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중국 춘절(설) 연휴를 맞아 개봉한 저우싱츠(주성치) 감독의 <미인어>는 단숨에 중국 박스오피스 역사를 새로 썼다. 개봉 첫주에만 2억위안(약 400억원)을 벌어들였고 중국 내에서만 총 매출 33억9300만위안(약 6800억원), 1억명 관람이란 거대한 수치로 중국 역대 흥행 1위 기록을 바꿨다. 지난해엔 일본에서도 새로운 흥행 기록이 나왔다. 12년 만에 돌아온 ‘고질라’ 시리즈 <신 고질라>가 지난해 7월29일 일본에서 개봉해 500만 관객 동원, 흥행수입 82억5000만엔을 달성했다. 2016년 전체 영화 흥행 순위에선 <너의 이름은>에 이어 2위를 기록했지만 최근 실사 영화가 저조했던 일본 시장에선 눈에 띄는 기록이다.
한국에서도 지난 23일 <미인어>에 이어 오는 9일 <신 고질라>가 개봉해 중-일 블록버스터 경쟁을 벌인다.
“천하무적이 얼마나 고독한지/ 천하무적이 얼마나 공허한지/ 홀로 정상에 서서/ 찬바람을 맞고 있는/ 나의 고독은 /그 누가 알아줄까” <미인어>는 이 주제가만 들어도 ‘주성치표’임을 바로 알 수 있다. 소림사를 배경으로 틀어도 어울릴 듯한 이 노래는 저우싱츠가 작사·작곡한 것을 주연배우 덩차오가 불렀다. 저우싱츠는 제작·감독을 한 데 더해 각본 참여, 심지어 두 주연배우 앞에 통닭을 150마리 쌓아놓고 연기 지도까지 일일이 했다.
청정 해역 청라만에 사는 인어들은 개발 허가를 받아내기 위해 마구잡이로 바다를 망치는 젊은 부동산 재벌 류헌(덩차오)을 암살할 계획을 세운다. 그러나 가장 예쁜 인어 산산(임윤)은 미인계를 이용해 류헌을 죽이거나 납치하려고 육지로 왔지만 뽑아든 칼을 제대로 꽂지 못한다. 안데르센 동화 <인어공주> 속 인어와 왕자님이 바다 환경 보호 메시지를 전달하는 <미인어>의 줄거리는 이보다 더 단순할 수 없을 정도다. 그러나 완전히 주성치화된 주인공들의 몸 연기와 수산시장을 방불케 하는 반인반어들의 비주얼은 예상보다 강력하다. 저우싱츠 감독은 심지어 주요 등장인물인 문어오빠(나지상)의 팔다리를 잘라 문어철판 구이를 하는 식으로 몸개그를 끝까지 밀어붙인다. 저우싱츠는 중국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난 동화에 중독된 사람이다. 권선징악을 사랑한다. 게다가 대중들은 러브스토리를 좋아한다”고 말했다.
이에 견줘 <신 고질라>는 <신세기 에반게리온>을 만들었던 안노 히데아키 감독의 개성보다는 괴수물이라는 장르적 특성이 빛난다. 1954년 괴수의 습격을 그린 혼다 이시로 감독의 <고질라>를 시작으로 일본에서만 총 28편의 ‘고질라’ 시리즈가 제작되는 등 고질라의 역사는 길고도 넓다. ‘고질라’는 고래를 뜻하는 일본어 구지라와 고릴라의 합성어다. 지금까지 나온 대부분의 시리즈가 1편을 전제로 한 다음에야 이야기를 풀어가지만, <신 고질라>는 바로 지금의 세계를 배경으로 한다.
도쿄만 앞바다에 거대한 생물이 나타난다. 정부가 혼란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사이 키 118.5m, 무게 9만2천톤의 거대 괴수는 상륙해 건물과 철도를 장난감처럼 부수고 무너뜨리며 도심으로 전진한다. 재해 앞에서 탁상공론만 하는 무능한 각료들이나 일본을 희생양으로 삼는 국제정치의 모습을 비추는 것은 ‘고질라’ 시리즈로서는 특이한 점이지만 서사가 정교하지는 않다. 고질라 시리즈의 목적은 그런 것이 아니다. 대신 괴물을 공격하는 무기 하나하나에 꼼꼼한 주석을 달고 하천이 뒤집히고 부서진 기차가 하늘로 날아가는 장면은 컴퓨터그래픽이 아니라 미니어처를 제작해 촬영하는 일본의 전통적인 방식 ‘특촬’을 고집해 시리즈 팬들에게 충실한 태도를 취한다.
본고장에선 전설적인 영화가 된 이 두편의 영화가 한국에선 어느 정도 성적을 거둘지가 관심을 모은다. <신 고질라>는 한국 관객의 괴수물에 대한 거리감을 넘어서야 한다는 과제가 있다. 개봉 1주차인 <미인어>는 지금까지 관객이 3천명을 밑도는 저조한 상황이다. 한국에선 ‘주성치 없는(주성치가 주연을 맡지 않은) 주성치 코미디’가 받아들여지기 쉽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남은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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