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대립군>의 한 장면. 이십세기폭스코리아 제공
5~6월이 영화계 비수기라는 건 옛말이다. <캐리비안의 해적>, <원더우먼>, <미이라> 등 블록버스터급 외화가 줄줄이 대기 중인 가운데 사극 <대립군>(31일 개봉)도 도전장을 내밀었다. 역사적 재평가가 이뤄지고 있는 왕 광해를 다루며, 이정재·여진구·김무열 등 화려한 캐스팅을 앞세운 <대립군>은 과연 외화를 제치고 관객의 마음을 훔칠 수 있을까? 영화 <대립군>의 세 가지 관전 포인트를 짚어본다.
■ 또다시 광해, 어떻게 다른가? “또 광해야?” <대립군> 제작 소식이 전해질 때부터 나온 우려는 ‘기시감’이다. 광해는 각종 영화와 드라마를 통해 여러 차례 재조명된 바 있다. 2012년 1230만명을 끌어모은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는 ‘진정한 지도자의 덕목’이 무엇인지 질문을 던지며 광해 열풍을 불러일으켰다. 드라마 <불의 여신 정이>(2013), <왕의 얼굴>(2014), <화정>(2015)도 각각 광해의 비상한 능력과 인간적인 면모를 두루 다뤄 화제를 모은 바 있다. 관객 머릿속에 광해는 ‘폭정을 일삼은 괴물’이 아닌 ‘비범하지만 정치적 싸움에 휘말려 희생된 비운의 왕’으로 자리매김했다.
<대립군>은 열여덟 광해, 즉 소년 광해에 초점을 맞춘다. 말하자면 <광해, 왕이 된 남자>의 프리퀄인 셈. 임진왜란(1592)이 발발하자 무능한 선조는 의주로 피란을 하며 세자 광해(여진구)에게 분조(임시 조정)를 맡긴다. 임금 대신 의병을 모아 전쟁에 나서라는 명령에 강계로 긴 여정을 떠난 광해와 분조의 이야기가 <대립군>의 뼈대다. 여기에 남의 군역을 대신해 먹고사는 ‘대립군’이라는 참신한 소재가 얹힌다. 대립군의 수장 토우(이정재)는 비천한 팔자를 바꿔보려는 동료들을 이끌고 광해의 대열에 합류한다. 일행은 정체를 알 수 없는 자객들의 습격과 세자를 잡으러 쫓아오는 일본군의 공격을 받는 설상가상의 상황을 겪게 된다.
<대립군>은 그저 아버지의 인정을 받는 것이 목표였던 어리고 나약한 광해가 극한의 어려움을 겪으며 ‘진정한 왕이란 무엇인지’, ‘백성이란 무엇인가’를 깨닫는 과정을 그린 성장 드라마라 할 수 있다. “전란이 아니었다면 내가 세자가 되었겠느냐”며 신분을 부정하고, 자객의 공격에도 칼 한번 휘두르지 못하던 연약한 모습이 전반부라면, 전쟁에 대한 두려움, 아비에게 버려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이기고 왕의 면모를 확립해 나가는 모습이 후반부를 장식한다.
영화 <대립군>의 한 장면. 이십세기폭스코리아 제공
■ 진정한 리더 그리며 현실 빗대는 전략 통할까? “누가 왕을 일깨우고 나라를 세우는가”라는 헤드카피가 보여주듯 <대립군>은 광해를 하늘에서 뚝 떨어진 영웅으로 그리지 않는다. 대신 광해의 성장을 이끄는 존재로 대립군 수장 토우를 내세운다. 남 대신 생사가 오가는 전쟁에 나가고, 군역 기간을 다 채우지 못한 채 아비가 죽으면 아들이 의무를 다해야 하는 대립군은 조선시대 가장 밑바닥 삶을 사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가장 낮은 이와 가장 높은 이가 목적은 다르지만 ‘같은 길’을 걸어가게 되면서, 서로에게 변화를 일으킨다. “애초부터 왕 따위는 되고 싶지 않았다”던 광해는 백성을 지키려고 목숨을 거는 왕으로 재탄생하고, “나라가 바뀌어도 우리 팔자는 안 바뀐다”던 대립군도 “혹시 아냐. 우리 팔자에 없는 성군이라도 날지”라며 나라를 위해 목숨 버릴 용기를 낸다.
“현실을 은유하는 많은 요소가 들어 있다”는 정윤철 감독의 말처럼 영화는 현실을 곱씹게 만든다. 변방 사람 차별을 한탄하는 목소리엔 지역감정의 그림자가 어리고, 백성을 뒤로한 채 배를 불사르며 도망간 선조는 세월호 참사 당시 대통령의 무능을 떠올리게 한다. 무엇보다 광해가 전쟁을 통해 소통하는 법을 배우고 백성의 아픔을 어루만지는 지도자로 재탄생하는 과정은 새 대통령의 행보와 겹치며 울림을 준다.
다만, 핵심인물인 토우의 사연이 영화 속에 전혀 드러나지 않는 점은 아쉽다. 변방으로 이주한 잔반일 것으로 짐작될 뿐, 설명이 부족하다 보니 개연성이 다소 떨어지는 느낌이다. 광해가 변해가는 과정 역시 일차원적이고 뻔하다는 인상을 준다. 잔뜩 힘을 준 대사는 많으나 <광해…>와 같이 심금을 울리는 ‘한 방’이 없는 것도 안타깝다.
영화 <대립군>의 한 장면. 이십세기폭스코리아 제공
■ 폭스, <곡성> 이어 또 홈런? <대립군>은 지난해 <곡성>의 성공으로 한국 영화시장에 뿌리를 내리기 시작한 이십세기폭스코리아가 제작·배급에 참여한 영화다. 100억원 안팎의 제작비를 투입한데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와 겨룬다는 점에서 관심을 끈다. 한국 주요 배급사의 텐트폴 영화(그해의 주력 영화)가 쏟아지는 여름을 피해, 틈새시장인 5월을 공략하는 전략이 또다시 먹힐지도 주목된다. 지난해 폭스는 <곡성>을 5월에 개봉하는 묘수를 둬 688만명이 관람하는 성공을 거둔 바 있다. <곡성>은 평단에서도 호평을 받았다.
영화계 한 관계자는 “<대립군>이 <곡성>에 버금가는 성적을 거둘 경우, 폭스가 기세를 올리며 한국 시장에 안착할 것으로 보인다”며 “폭스와 함께 <대립군>을 공동제작한 리얼라이즈픽쳐스가 <광해…>의 제작사이기도 한 만큼 ‘광해의 마법’이 다시 한번 통할지도 관심거리”라고 말했다.
유선희 기자
duc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