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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볼거리 넘치는 ‘군함도’…아쉬운 ‘한 끗’

등록 2017-07-20 10:31수정 2017-07-20 21:22

[리뷰] 류승완 감독 ‘군함도’

220억 대작에 황정민·송중기·소지섭 멀티캐스팅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못지않은 탈출 신의 장대함
‘국뽕 논란’ 피하려는 듯 이분법 구도 탈피 시도
서사·캐릭터 흥행공식 답습…안전하지만 한계도
영화 <군함도>의 한 장면. 씨제이이앤엠 제공
영화 <군함도>의 한 장면. 씨제이이앤엠 제공
순제작비 220억원, 황정민·송중기·소지섭·이정현 등 초호화 멀티캐스팅, <부당거래>, <베를린>, <베테랑>의 류승완 감독, 광복절을 앞둔 개봉 시점의 절묘함까지…. 영화 <군함도>(26일 개봉)는 그 베일을 벗기 전부터 숱한 화제를 낳았다. 굳이 만듦새를 보지 않아도 겉으로 드러난 화려한 스펙만으로 ‘1000만은 이미 예약된 것 아니냐’는 때 이른 관측까지 나왔다. 과연 류승완 감독은 이 모든 흥행 요소를 적절히 조합해 또다시 1000만 고지를 점령할 수 있을까?

군함도는 일본 나가사키항에서 남서쪽으로 약 18㎞ 떨어진 곳에 있는 하시마섬의 다른 이름이다. 생긴 모양이 군함을 닮아 군함도라고도 불렸다. 많은 조선인이 이곳에 징용돼 하루 12시간 이상 석탄 채굴 작업에 동원됐고, 탄광 사고와 영양실조 등으로 죽임을 당했다.

영화 <군함도>의 한 장면. 씨제이이앤엠 제공
영화 <군함도>의 한 장면. 씨제이이앤엠 제공
영화의 배경은 일제강점기 막바지인 1945년. 경성 반도호텔 악단장 강옥(황정민)과 그의 외동딸 소희(김수안), 종로 일대를 주름잡던 건달패 두목 칠성(소지섭), 전장을 돌며 위안부로 온갖 고초를 겪은 말년(이정현) 등은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군함도에 징용된다. 광복군 특수부대 요원 무영(송중기)은 징용된 거물 독립운동가로 조선인의 정신적 지주가 된 윤학철(이경영)을 구출하기 위해 군함도에 잠입한다. 이들이 군함도 내에서 각자도생한다. 강옥은 유창한 일본어를 바탕으로 특유의 수완을 발휘하고, 칠성은 ‘주먹’으로 조선인 우두머리 자리를 차지한다. 말년은 산전수전 다 겪은 여자의 강단으로 고된 위안소 생활을 견딘다. 미군의 공습이 계속되고 전쟁의 패색이 짙어지자 일제는 ‘징용의 흔적’을 없애기 위해 조선인을 몰살하려 한다. 이를 알게 된 조선인들은 목숨을 건 탈출을 계획한다.

영화 <군함도> 한 장면. 씨제이이앤엠 제공
영화 <군함도> 한 장면. 씨제이이앤엠 제공
영화는 초반부터 생지옥과 다름없는 군함도에서 고초를 겪는 조선인들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어른은 들어갈 수 없는 좁은 갱도에서 혹사당하는 어린이들, 걸핏하면 새어 나오는 가스 탓에 숨조차 쉴 수 없는 열악한 작업 환경, 갱도 붕괴와 가스 폭발로 매몰돼 죽거나 다치는 조선인의 모습 등은 너무도 현실적이어서 아프다. 군함도 실제 크기의 3분의 2에 이르는 대규모 세트를 제작해 실감 나게 구현한 장면들 덕분에 관객의 몰입감은 극대화된다. 탈출 작전은 영화의 클라이맥스다. 이 과정에서 벌어지는 일본군과의 총격전, 폭파 신 등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못지않게 스펙터클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군함도>는 일제강점기를 다룬 영화에서 반복되는 ‘국뽕 논란’을 피해 가려는 고심이 엿보이는 대목이 많다. 감독은 일본인과 조선인 사이의 이분법적 선악 구도를 탈피하려 한다. “나를 속인 놈은 조선인 이장이고, 더 나쁜 곳으로 팔아넘긴 놈은 조선인 포주”라는 말년의 비난이 이를 대표한다. 군함도에서 조선인을 악랄하게 착취하는 것은 일본인뿐 아니라 조선인 중간관리자이기도 하다. 조선인끼리 의심하고 뒤통수를 치기도 한다. 강옥은 “누가 조센징 아니랄까봐 지들끼리 싸우고 지랄한다”고 일갈한다. 류승완 감독은 기자간담회에서 “일제강점기를 다룰 때 너무 쉬운 이분법 방식으로 진영을 나눠 접근해 관객을 자극하는 것은 오히려 왜곡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전쟁은 국적을 가리지 않고 인간을 비이성·비상식·비인간적 상황으로 몰고 가기 마련이기에 감독의 문제의식은 타당해 보인다. 다만, 이런 대사에서 일본의 ‘조선인 비하’나 ‘위안부 책임 떠넘기기’가 떠올라 뒷맛이 개운치 않다면 과장된 반응일까.

영화 <군함도> 한 장면. 씨제이이앤엠 제공
영화 <군함도> 한 장면. 씨제이이앤엠 제공
서사와 캐릭터는 한국 영화의 전형적인 흥행공식을 충실히 따른다. 안전한 선택일지 모르지만, 한계이기도 하다. 일개 깡패에 불과했던 칠성이 탈출 과정에서 갑자기 민족을 위해 희생하는 캐릭터로 돌변한다거나, 칠성과 말년 사이에 미묘한 애정이 싹트는 전개는 다소 뻔하다. 영화의 마지막을 눈물겨운 부성애로 장식하는 것 역시 한국 영화의 고전적 법칙이다. 무엇보다 ‘정점’에 다다르기까지 점층적으로 쌓여가야 할 긴장감과 감정의 몰입이 중간중간 끊기는 것이 아쉽다. <베테랑>의 쫄깃한 대사와 스피디한 전개, <부당거래>의 묵직하지만 날카로운 현실인식, <베를린> 속 캐릭터의 입체적 변화 등 영화마다 하나씩은 두드러졌던 류승완 감독의 장기가 이번에는 잘 살아나지 않는 느낌이다.

배우들 모두가 호연하지만, 가장 빛나는 인물은 소희 역의 김수안이다. 극 중 아버지와 찰떡궁합을 자랑하며 펼치는 입담부터 노래면 노래, 춤이면 춤,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쏟아부으며 아역 같지 않은 존재감을 뽐낸다.

‘탈출 작전’을 얼개로 했다는 점에서 <군함도>는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의 신작 <덩케르크>와 여러모로 비교될 법하다. <덩케르크>가 시종일관 담담하고 차가운 시선으로 전쟁을 응시했다면, <군함도>는 한국인이 좋아하는 ‘감동의 드라마’를 택했다. 그 드라마의 온도가 과연 관객의 카타르시스를 폭발시킬 만큼 충분히 뜨거운 걸까. 판단은 관객의 몫이다.

유선희 기자 duck@hani.co.kr

[일본인이 본 영화 ‘군함도’는?]

19일 <군함도> 기자시사회는 외신기자들만을 위한 상영관을 별도로 마련할 정도로 외국, 특히 일본 언론의 관심이 높았다. 영화를 본 일본인들의 반응을 추려 소개한다.

유바리 국제 판타스틱 영화제 시오타 토키토시 프로그래머: 한국인도, 일본인도 잘 모르는 군함도의 역사에 대해 알리고 함께 이야기해 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한 것만으로도 이 영화가 가지는 의미는 충분하다. 상업영화로서도 잘 만들어진 편이다. 다만 류승완 감독의 오랜 팬이지만, 이 영화가 류 감독의 베스트 작품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일본 영화사이트 ‘영화의 숲’ 하가 메구미 기자: 역사적 사실에 감독 나름의 픽션을 가미해 개연성 있는 드라마를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일본인 입장에서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허구인지 궁금증이 들기는 하지만, 굳이 정치적 잣대가 필요할까? 영화로서 구성이나 배우들의 연기 등 충분히 즐길 만 하다. 김수안의 연기가 특히 눈에 띄게 좋다.

이즈미 지하루 서경대 국제비즈니스어학부 교수: 이 영화에서 ‘탈출’의 의미가 ‘과거로부터의 탈출’을 의미한다고 한 감독의 대답이 인상적이다. 한국과 발전적 관계를 맺어나가야 할 일본인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일본어를 가르치는 교수로서 영화 속 배우들의 일본어 대사가 알아듣기 힘든 점은 조금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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