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공동다큐 ‘안녕 사요나라’
최근 잇따라 개봉되는 ‘작은 영화’들로만 치자면, 제작비가 단연 높다. <용서받지 못한 자>의 순제작비는 2천만원, <다섯은 너무 많아>가 6천만원인데 견줘, 이 작품은 2억5천만원을 들였다. 게다가 영화적 치장이란 게 거의 없는 다큐멘터리다. 여전히 정리되지 않은 채 반목하는 역사 문제를 공론화하는 일의 험준함이랄까.
어쨌든 제작비, 언어 문제, 역사 인식의 차이 등을 넘고 넘어 25일 전국 동시 개봉에까지 이르렀다. 해마다 8월이면 동아시아를 달구는 야스쿠니신사의 본질을 정면으로 다룬 한일 합작 다큐멘터리, <안녕, 사요나라>다.
이 영화, 지성의 힘을 믿지만 ‘감정에의 호소’라는 논리적 오류에도 적당히 기댄다. 신구간 다툼을 ‘너는 어미아비도 없냐’로 호도하는 오류와 같은 것인데, 왜일까. 애초 야스쿠니신사가 반이성적 영역에 기반하고 있어서다.
메이지 시대에 생겨 천황 군대의 전사자만을 안장, “죽으면 야스쿠니에서 만나자”며 의식화되었던 군국 신사. 실체 없고 비이성적인 명예를 통해 ‘태평양 전쟁의 정신적 지주’로 자리매김하며 너도나도 초개처럼 목숨을 버리게 했던 군사 시설이기 때문이다.
다큐는 한국어와 일본어가 씨·날줄로 엮이며 평화의 가능성을 가늠한다. 일제에 강제 징집된 아버지가 야스쿠니신사에 묻힌 것에 대해 합사 취하 소송 중인 이희자(62)씨와 그를 돕는 일본인 공무원 후루카와 마사키(43)의 잔잔한 내레이션을 따라가면 태평양 전쟁이 남긴 흔적들이 이내 밟힌다. 새삼 발견하는 건, “전쟁을 겪은 일본인의 슬픔도 역시 깊다”는 사실이다. 그런데도 천황을 위해 언제라도 총동원될 수 있다는, 실은 그 정신을 추모하게 하는 곳이 야스쿠니라는 논리는 공유되기 왜이리 어려운 걸까.
아마도 “피해뿐만 아니라 자신의 가해성도 함께 이야기하지 않으면 전쟁의 실체는 알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그를 거부하는 일본 대다수에게, 그래서 다시금 감정에 호소하는 내레이션이 가닿는다. “학살 자체가 없다거나, 같은 문제로 아니 몇 번이나 더 사과해야 하냐고 묻는 이들, 반일 데모가 그 나라 (편향된) 교육 탓이라고 주장하는 이들은 이곳에 와봐야 한다.” 남경 대학살 현장을 보고 “고메네(미안합니다)”를 연방 터트리는 후루카와의 말이다. 학살의 주범도 물론 야스쿠니에 묻혀 있다.
가토 쿠미코(30) 감독과 공동연출한 김태일(42)씨는 “양국의 양심적인 사람들에게 힘이 되면서 평화 연대를 꾀하고 싶었다”고 제작 배경을 설명했다. ‘한일 공동 상영회’도 열게 된다.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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