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일 서울 용산구 한남동 태흥영화사 2층 사무실에서 임권택 감독의 100번째 영화 <천년학>의 두 아역 배우를 뽑는 오디션이 진행되고 있다. 전정윤 기자 ggum@hani.co.kr
[100]℃르포] 할아버지가 손녀 대하듯…“어이, 잘 한다”
“이리 오너라 업고 놀자 사랑 사랑 사랑 내 사랑이야… 앵도를 주랴 포도를 주랴… 저리 가거라 뒤태를 보자 이리 오너라 앞태를 보자 아장 아장 걸어라 걷는 태를 보자….” 지난 9일 서울 용산구 한남동 태흥영화사 2층 사무실. 업고 놀면 딱 좋을 듯한 어린이들이 앵도 같고 포도 같은 입술을 오물거리며 멋드러지게 판소리 한 소절을 뽑아 제낀다. 안경 너머로 어린이들의 뒤태, 앞태, 걷는 태를 흐뭇하게 보고 있는 사람들은 임권택 감독과 정일성 촬영감독, 그리고 이태원 태흥영화사 사장. 임 감독의 100번째 영화 <천년학>에서 주인공 오정해, 김영민의 어린시절을 연기할 아역배우를 뽑는 오디션 현장이었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4학년…”
이날 오디션에는 모두 25명의 남·녀 어린이들이 참가했다. ‘소리를 하고 북을 잡을 줄 아는 10~12살 가량의 어린이’라는 까다로운 조건 탓에 오디션에 응시한 어린이들은 50여명 정도. 이 가운데 서류심사를 통과한 어린이들이 오디션에 참가했다. 그리고 신양을 비롯해 모든 참가자들이 에이4 용지를 가득 메울 만큼 화려한 판소리 대회 수상 경력을 갖고 있었다. 임 감독은 “<서편제> 때는 이렇게 좋은 아이들이 소리를 배우던 시절이 아니었기 때문에 소리만 좀 하면 그저 고마웠었다”며 “이번에는 훌륭한 자질을 갖춘 아이들이 너무 많이 와줘서 우열을 가리는 데 어려움이 크지만, 우리 소리의 장래가 밝은 것 같아 너무 기쁘다”고 흡족함을 나타냈다. <서편제> 때와 달라진 것은 ‘꼬마 명창’들의 일취월장한 재능만이 아니었다. 고 김소희 명창으로부터 사사한 오정해가 영화 출연 당시 스승과의 갈등설에 시달렸던 것과는 달리, 이번에는 안숙선, 신영희 명창 등 스승들이 직접 나서 재능있는 제자들을 적극 추천했다. 이날 지하에 마련된 ‘학부모’ 대기실에는 두 제자를 데리고 대구에서 올라온 지미희(대구광역시 무형문화재 8호 이수자) ‘선생님’이 두 손을 모으고 제자들의 선전을 기원하고 있었다. 그는 “인터넷에서 오디션 광고를 보고 소리 잘 하는 제자들을 데리고 왔다”며 “두 제자가 나란히 <천년학>의 오누이 역할을 맡으면 바랄 게 없겠다”고 말했다.
임권택 감독 100번째 영화 ‘천년학’ 아역배우 오디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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