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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시민인 택시운전사 눈을 통해 소환된 ‘80년 광주’

등록 2017-07-11 13:55수정 2017-07-11 19:21

[영화 ‘택시운전사’ 리뷰]
가해자·피해자 아닌 외부인인 제삼자 시각으로 그려
광주 참상 알린 ‘푸른 눈의 목격자’ 실화를 재구성
신파 빼고 역사적 무게감·영화적 오락성 잘 버무려
영화 <택시운전사>의 한 장면. 쇼박스 제공
영화 <택시운전사>의 한 장면. 쇼박스 제공
이 영화가 처음은 아니다. 그동안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5·18)을 다룬 극영화는 꽤 여러 편 만들어졌다. <꽃잎>(1996), <박하사탕>(2000), <화려한 휴가>(2007), <26년>(2012)까지…. 영화는 혹시 잊힐까 그 날의 역사적 아픔을 곱씹고 되새김질해왔다. 이들 영화는 모두 피해자, 혹은 가해자의 관점에서 광주를 그려냈다는 공통점을 가진다. 개봉 때마다 흥행 여부와 무관하게 일부에서 ‘감정의 과잉’을 지적하거나 ‘감정이입의 어려움’을 호소한 것은 어쩌면 관객의 대부분이 광주의 가해자도 피해자도 아닌 ‘제3자’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8월2일 개봉하는 <택시운전사>는 그래서 5·18을 다룬 전작들과 차별적이다. 이 영화는 독특하게 택시운전사라는 ‘외부인’의 눈을 통해 광주민주화운동을 그려낸다. 영화의 가장 큰 미덕이 바로 여기 있다.

영화 <택시운전사>의 한 장면. 쇼박스 제공
영화 <택시운전사>의 한 장면. 쇼박스 제공
영화는 조용필의 ‘단발머리’를 흥겹게 부르는 만섭(송강호)의 모습으로 시작한다. 1980년 5월 서울, 만섭은 “부모 등골 빼는 줄도 모르고 데모를 하는 철없는 대학생들 때문에 길이 막힌다”며 열불을 내는 택시운전사다. 아내와 사별하고 홀로 키운 11살짜리 딸과 사는 그는 밀린 사글세 10만원에 괴로워하는 평범한 소시민이다. 어느 날, 그는 우연히 ‘광주까지 데려갔다가 서울로 무사히 복귀하면 10만원을 주겠다’는 한 외국인을 만난다. 그 외국인은 신분을 숨긴 채 광주를 취재하러 온 독일인 기자 피터(토마스 크레취만). 만섭은 광주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전혀 알지 못한 채 신바람이 난다. 광주로 가는 길, 군인들이 바리케이드를 치고 진입을 막자 만섭은 택시요금을 받아낼 욕심에 온갖 기지를 발휘한다. 우여곡절 끝 광주에 도착한 만섭과 피터는 “대학 가요제에 나가기 위해 대학생이 됐다”는 순진한 재식(류준열)과 광주의 현실에 분노하는 정 많은 택시운전사 태술(유해진) 등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 언론보도와 너무도 다른 광주의 참혹한 현실과 맞닥뜨린 만섭은 혼란과 공포의 도가니에 빠지게 된다.

영화 <택시운전사>의 한 장면. 쇼박스 제공
영화 <택시운전사>의 한 장면. 쇼박스 제공
<의형제>와 <고지전>에서 한국 근현대사의 아픔을 낡은 신파적 장치에 기대지 않고 담담하게 그려냈던 장훈 감독은 <택시운전사>에서도 그 장기를 십분 발휘한다. 지금까지 우리가 언론을 통해 흔히 봐온 광주의 참상이 피터의 카메라 렌즈를 통한 것이라면, 영화를 통해 관객이 바라보는 광주의 참상은 평범한 택시운전사 만섭의 눈을 통해서다. ‘남의 일’로 치부했던 광주의 불행을 온전히 ‘나의 일’로 받아들이며 변화해가는 만섭의 시선을, 관객도 온전히 따라가게 하려는 영리한 방법이다. 관객은 영화 속 만섭이 그러하듯, 타자화했던 광주의 비극을 결국 자기화하는 경험을 하게 된다. 영화는 또한 광주를 지키려고 일어선 사람들이 특별히 정의롭지도, 특별히 용감하지도 않은 태술과 재식, 그리고 만섭과 같은 소시민이라고 말한다. 거창한 이념이나 사상으로 무장하지 않아도 평범한 상식과 도리를 가진 사람이라면 함께 할 수밖에 없었노라고 말한다.

<택시운전사>는 첫머리에서 밝히는 바와 같이, 유일하게 1980년 광주의 참상을 카메라에 담아 전 세계에 알린 독일 언론인 위르겐 힌츠페터의 실화를 재구성한 영화다. 줄거리와 결말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는 ‘결정적 한계’를 극복하려고 영화는 다양한 양념을 첨가한다. 서울서 광주로 가는 만섭과 피터의 여정에서 언어의 장벽으로 인해 발생하는 소소한 웃음, 보도를 막기 위한 군인들과 만섭 일행의 쫓고 쫓기는 추격전, 흡사 전쟁을 방불케 하는 광주의 시가전 장면, 다소 구태의연하지만 언제나 통하는 부성애 코드 등이 바로 그것이다. 하지만 이런 ‘엠에스지’(MSG)는 역사의 무게감과 상업영화의 오락성 사이를 절묘하게 줄타기하는 감독의 연출력 덕분에 그다지 과하게 느껴지진 않는다.

영화 <택시운전사>의 한 장면. 쇼박스 제공
영화 <택시운전사>의 한 장면. 쇼박스 제공
<설국열차>, <관상>, <변호인>, <사도>, <밀정>까지 흥행불패의 신화를 이어 온 송강호는 이번에도 이름값을 한다. 점층적으로 쌓아 올라가면서도 극히 절제된 감정연기는 “역시 믿고 보는 배우 송강호”라는 찬사를 자아낸다. 이제 신예라는 말이 어색할 정도로 존재감이 커진 류준열, 원조 명품 조연 유해진 등의 연기도 모난 데 없이 잘 어우러진다. 전국 9개 지역을 모자이크하는 방식으로 재현했다는 80년대 광주의 풍경, 브리사와 포니 같은 그 시절 택시 등도 영화의 흡입력을 높이는 데 일조한다.

아, 마지막으로 중요한 팁 한 가지. ‘울트라슈퍼’급 방광 용량을 자랑하는 관객이 아니라면, 137분의 러닝타임을 고려해 영화 시작 전 반드시 화장실에 들를 것을 권한다.

유선희 기자 duc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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