 울버린과 프로페서 엑스 교수는 미국 남쪽 국경지대에서 외롭게 살고 있다. 슈퍼히어로 시절의 이름은 잊고 로건과 찰스 자비에로 산 지도 오래다. 로건은 유일하게 그에게 남은 사람, 한때는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두뇌였지만 지금은 휠체어에 앉은 치매 노인이 된 자비에를 애틋하게 보살피지만 그밖의 모든 일에 대해선 환멸과 거부감을 드러낸다. 그는 멕시코 국경을 넘어온 소녀 로라를 안전한 곳까지 데려다 달라는 부탁을 지긋지긋해하면서도 받아들인다.

멕시코와 인접한 남부부터 북쪽 국경지대까지, 그 거리가 중요하다. “난 가야 해…. 사람은 한번 살인을 저지르면, 다신 돌이킬 수 없단다.” 영화에서 3번 되풀이되는 서부극의 고전 <셰인>의 그 유명한 대사는 이 영화가 달리는 서부극의 전통 위에 서 있음을 말해준다. 맨골드 감독은 3시10분 유마행 기차에 범인을 태우기 위해 달리는 <3:10 투 유마>에서 그랬듯이 <로건>에서도 생존을 건 여행을 통해 싸움에 속도를 붙이고 여행의 끝에선 구원의 빛을 비춘다. “당신은 죽어가고 있죠. 죽기를 바라고요.” 영화는 로건 안에 있는 캄캄한 황무지를 알아본 로라의 성장기 같기도 하지만 자신 안에 남아 있는 인간성에 놀라고 기뻐하는 찰스 자비에와 로건의 성장이기도 하다. 또한 이 영화는 ‘아버지 되기’의 의미를 묻는다는 점에서도 <3:10 투 유마>와 흡사하다.

영화 <로건>. 이십세기폭스코리아 제공
영화 <로건>. 이십세기폭스코리아 제공
영화 <로건>. 이십세기폭스코리아 제공
영화 <로건>. 이십세기폭스코리아 제공
왜 로건은 그토록 불행할 수밖에 없는가? 그것은 그가 그리스 비극의 오이디푸스처럼 아버지를 죽인 사람이기 때문이다. <엑스맨 탄생: 울버린>에선 로건의 친아버지가 양아버지를 죽이자 분노한 어린 로건이 자신의 친아버지를 죽이면서 초인으로 각성하는 장면이 그려진다. 그 뒤 오랫동안 기억을 잃은 채 황무지를 떠돌던 그를 찰스 자비에 교수가 데려와 사회적 생명을 불어넣었다. 자비에 교수는 ‘아버지 자비에’를 지키기 위해 분투하는 로건에게 그 자신이 아버지가 되는 자리를 전해주고 싶어하는데 이 대목에서 슈퍼히어로로 시작했다가 서부극의 옷을 입었던 영화는 다시 가족물의 손을 잡는다. 운명의 윤회를 말하듯 그 여정에서 인간적이고 따뜻한 이웃들이 희생당하는 장면도 <엑스맨 탄생: 울버린>의 반복이다.

기존 슈퍼히어로물과 너무나 다른 영화의 질감 탓에 영화가 미국, 한국 등에서 언론 시사를 통해 공개되자 기존 팬들 중에선 실망한 반응도 조금 있었지만 대부분은 슈퍼히어로물의 질적 진화라는 찬사를 보냈다. 이처럼 색다른 길을 밟아 로건이 하차한 이후 엑스맨 시리즈가 어떤 길을 갈지도 관심사다. 영화 마지막엔 새롭게 모인 어린 돌연변이들을 비추는데 그들 또한 지금까지 엑스맨들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다. 영화평론가 허남웅은 “울버린의 뒤를 잇는 로라는 스페인에서 온 배우이며, 다양한 유색인종으로 구성된 어린 초인집단이 새로운 세대를 예고한다. 영화 포스터 속 로건의 모습이 링컨을 닮은 것은 우연이 아니다”고 했다. <로건>은 죄책감과 업보를 짊어진 고전적인 엑스맨 시대의 종말을 알리고 다양한 인종에게 인류를 지켜낼 슈퍼히어로의 바통을 넘겼다. 이 영화가 하필 트럼프 시대에 개봉하는 것은 이상한 우연이다.

남은주 기자 mifoc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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