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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여성감독의 우아하고 품격있는, 그러나 무서운 욕망극

등록 2017-08-31 13:47수정 2017-08-31 21:03

<리뷰/칸 영화제 감독상 수상작 ‘매혹당한 사람들’>

남북전쟁 탓 답답하고 지루한 삶 이어가던 여성들
적군 탈영병 들어오며 내재된 욕망과 질투 깨어나
여성 시각으로 전개…심리스릴러+블랙코미디 요소
19세기 재현한 미장센과 배우들의 호연 뒷바침
영화 <매혹당한 사람들>. 유니버설픽쳐스인터내셔널코리아 제공
영화 <매혹당한 사람들>. 유니버설픽쳐스인터내셔널코리아 제공
‘여성 감독 소피아 코폴라의 손에서 탄생한 우아하고 품격있는, 그러나 무시무시한 욕망극.’

다음 달 7일 개봉하는 영화 <매혹당한 사람들>은 한마디로 이렇게 표현할 수 있다. 전쟁이라는 특수한 상황, 기숙학교라는 폐쇄된 공간 안에서 한 명의 남성을 둘러싸고 7명의 여성이 그려내는 욕망과 질투의 이중주는 신선하고 매혹적이다.

남북전쟁이 한창이던 1864년 미국 남부의 한 외딴 마을. 버섯을 따러 나간 소녀 에이미는 다리를 다쳐 피 흘리고 있는 북부군 탈영병 존 맥버니(콜린 파렐)를 발견한다. 에이미(우나 로렌스)는 그를 부축해 자신이 머무는 여자 신학교에 데려간다. 이 여자 신학교에는 전쟁 통에 집으로 돌아가지 못한 여학생들과 교사인 에드위나 모로우(커스틴 던스트), 원장인 마사(니콜 키드먼) 등 7명의 여성이 함께 지내고 있다. 전쟁으로 인해 고립된 채 지루하고 답답한 생활을 이어가던 여성만의 공간에 남성이 들어오면서 변화가 시작된다. 예의 바르고 교양있는 젊은 남성의 등장에 오랫동안 정숙을 강요당했던 여성들의 내적 욕망이 차츰 깨어난다. 생존을 위해 이들의 질투심을 교묘히 이용하는 존. 본능적으로 피어나는 여성들의 욕망은 서로 부딪히며 파열음을 내고 평화롭고 질서 있던 그간의 삶에 균열을 만든다.

영화 <매혹당한 사람들>. 유니버설픽쳐스인터내셔널코리아 제공
영화 <매혹당한 사람들>. 유니버설픽쳐스인터내셔널코리아 제공
심리 스릴러를 표방하고 있지만, 관객에게는 블랙코미디처럼 느껴질 부분이 많다. 적군 남성이라는 정체성을 망각하게 할 만큼 젠틀한 존의 매너에 여성들의 감정이 두려움에서 동정심, 호기심을 거쳐 성적 욕망으로 변해가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여성들은 존이 머무는 방을 돌아가며 기웃거리고, 온갖 핑계를 대며 그와 대화하려 한다. 심지어 존과 함께 하는 저녁 식사 자리를 위해 최연장자인 원장부터 10대 막내까지 코르셋을 졸라매고 가장 예쁜 드레스를 꺼내 입으며 치장한다. 속내가 빤히 들여다보이는 유치한 행동과 대사에 손발이 오글거리고 웃음이 터진다.

영화의 가장 큰 미덕은 여성들의 미묘한 심리를 표현하는 과정에서 노골적인 성적 묘사를 배제하면서도 관능적인 긴장감을 충분히 유지한다는 점이다. ‘크리스천의 관용’으로 억지 포장된, 여성 각각의 욕망이 교차하는 틈새를 주시하는 감독의 시선이 날카롭다. 언제 폭발할지 알 수 없는 아슬아슬한 감정의 고조를 밀도 있게 그려내는 솜씨도 감탄을 자아낸다. 19세기를 재현한 고딕풍의 공간·의상·소품 등 흠잡을 데 없이 완벽한 미장센, 니콜 키드먼, 커스틴 던스트, 엘르 페닝 등 배우들의 호연도 감독의 연출력을 튼튼하게 받쳐준다.

영화 <매혹당한 사람들>. 유니버설픽쳐스인터내셔널코리아 제공
영화 <매혹당한 사람들>. 유니버설픽쳐스인터내셔널코리아 제공
영화는 1966년 발표된 토마스 J. 칼리넌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앞서 1971년 돈 시겔 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주연한 영화가 먼저 만들어졌다. ‘71년 버전’이 남성 중심의 시각으로 전개된 것에 견줘 이번 영화는 철저히 여성의 관점에서 그려진다. 여성 감독이 풀어놓는 여성들의 욕망 이야기는 훨씬 더 은밀하고 우아하며 품위가 넘친다. 리메이크작임에도 올해 칸 국제영화제가 소피아 코폴라 감독에게 감독상을 안긴 이유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영화는 후반부로 갈수록 스릴러의 요소가 두드러진다. 욕망의 충돌이 빚어낸 비극적 사건은 존과 여성들 간의 관계에 파국을 야기하고, 이런 파국이 잔인한 결말로 치닫는 과정에서는 인간 내부의 폭력성이 거침없이 드러난다. “가장 큰 욕망에서 가장 큰 증오가 일어난다”(소크라테스)고 했던가. 한바탕 소동이 끝난 뒤, 언제 그랬냐는 듯 원래의 질서정연한 세계로 돌아가 평화롭게 모여앉은 여성들을 비추는 마지막 장면이 소름 끼칠만큼 섬뜩하다.

유선희 기자 duc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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