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개봉한 영화 <청년경찰>은 의욕만 충만한 기준(박서준)과 이론만 백단인 희열(강하늘), 두 경찰대생의 좌충우돌 ‘납치사건 수사기’다. <청년경찰>의 시나리오를 쓰고 메가폰까지 잡은 김주환 감독은 애초부터 이 영화를 시리즈로 만들겠다는 ‘큰 그림’을 그렸다. 김 감독은 “제목에 따로 시리즈를 암시하는 부제를 붙이지는 않았지만, 속편이 가능한 여러 장치를 심어뒀다”며 “경찰대 졸업반이 된 두 주인공이 경찰서 실습을 나간다든가, 진짜 경찰이 돼 실무에 투입된다든가 하는 식의 줄거리로 다음 편을 만들고 싶은 욕심이 있다”고 말했다. 개봉 첫날 30만명 넘게 관람한 <청년경찰>이 손익분기점 이상 흥행에 성공한다면 2~3년 이내에 속편을 만날 가능성이 크다.
최근 한국영화의 속편 제작 소식이 잇달아 전해지고 있다. 할리우드와 달리 1990년대 이후 ‘시리즈 영화’의 명맥을 이을 만한 작품이 거의 존재하지 않았던 한국영화 시장에 속편 제작 붐이 일고 있다.
우선 <탐정: 더 비기닝>의 속편 <탐정2>가 2018년 개봉을 목표로 지난 6월 촬영을 시작했다. <탐정: 더 비기닝>은 셜록 홈즈 흉내를 내는 찌질한 만화방 주인 강대만(권상우)과, 물을 먹고 좌천당한 베테랑 형사 노태수(성동일)의 합동 수사작전을 담은 영화로, 2015년 추석 개봉해 260만명을 모으며 선전했다. 두 사람이 사립탐정 사무소를 개업한 1편의 쿠키 영상처럼 <탐정2>는 이들이 의뢰받은 사건을 해결해 나가는 과정을 담는다. 권상우·성동일 외에 이광수·김동욱·손담비 등 새 배우들이 합류했고, <미씽: 사라진 여자>의 이언희 감독이 연출을 맡았다.
<조선명탐정3>도 이달 크랭크인을 할 예정이다. <조선명탐정>은 1편 <각시투구꽃의 비밀>(2011)이 478여만명, 2편 <사라진 놉의 딸>(2015)이 387만여명을 동원하는 등 흥행에 성공했다. 3편도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김민(김명민)과 서필(오달수) 콤비가 미궁에 빠진 사건을 풀어나가는 과정을 얼개로 했던 1·2편과 비슷한 구조가 될 것으로 보인다. 1편 한지민, 2편 이연희에 이어 3편에서는 김지원이 여주인공으로 나선다.
준비단계에 돌입한 속편 영화도 많다. 정우성 주연의 바둑 소재 영화 <신의 한 수: 사활 편>(2014·356만명)의 속편 <귀수>도 시나리오 작업을 마치고 캐스팅에 돌입했다. <귀수>는 <신의 한 수> 이전 상황을 그리는 프리퀄로 알려졌다. 류승완 감독의 <베를린>(2013년·716만명)도 속편 제작에 시동을 걸었다. 제작사인 외유내강 강혜정 대표는 지난달 6일 “영화 <박열>을 쓴 황성구 작가가 시나리오 작업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표종성(하정우)이 아내의 복수를 위해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를 거쳐 북한으로 가는 장면으로 1편이 마무리된 만큼 연결되는 스토리가 펼쳐질 것으로 예상된다. <전우치>(2009년·613만명)는 공모전을 통해 속편 제작을 준비 중이다. 투자배급사 씨제이이앤엠과 제작사 영화사 집은 지난달 31일 ‘전우치 공모대전’을 마감했다 대상 한편에만 5천만원의 상금을 내건 트리트먼트(시나리오를 쓰기 전 작성하는 줄거리 단계) 공모전이다. 이 밖에 <해적: 바다로 간 산적>(2014·866만명), <베테랑>(2015·1341만명)도 속편 제작이 논의 중이다.
할리우드에서는 마블·디시(DC)코믹스로 대표되는 히어로물 뿐 아니라 <007>, <미션임파서블>과 같은 캐릭터 시리즈 영화가 계속 만들어지고 있지만, 사실 한국의 시리즈 영화는 <여고괴담>, <가문의 영광>, <조폭 마누라>, <공공의 적> 등 손에 꼽힐 정도로 적다. 속편이 만들어진다 해도 <동갑내기 과외하기>, <엽기적인 그녀>, <국가대표> 등과 같이 1편과 소재와 배경만 유사할 뿐, 주인공과 캐릭터가 바뀐 ‘무늬만 속편’인 경우도 많았다.
정지욱 영화평론가는 “시리즈가 만들어지려면 최소 손익분기점을 넘는 1편 흥행 성적, 매력적이며 지속가능한 캐릭터, 1편과 동일한 배우 캐스팅이 반드시 필요하다. 이 3박자를 맞추기 어렵기 때문에 한국형 시리즈 영화가 만들어지지 못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근래 한국영화 시나리오가 탄탄해면서 캐릭터 위주의 영화가 성공을 거두고, 자신감이 붙어 속편 제작 시도도 늘고 있는 것”이라며 “다만, 할리우드처럼 방대한 세계관을 공유하는 콘텐츠가 없다 보니 주로 비슷한 얼개에 조금씩 변형을 가미하는 수사·형사물 장르 위주로 속편이 시도된다”고 덧붙였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1편과 2편을 동시에 촬영하는 사례도 등장한다. 주호민 작가의 동명 인기 웹툰을 원작으로 한 <신과 함께>는 한국영화로는 처음으로 1편과 2편을 동시 촬영했다. 제작비 400억원에 하정우·차태현·주지훈·이정재 주연, <국가대표>(2009) 김용화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신과 함께>는 후반 작업을 거쳐 1편은 올해 12월, 2편은 내년 여름 개봉할 계획이다. 롯데엔터테인먼트 관계자는 “1편 흥행이라는 보증수표 없이 2편까지 함께 제작하기 때문에 위험부담이 크다고도 할 수 있지만, 주호민의 웹툰이 뮤지컬로도 만들어지는 등 이미 원작의 탄탄함이 검증됐다”며 “또 배우 캐스팅, 캐릭터의 연속성, 제작비 절감 등을 두루 고려할 때 유리한 점도 많다”고 말했다.
유선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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