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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나는 개새끼로소이다, 일제에겐

등록 2017-06-18 18:00수정 2017-06-18 21:16

리뷰/이준익 감독 새 영화 ‘박열’
전작 ‘동주’에 이어 역사 속 인물 조명
엄숙·비장미 대신 경쾌·도발적 시선
연인 가네코 이야기는 또다른 축
영화 <박열>의 한 장면. 메가박스㈜플러스엠 제공
영화 <박열>의 한 장면. 메가박스㈜플러스엠 제공
‘나는 개새끼로소이다/ 높은 양반의 가랑이에서/ 뜨거운 것이 쏟아져/ 내가 목욕을 할 때/ 나도 그의 다리에다/ 뜨거운 줄기를 뿜어대는/ 나는 개새끼로소이다’.

‘시대극의 장인’ 이준익 감독의 새 영화 <박열>은 ‘개새끼’라는 시로 시작한다. 1922년 일본 유학생들이 펴낸 잡지 <조선청년>에 박열이 기고한 시다. 양반의 가랑이 아래서 오줌을 맞는 보잘것없는 개새끼지만, 똑같이 양반의 다리에 오줌을 갈길 수 있는 패기를 지닌 개새끼. 이는 일제 치하를 살아가는 박열 자신을 은유한다. 영화 <박열>은 이처럼 불의한 시대에 온몸으로 맞선 한 청년 독립운동가의 모습을 당당하고 도발적으로 그려낸다.

1923년 간토(관동)대지진으로 민심이 폭발 직전에 이르자, 일제는 폭동을 막고 천황 중심의 권력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조선인들이 우물에 독을 풀었다’는 유언비어를 퍼트린다. 이로 인해 6천명이 넘는 조선인이 무자비하게 학살당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일본은 이를 무마하려 ‘공공의 적’을 필요로 하게 되고, 항일운동단체 ‘불령사’에 소속된 박열(이제훈)을 황태자 암살 사건을 주도한 대역죄인으로 체포한다. 영화는 박열이 형무소에 갇히고 세기의 재판이 벌어지기까지의 과정을 촘촘히 그린다.

영화 <박열>의 한 장면. 메가박스㈜플러스엠 제공
영화 <박열>의 한 장면. 메가박스㈜플러스엠 제공
독립투사의 일대기를 다룬 기존 영화들이 엄숙미와 비장미를 강조했던 것에 견줘 <박열>은 민족주의를 넘어선 아나키즘, 부당한 권력에 맞서는 호기로운 용기, 독립을 향한 불타는 열망 등을 경쾌한 필치로 그려낸 점이 돋보인다. 박열은 거칠고 불같은 성미를 지녔지만, 한편으론 일본 판검사를 가지고 놀 정도로 재기와 유머가 넘친다. 그는 기꺼이 일제가 원하는 희생양이 돼 재판정에서 천황의 허상과 일제의 조선인 학살을 폭로하는 투쟁 방법을 택한다.

영화의 또 다른 축은 박열의 연인인 일본 여성 가네코 후미코(최희서)의 이야기다. 그는 박열의 시에 반해 대뜸 ‘동거’를 제안하는 당돌하고 멋진 신여성이며, 일제의 폭압에도 자기 생각을 당당히 읊을 줄 아는 강단 있는 사상가다. 제목은 ‘박열’이지만, ‘가네코 후미코의 이야기’라 느껴질 정도로 감독은 영화의 상당 부분을 그에게 할애한다.

이준익 감독은 “시대를 막론하고 젊은이가 가지고 있는 순수한 신념에 관해 이야기하고자 했다”며 “과연 현재를 사는 우리는 일제강점기 박열만큼 세상을 정면으로 보고 살아가는지 되묻고 싶다”고 밝힌 바 있다. 영화를 보는 내내 90여년 전 인물이 끊임없이 현재의 젊은이에게 말을 거는 듯한 느낌이 드는 이유다.

영화 <박열>의 한 장면. 메가박스㈜플러스엠 제공
영화 <박열>의 한 장면. 메가박스㈜플러스엠 제공
감독은 철저한 고증에 기반해 영화를 만들었다고 강조한다. 영화 속 박열이 가네코 후미코와 찍은 사진을 실제 사진(엔딩크레디트와 함께 등장)과 비교해 보면 감독이 손짓 하나, 몸짓 하나, 말투 하나까지 얼마나 세심하게 되살리려 노력했는지를 느낄 수 있다. 28일 개봉.

유선희 기자 duc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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