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0년 뉴욕 상류 사회의 스캔들 메이커 얼린 부인(헬렌 헌트)은 ‘남편들이 좋아하고, 아내들이 싫어하는’ 여자다. 얼린 부인은 아내들의 질투 때문에 그들의 남편들로부터 받은 계좌가 차례차례 만료되자, 바닥난 평판을 뒤로 하고 그만큼 바닥난 재산을 가까스로 챙겨 이탈리아로 향한다. 하지만 그가 나타나자, 이탈리아 상류 사회도 이내 들썩거리기 시작한다.
스스로를 ‘가진 건 어음 밖에 없는 늙은이’라고 생각하는 더피(톰 윌킨슨)는 똑똑하고 아름다운 얼린 부인과 세번째 결혼을 꿈꾼다. 또 결혼한 지 1년 밖에 안 된 젊은 사업가 로버트 윈드미어(마크 엄버스)는 투자상담을 핑계로 얼린 부인과 ‘비밀스런’ 관계를 지속하며 스캔들을 일으킨다. 이 관계를 오해한 윈드미어의 아내 메그(스칼렛 요한슨)는 크게 흔들리고, 마침 메그에게 반한 로버트의 바람둥이 친구 달링턴 경(스티븐 켐벨모어)은 오해를 부추기며 메그를 노골적으로 유혹한다.
<굿 우먼>(마이크 바커 감독)은 오스카 와일드의 원작 희곡 <윈드미어 부인의 부채>를 각색한 시대극이다. 1930년대 이탈리아 상류 사회의 두 여자와 세 남자 사이의 쌍 삼각관계를 다룬 치정극 정도로 폄하하기 쉽지만, 사랑과 결혼은 물론 여성들 간의 질투와 불신, 연대에 관해 시대를 뛰어넘는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영화다. 극중 대사처럼 “여자는 여자를 못믿고, 남자는 여자를 못믿고, 아무도 여자를 못믿는” 시대, 그래서 아름답고 똑똑한 여자들이 ‘뱃(나쁜) 우먼’으로 매장당하기 일쑤인 사회에서 현명하게 사랑하고 결혼을 유지하며, 남자는 물론 같은 여자에게도 ‘굿 우먼’으로 남는 방법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몸으로, 행동으로, 더없이 농익고 세련된 방식으로 그 답을 가르쳐 주는 사람은 역설적이게도 상류층 여성들에게 공공의 ‘뱃 우먼’인 얼린 부인이다. 얼린 부인은 영화의 놀라운 반전이 되기도 하는 ‘말할 수 없는 비밀’을 간직한 채 이탈리아로 왔다. 그리고 그 비밀 때문에 메그의 오해를 사고, 메그의 결혼 생활에 위기를 불러온다. 하지만 “후회없이 살려면 연습과 기술이 필요하다”는 것을, “완전하지 않은 어떤 것 때문에 사랑을 버리면 1년 뒤, 20년 뒤엔 죄책감으로 살게 된다”는 것을 ‘믿음과 희생’을 통해 메그에게 가르친다. 그리고 자신을 온전히 사랑해주는 더피와의 결혼을 포기하면서까지 어린 메그의 사소하지만 치명적인 실수를 뒤집어 쓴다. “유일한 내 선행을 망치지 말라”고 메그의 입을 단속하면서 말이다.
<굿 우먼>은 시·공간적 배경을 바꾸는 등 <원작>을 크게 각색했지만, 원작의 탄탄한 구성과 날카롭고 현란한 대사들은 성공적으로 살려냈다. 특히 얼린 부인의 비밀이 밝혀지는 영화 중반 이후부터는 멜로 영화에서 보기 드물게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긴장감마저 느껴진다. 또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로 오스카상을 거머쥐었던 헬렌 헌트는 도발적이고도 지적인 얼린 부인 역을 ‘이 보다 더 좋을 수 없이’ 소화해내며 도도하게 스크린을 장악한다. 12월1일 개봉.
전정윤 기자 ggum@hani.co.kr, 사진 액티버스 엔터테인먼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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