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내가 죽기 전에 가장 듣고 싶은 말>의 한 장면. ㈜메인타이틀 픽쳐스 제공
‘만일 내가 죽는다면, 묘비에 어떤 말이 적힐까?’ 누구나 한 번쯤은 상상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죽음을 눈앞에 둔 사람이 아닐지라도, 삶이 다하고 나서 내가 주변인에게 어떤 사람으로 기억될까를 생각하면 때로 부끄러움이 엄습해올지 모른다. “잘 보낸 하루가 편안한 잠을 주듯, 값지게 쓰인 인생이 평안한 죽음을 준다”(레오나르도 다빈치)고 했건만…. 영화 <내가 죽기 전에 가장 듣고 싶은 말>(19일 개봉)은 죽기 전에 부고 기사를 미리 써두려던 한 노년 여성이 새로운 삶의 방향을 찾아 나가게 되는 여정을 따뜻하고 담담하게 그려낸 작품이다.
전직 광고회사 대표인 해리엇(셜리 매클레인)은 까칠하고 완벽주의적인 성향 탓에 가족도 친구도 모두 떠나보낸 채 홀로 사는 외로운 노인이다. 우연히 지역신문에서 남들의 부고 기사를 보게 된 해리엇은 자신의 마음에 드는 부고를 미리 써두기 위해 사망기사 전문기자인 앤(아만다 사이프리드)을 고용하게 된다. 하지만 앤이 만난 해리엇의 주변인들은 “그 여자 생각 안 하려고 심리치료를 받는다”, “그 여자가 죽었으면 좋겠다” 등 심한 말을 할 뿐이다. 결국 해리엇은 마음에 드는 부고 기사를 위해 자신의 삶을 바꿔나가기로 결심한다. 해리엇이 정한 완벽한 부고 기사의 요건은 ‘동료들의 칭찬을 받아야 하고, 가족의 사랑을 받아야 하며, 누군가에게 우연히 좋은 영향을 끼쳐야 하고, 자신만의 와일드카드가 있어야 한다’는 4가지. 해리엇은 이 4가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앤의 협조를 요구한다. 평생 금기에 도전하며 살아온 해리엇과 모험을 두려워하는 앤은 사사건건 부딪치게 되고, 여기에 애정결핍 막말 작렬 소녀 브렌다(앤쥴 리 딕슨)가 가세하면서 셋은 4가지 요소를 충족시키기 위한 여정을 시작한다.
영화 <내가 죽기 전에 가장 듣고 싶은 말>의 한 장면. ㈜메인타이틀 픽쳐스 제공
영화의 가장 큰 재미는 서로 다른 세대인 세 여성이 서로에게 마음을 열고 영향을 주고받는 과정에서 오는 따뜻한 감동이다. 그저 까탈스러운 꼰대처럼 보였던 해리엇은 시간이 지날수록 앤과 브렌다가 마음 깊이 의지할 수 있는 멘토가 되고, 잔소리에 불과했던 해리엇의 독설은 값진 인생의 조언이 된다.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미란다가 앤디에게 그랬고, <인턴>의 벤이 줄스에게 그랬듯.
주옥같은 대사도 넘쳐난다. “좋은 날이 아니라 기억에 남을 날을 보내세요”, “네가 실수를 만드는 게 아니다. 실수가 널 만들지”, “위험을 무릅쓰고 멍청한 일을 하겠니? 아니면 대단한 일을 하겠니?” 등의 대사는 저절로 수첩을 꺼내 메모하고픈 욕구를 자극한다. 아카데미 여우주연상과 골든글로브 여우주연상 7회 수상에 빛나는 셜리 매클레인의 노련한 연기가 특히 빛난다.
영화는 다소 뻔한 구도로 전개되지만, 마음속 잔잔한 파문을 일으키기엔 충분하다. 여름 대작의 홍수 속에서 힐링 영화를 찾는 관객에게 추천한다. 영화 속 앤이 그러했듯 “인생 뭐 있어. 일단 저지르고 도전해 보는 거야”라며, 자신만의 안달루시아를 향해 떠날 작은 용기를 얻게 될 지 모른다.
유선희 기자
duc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