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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폭주하는 욕망으로 기존 질서를 산산조각내다

등록 2017-08-01 11:01수정 2017-08-01 20:21

[리뷰/영화 ‘레이디 맥베스’]
셰익스피어 비극 ‘맥베스’ 부인에 천착한 원작 바탕
가부장적 질서에 질식당한 한 여인의 뒤틀린 욕망
계급질서·억압적 규범에 대한 공공연한 대결·투쟁도
신예 플로렌스 퓨 놀라운 연기력으로 스크린 압도
영화 <레이디 맥베스>의 한 장면. 씨네룩스 제공
영화 <레이디 맥베스>의 한 장면. 씨네룩스 제공
“당신은 왜 일생의 귀중한 장식품이 될 것을 가져보겠다고 소망하면서도 스스로를 겁쟁이라 단정짓고 ‘다리는 적시지도 않고 물고기는 먹고 싶다’는 고양이의 심보처럼 ‘소망한다’고 말하면서도 결국은 ‘나는 안 돼’하고 녹녹해진단 말입니까?” (셰익스피어의 <맥베스> 1막7장 맥베스 부인의 대사)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중 하나인 <맥베스>의 주인공 ‘맥베스’는 권력을 향한 불타는 욕망과 그 눈먼 욕망에 대한 죄의식 사이에서 끊임없이 갈등하는 인물이다. 욕망하지만 행동하지 못하는 그의 등을 떠밀며 ‘욕망껏 폭주하라’고 부추기는 인물은 바로 그의 부인이다. 맥베스와 죄를 공유하지만, 죄의식에서는 한 발 빗겨나있는 이 독특한 인물은 그러나 셰익스피어의 희곡에서는 큰 주목을 받지 못한다. 19세기 러시아 작가 니콜라이 레스코프는 맥베스의 공범이자, 욕망에 숨김이 없는 이 낯설고 섬뜩한 여성에 천착한 것이 확실한 <러시아의 맥베스 부인>(원제 므첸스크 군의 맥베스 부인)를 창작해낸다. 욕망을 위해 살인도 서슴지 않은 한 여성의 이야기를 그린 희대의 명작은 그 후 오페라·연극·무용 등으로 계속해서 변주된다. 3일 개봉하는 윌리엄 올드로이드 감독의 영화 <레이디 맥베스>는 바로 이 고전을 영화화한 작품이다.

영화 <레이디 맥베스>의 한 장면. 씨네룩스 제공
영화 <레이디 맥베스>의 한 장면. 씨네룩스 제공
영화의 줄거리는 원작과 엇비슷하게 진행된다. 가난한 농부의 딸인 17살 소녀 캐서린(플로렌스 퓨)은 팔리다시피 해서 나이 많은 남자 알렉산더(폴 힐턴)와 결혼한다. 그의 시아버지인 보리스(크리스토퍼 페어뱅크)는 공공연히 “돈을 주고 너를 샀으니, 시키는 대로 하라”고 말한다. 사랑도 애정도 없는 결혼생활 속에 아내와 며느리, 그리고 여자로서의 도리만을 강요당하며 점차 지쳐가는 캐서린. 어느 날 남편과 시아버지가 사업차 오랫동안 집을 떠나게 되고, 캐서린은 자유롭게 외출도 하며 자유를 누린다. 그러다 하인 세바스찬(코스모 자비스)와 눈이 맞게 되고, 쾌락과 욕망에 눈뜨게 된다. 시아버지와 남편이 차례로 돌아오고 세바스찬과 헤어져야 할 위기에 몰리자 캐서린은 자신을 방해하는 기존의 질서를 하나씩 하나씩 파괴해 나간다.

<레이디 맥베스>는 기본적으로 가부장적 질서에 질식했던 한 여인의 뒤틀린 욕망이 빚어내는 한 편의 끔찍한 드라마다. 하지만 그 안에는 단순히 가부장제뿐 아니라 인종차별이 존재했던 시절의 계급 질서, 부르주아 사회의 억압적 질서와 규범, 그 모든 것에 대한 공공연한 대결과 투쟁의식이 넘쳐난다. 배경이 러시아인 원작과 달리 장소를 영국으로 옮겨온 점, 원작에 존재하지 않는 순종적인 흑인 하녀 애나(나오미 아키에)를 등장시킨 점 등은 관객이 이러한 다층적인 모순을 직접 맞닥뜨리게 하려는 감독의 의도다. 물론 원작과 가장 크게 달라진 점은 파국이 다다르는 결말이다. 감독은 원작의 비극적 결말과는 또 다른 결론을 택함으로써 관객에게 한 층 더 충격적인 카타르시스를 안긴다. 원작 텍스트에 대한 이러한 자유자재의 해체와 변형에는 연극연출가 출신인 감독의 이력이 큰 영향을 미친 듯 보인다.

영화 <레이디 맥베스>의 한 장면. 씨네룩스 제공
영화 <레이디 맥베스>의 한 장면. 씨네룩스 제공
캐서린을 역을 맡은 신예 플로렌스 퓨의 연기력은 놀랍다는 말 그 이상이다. 푸른색 드레스를 입고 가지런히 손을 모은 채 앉아 무표정한 얼굴로 정면을 응시하는 장면은 엔딩크레디트가 다 올라가도 잊히지 않을 만큼 인상적이다. 욕망을 상징하는 푸른색 드레스, 하지만 그 안에 꽉 조이는 코르셋 같은 억압적 질서가 감춰져있듯, 정적이고 무표정한 플로렌스 퓨의 얼굴은 그 속에 똬리를 틀고 앉은 욕망의 깊이를 내내 가늠해보게 만든다. 청소년 관람 불가.

유선희 기자 duc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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