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세 번째 살인>의 한 장면. 티캐스트 제공
“관객들이 영화를 보고 좋은 의미로 배신감을 느꼈으면 좋겠다.”
지난 10월 부산국제영화제를 찾은 일본의 거장 고레에다 히로카즈(55) 감독의 말이다. <세 번째 살인>(14일 개봉)을 보고 나면, 감독의 말이 단번에 이해가 될 것이다. 그리고 상당수 관객은 진짜 ‘즐거운 배신감’을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 첫 번째 배신 <걸어도 걸어도>(2008),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2011),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2013), <바닷마을 다이어리>(2015)까지 ‘가족 연작’으로 관객의 마음을 훈훈하게 데워줬던 고레에다 감독이 스릴러라니. 새로운 시도이긴 하지만 낯설다. 관객이 직면할 첫 번째 배신이다.
잘나가는 변호사 시게모리(후쿠야마 마사하루)는 30년 전 살인죄를 저지르고 복역한 미스미(야쿠쇼 고지)의 두 번째 강도살인에 대한 변호를 맡게 된다. 평소 “진실은 중요치 않다. 의뢰인에게 도움이 되는 쪽을 선택하면 된다”는 소신을 갖고 있던 시게모리. 하지만 검경 조사에서 이미 범행을 자백했던 미스미가 계속 말을 바꾸자 살인의 이유, 즉 ‘진실’이 무엇인지 확인하고 싶어진다. 피해자의 딸 사키에(히로세 스즈)와 미스미가 각별한 사이였다는 것을 알게 된 시게모리는 사키에의 용기 있는 증언을 통해 법정에서 사건의 전모를 드러내려 한다.
영화 <세 번째 살인>의 한 장면. 티캐스트 제공
■ 두 번째 배신 영화는 사건의 실체를 파헤쳐 진범이 누구인지 알아내는 데 집중하는 전형적인 법정 스릴러의 문법을 따르지 않는다. 미스미의 말 바꾸기, 새로운 증인의 등장 등으로 관객을 혼란에 몰아넣지만 이는 생각할 거리를 던지기 위함일 뿐이다. 두 번째 배신이다.
미스미는 과연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악인인가, 아니면 누군가를 심판(혹은 구원)하기 위해 희생한 의인인가. 옳지 못한 방법으로 돕는 것과 보고도 못 본 척하는 것 중 어느 것이 더 큰 죄인가. 감독은 여러 물음을 던지지만 끝내 답을 주지 않는다.
관객은 참다못해 되뇐다. “결국 진실이 뭐야?” 영화는 ‘장님이 각자 코끼리의 다른 부위를 만지며 내가 말하는 코끼리가 진짜라고 주장하는 것’처럼 어쩌면 이 세상에 진실이란 존재하지 않고, 우리가 진실이라고 믿거나 또는 믿고 싶어하는 것만이 존재하는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영화 <세 번째 살인>의 한 장면. 티캐스트 제공
■ 세 번째 배신 영화 속 미스미가 저지른 살인은 두 건뿐이다. 그럼 ‘세 번째 살인’이라는 제목은? 감독의 세 번째 배신이다.
영화는 우리가 진실을 제대로 알지 못하면서 섣불리 판단하는 일이 얼마나 위험한지 역설한다. 재판도 진실을 찾기보단 적당히 이해를 조정하는 과정일 뿐, ‘경제성’이란 미명 아래 정해진 시간 안에 편견이 가득한 상태로 진행될 수밖에 없다고 짚는다. 이렇게 불완전한 사법 시스템이 내린 사형 판결은 과연 정당한가? 결국 세 번째 살인은 사형제로 인한 사법살인을 의미할 수도 있고, 사형을 유도하는 미스미의 선택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판단은 관객의 몫이다.
영화 <세 번째 살인>의 한 장면. 티캐스트 제공
■ 역시, 고레에다 영화는 다소 길고 느린 호흡으로 진행된다. 빠른 템포의 긴장감 넘치는 스릴러를 원한 관객은 실망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구치소 접견실에서 후쿠야마와 야쿠쇼가 펼치는 치열한 ‘연기 공방’은 소름이 돋을 만큼 박진감이 넘친다. 감독 말대로 “<황야의 무법자>에서 건맨들이 펼치는 대결”을 떠올리게 한달까. 특히 접견실 유리벽에 비친 두 사람의 얼굴이 점차 겹치며 한 사람 얼굴처럼 보이도록 촬영한 마지막 대화 장면은 압권이다.
유선희 기자
duc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