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오후 서울 중구 대한극장에 영화 ‘옥자’의 대형 포스터가 걸려 있다. 연합
칸 국제영화제는 물론 한국 영화계에서도 큰 논란을 부른 봉준호 감독의 영화 <옥자>가 지난 12일 언론시사회를 개최하며 베일을 벗었다. 이제 관객과의 만남만 남은 셈이다. 하지만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인 <옥자>의 극장 상영을 둘러싼 논쟁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넷플릭스가 이날 배포한 자료를 보면, <옥자>의 사전 예매가 가능한 극장은 대한극장을 비롯해 서울극장, 청주 에스에프엑스(SFX) 시네마, 인천 애관극장, 대구 민경관, 전주 시네마타운, 부산 영화의 전당 등 전국 6개 권역의 7개 극장 정도다. 씨지브이(CGV) 등 대형 멀티플렉스 체인들은 “넷플릭스와 극장 동시개봉 입장을 거두기 전에는 <옥자>를 상영할 수 없다”는 강경한 태도다. 넷플릭스와 멀티플렉스 간 힘겨루기는 아직 승패가 갈리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한편에서는 이 문제를 단순히 ‘밥그릇 싸움’이 아닌 영화 생태계의 문제, 플랫폼 변화, 콘텐츠 독과점 우려 등 국내 영화산업을 둘러싼 더 큰 그림의 차원으로 바라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과연 넷플릭스 논란은 ‘시대 흐름과 기술의 진보에 따른 플랫폼 변혁’일까 아니면 ‘자본력으로 무장한 외국 자본의 콘텐츠 독과점 시작’일까?
■
극장의 보이콧은 관객의 볼 권리 침해? 넷플릭스 쪽은 “관객이 <옥자>를 자유롭게 관람할 수 있도록 선택권을 보장해야 한다”고 말한다. 봉 감독의 영화를 기다리는 수많은 팬 역시 현재로서는 이런 의견에 대체로 동조하는 분위기다.
<옥자>는 유료가입자만 세계적으로 약 9300만명을 확보한 미국의 대형 동영상 스트리밍 업체 넷플릭스가 600억원을 투자해 만든 영화다. 190여개국에서 오는 29일 넷플릭스를 통해서만 공개되지만, 한국·미국·영국에서는 극장 동시개봉을 하겠다는 것이 넷플릭스의 계획이다.
씨지브이·롯데시네마·메가박스 등 멀티플렉스 ‘빅3’가 끝까지 상영 불가를 고수할 경우 국내에서 <옥자>를 볼 수 있는 상영관은 190여곳에 불과하게 된다. 이들이 전국 상영관 2500여개 가운데 90% 이상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김성욱 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래머는 최근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한국에서 한국 감독의 기대작을 극장에서 제대로 관람할 기회를 보장받지 못한다는 관객 권리 문제를 고려해야 한다”며 “종이책으로 글을 읽고, 미술관에서 그림을 보고, 공연장에서 음악을 듣듯이, 극장에서 영화를 틀고 관객이 영화를 보는 일이 여전히 있어야만 한다. 그런데 문제는 그들이 틀지 않겠다면 우리가 볼 수 없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멀티플렉스 쪽은 <옥자>를 상영하지 않는다 해도 관객의 볼 권리를 크게 침해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씨지브이 관계자는 “<옥자>는 본래 넷플릭스용으로 만들어진 영화다. 관객은 넷플릭스에 가입만 하면 영화를 볼 수 있고, 결국 일부 극장에서도 상영될 것”이라며 “(넷플릭스가) 국내 가입자 확대를 위해 봉 감독과 <옥자>를 이용하면서, 관객의 선택권을 내세워 극장을 압박하는 것은 온당치 않다”고 말했다. 한 배급사 관계자 역시 “넷플릭스는 <옥자>를 극장에 걸든 걸지 않든 이미 홍보 효과를 톡톡히 누렸다. 관객을 볼모로 하지만, 결국 극장에 걸지 않으면 관객이 넷플릭스 가입자가 될 것이기 때문에 잃을 것이 없는 상황”이라고 꼬집었다.
■
플랫폼 변혁 신호탄인가, 영화 생태계 교란인가? 온라인 스트리밍 업체인 넷플릭스의 성장과 한국 시장 진출을 바라보는 시선은 엇갈리고 있다. 일부에서는 시대와 기술의 진보에 따라 영화 상영 플랫폼이 다변화되고 흥망성쇠를 겪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정지욱 평론가는 “아이피티브이(IPTV)가 등장하면서 비디오 시장이 쪼그라들다 완전히 사라진 것처럼 영화 플랫폼은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며 “국내 멀티플렉스도 더 일찌감치 이런 위협을 고민하고 대응책을 마련했어야 했다. 그저 거부한다고 될 일은 아니라고 본다”고 짚었다. 정 평론가는 이어 “관객 입장에서는 그동안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스크린 독과점 문제 등을 일삼아 온 대형 멀티플렉스들이 생태계 운운하는 것에 대한 심리적인 저항감도 클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반대 의견을 제시하는 쪽은 동시개봉이 ‘투자-제작-배급-홍보-상영-부가수익 창출’이라는 한국 영화 시스템을 완전히 무시한 처사로, 국내 영화시장을 어지럽히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반박한다. 최현용 한국영화산업전략센터 소장은 “한국 영화산업계가 합의한 표준상영계약서상 극장 ‘홀드백’ 기간(한 편의 영화가 극장 상영 뒤 다른 플랫폼으로 이동할 때까지 걸리는 최소 상영 기간)은 최소 일주일이다. 이는 한국뿐 아니라 세계 영화계의 공통된 시스템이며, 한국은 홀드백이 가장 짧은 나라다. 프랑스는 극장 홀드백 기간이 무려 1년이나 된다”며 “넷플릭스는 이런 시스템을 무시하려면 자사 플랫폼에서만 <옥자>를 상영하면 된다. 이걸 그냥 관행일 뿐이라며 무시한다면, 그것은 우리 영화 산업 시스템을 교란하는 것밖에 안 된다”고 비판했다. 최 소장은 이어 “이런 시스템이 무너지면 극장은 수익 확보를 위해 앞으로 더 가혹한 조건을 제시할 수밖에 없고, 피해를 보는 것은 결국 콘텐츠 생산자인 제작사 등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
넷플릭스, 또 다른 콘텐츠 독과점의 시작? 한편에서는 이 문제를 외국 거대 자본의 콘텐츠 시장 잠식으로 바라보기도 한다. 만일 넷플릭스가 <옥자> 동시상영에 성공한다면 다른 거대 자본 역시 넷플릭스의 뒤를 따라 콘텐츠에 투자하고, 제작하고, 심지어 배급까지 나설 수 있다는 것이다.
씨지브이 관계자는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Over The Top)의 주체는 현실적으로 넷플릭스나 아마존 같은 외국계 대기업일 수밖에 없다. 대기업 오티티가 자체 콘텐츠를 앞세워 국내 영화시장에 뛰어들게 된다면 상황이 어떻게 변할지 걱정이다. 면밀한 논의가 우선돼야 한다”고 말했다. 투자·배급은 물론 극장도 운영하는 아트나인 정상진 대표 역시 “국수주의라고 비판할지 모르겠지만, 한국 군소 투자·배급·제작사는 외국 거대 회사가 자본력으로 밀고 들어오면 견뎌낼 재간이 없다. 결국 이는 한국 영화 제작 환경의 다양성을 훼손하고 넷플릭스 같은 외국회사에 국내 콘텐츠 시장이 종속되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엄밀히 말해 <옥자> 역시 미국 영화”라고 말했다. 정 대표는 “이미 방송 콘텐츠 시장은 넷플릭스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종속 현상이 현실화되고 있는 것으로 안다. 넷플릭스가 영화계의 거대 공룡이 되지 말란 법이 없다”고 우려했다.
이에 넷플릭스 관계자는 “넷플릭스는 <옥자>처럼 한국에서 투자를 받기 힘든 대형 프로젝트 등에 투자해 의미있는 콘텐츠를 계속 생산할 것이다. 오히려 한국 콘텐츠 시장을 확대하고 다양화하고 세계화화는 데 기여할 수 있다”고 반박했다. 유선희 기자
duc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