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 영화 <고려 아리랑: 천산의 디바>의 주인공 방타마라씨는 “우리에게 한국은 ‘역사적 조국’이지만, 요즘 고려인 4·5세 사이에서는 ‘한류’의 영향이 크다”며 “젊은 고려인들이 ‘코리안드림’을 좇아 무작정 한국으로 가고 싶어 하는 경우도 있는데, 그들에게 조국의 역사와 문화를 가르칠 기회가 더 많이 마련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어머님 참사랑에~ 목이 타는 어린 자식~ 잡으려고 잡으려고 헤매는 길마다~ 피눈물이 고였어요~”
또렷한 한국말로 부르는 한국 유행가였다. 방타마라(75)씨는 한국말은 못하지만, 아직도 그 시절 불렀던 한국 노래 가사는 기억한다고 했다. 카자흐스탄 국립고려극장에서 활동했던 여성 예술가의 삶을 다룬 다큐 영화 <고려 아리랑: 천산의 디바>의 주인공으로, 영화 개봉(25일)을 앞두고 한국을 찾은 그를 17일 서울 마포구 연남동에서 만났다.
“한글을 읽고 쓸 줄 몰랐지만, (한국 노래를) 들으면 제 안에 작은 울림이 일었어요. 어떻게 하면 정확히 발음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구성진 감정을 잘 표현할 수 있을까? 생각을 많이 했어요. 왜냐고요? 저는 ‘카레예츠’(고려인)이니까요.”
방씨는 한국인 아버지와 러시아인 어머니 사이에 태어난 고려인 3세다. 고려인은 러시아를 비롯해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등 중앙아시아 독립국가연합에 사는 우리 동포를 일컫는다. 먹고살려고, 독립운동을 하려고 연해주로 갔던 다른 고려인들처럼 그의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1937년, 스탈린의 ‘고려인 강제이주 정책’ 때문에 카자흐스탄으로 강제이주했다.
들뜬 목소리로 인터뷰를 시작한 방씨가, 영화를 본 소감을 묻자 갑자기 눈물을 글썽였다. “이건 영화가 아닌 인생입니다. 고려극장에서 지낸 25년을 훑는 작업이었다는 점에서 제 인생이고, 그 안에 고려인의 문화가 숨 쉬고 있다는 점에서 고려인의 인생이죠.”
방씨는 어린 시절 드넓은 평원에서 들일과 밭일을 하면서도 늘 노래하며 성악가의 꿈을 키웠다. 15살 때 도시(알마티)로 나와 성악을 공부했지만, 갑작스러운 아버지의 죽음에 꿈을 접고 생업전선에 나서게 됐다. “처음엔 카자흐스탄 극장에서 공연하다 1970년 고려극장으로 옮기게 됐어요. ‘고려인 피가 흐르니 고려극장에서 일해야지’라는 극장장 설득에 월급이 절반밖에 안 되는데도 선뜻 간 거죠.”
고려극장은 1932년 창립 이후 지금까지 200편이 넘는 연극과 음악을 공연하며, 고려인의 문화적 구심점이자 뿌리가 된 곳이다. 방씨는 그곳에서 인생의 전환점을 만들어준 사람을 만나게 된다. 바로 영화의 또 다른 주인공 ‘이함덕’(1914~2002)이다. 고려극장의 초기 설립 멤버이자 ‘인민배우·인민가수’ 칭호를 받을 정도로 명성을 날렸던 이씨는 방씨에게 “고려인이니 고려말로 된 노래도 부를 줄 알아야 한다”고 했다. 스탈린의 소수민족 억압정책 탓에 우리말을 배우지 못했던 방씨는 이함덕을 사사하며 비로소 ‘고려인 디바’로 거듭났다. “함덕 선생님이 한 소절 부르면 제가 따라 부르고, 다시 함덕 선생님이 발음을 교정해주고…. 그런 식으로 배웠어요. 엄마처럼 다정하고 따뜻하게 가르쳐주셨죠. 처음엔 무슨 뜻인지도 몰랐던 노래에 왜 그리도 뭉클하던지.”
풍부한 성량에 깊고 아련한 음색, 아름다운 외모까지 겸비한 방씨는 재즈·민요·러시아와 한국 유행가를 넘나드는 공연으로 1970~80년대 고려극장 순회극단인 아리랑 가무단을 대표하는 가수가 됐다. 이후 그는 25년 동안 강제이주 고려인들을 찾아다니며 그들의 지친 삶을 노래로 위로했다. “우리가 고려인 마을을 찾아가면, 사람들은 제일 예쁜 옷을 입고 관람 준비를 하는 거예요. 꼭 명절이나 잔칫날처럼요. 주로 농촌이다 보니 허름한 곳에서 공연했지만 대접은 정말 융성했죠. 식당 밖에까지 밥상이 줄지어 차려질 정도였으니까요. 그렇게 대접받다 보니 결국 나이 들어 이렇게 몸이 불었나 봐요. 하하하.”
지금은 웃음으로 회상하지만 두 딸을 키우며 한 번에 몇 달씩 순회공연을 다니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아이들이 어릴 땐 남의 손에 맡기고 공연에 나섰고, 초등학교에 다니게 되면서는 순회공연 가는 지역 학교에 며칠씩 보내는 식으로 교육을 이어갔다. “어느 날 첫째가 ‘선생님이 저보고 거짓말쟁이래요’ 하며 우는 거예요. 알고 보니 지리 시간에 선생님이 구소련 지도를 펴놓고 설명하는데, 설명하는 곳마다 딸이 ‘저 여기 가봤어요’라고 한 거예요. 사정을 모르는 선생님은 거짓말이라 여긴 거죠. 하하하.”
올해는 고려인 강제이주 80주년이 되는 해다. 한국에서는 ‘고려인 강제이주 80주년 위원회’가 꾸려졌고, 동포 4세까지로 지원을 확대하는 내용의 ‘고려인 동포 합법적 체류자격 취득 및 정착 지원을 위한 특별법’ 개정을 위한 각계의 활동도 본격화하고 있다. “할아버지는 저녁만 되면 갓을 쓰고 먼 고국 땅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렸어요. 마치 사진처럼 그 기억이 생생해요. 고려인들은 항상 ‘역사적 조국’인 한국을 그리워하며 살아왔어요. 그런 우리를 기억해주니 고맙고 감사하죠.”
2시간이 넘는 인터뷰를 마치고 국회에서 열리는 <고려 아리랑> 시사회에 참석해야 한다며 발길을 재촉하던 방씨가 말했다. “오늘 인터뷰하며 말로 책 한 권 다 썼네요. 하하하.” 그 책은 방타마라의 자서전이자, 고려인들의 역사책이다.
글 유선희 기자
duck@hani.co.kr, 사진 신소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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