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위대한 쇼맨>의 한 장면. 이십세기폭스코리아 제공
외화가 강세였던 분위기를 뒤엎고, 겨울 극장가는 대작 한국 영화 3편이 각축을 벌이는 형국이다. 하지만 <라라랜드>(350만여명), <미녀와 야수>(513만여명)에 환호했던 관객이라면 20일 개봉한 <위대한 쇼맨>을 고대했을지 모른다. 최근 잇단 뮤지컬 영화의 흥행을 고려할 때, 귀를 녹이는 음악과 화려한 퍼포먼스를 잘 조합한 <위대한 쇼맨>은 크리스마스와 연말 분위기를 달굴 ‘복병’이 될 수도 있겠다.
<위대한 쇼맨>은 19세기 ‘쇼 비즈니스의 개척자’로 불리는 미국의 피니어스 테일러 바넘의 이야기를 모티브로 한다. 가난한 재단사의 아들로 태어난 바넘(휴 잭맨)은 유년기부터 멸시와 천대를 경험한다. 우연히 만난 상류층 소녀 채리티(미셸 윌리엄스)와 편지를 주고받으며 사랑을 쌓은 바넘은 그녀와 결혼해 두 딸을 낳고 소박하지만 행복한 삶을 살아간다. 어느 날, 다니던 직장에서 해고된 바넘은 좌절하는 대신 ‘세상을 놀라게 할 아이디어’를 떠올린다. 그는 남들과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외톨이가 된 ‘특별한 사람들’을 찾아나서고, 이들을 모아 지상 최대의 쇼를 만든다. 상류층 자제로 태어났지만 새장 속 삶에 염증을 내는 필립 칼라일(잭 에프런)을 동업자로 영입하며 승승장구하던 바넘. 그러나 한순간 초심을 잃고 돈과 명성에 목을 매다 추락의 위기에 몰린다.
영화 <위대한 쇼맨>의 한 장면. 이십세기폭스코리아 제공
영화는 ‘고난-극복-성공-타락-재기’라는 전형적인 플롯을 따른다. 뻔한 이야기지만 뮤지컬 영화의 속성상 빠르고 리드미컬한 전개 때문에 그런 맹점을 느낄 겨를이 없다. 특히나 쇼 비즈니스라는 배경 덕에 영화는 화려한 무대와 세련된 비주얼로 모든 것을 압도한다. 역동적인 테크닉을 자랑하는 칼군무, 하늘을 가르는 유려한 공중곡예, 손과 발은 물론 술잔과 의자 등을 이용한 다양한 퍼포먼스, 클래식하면서도 로맨틱한 의상 등의 볼거리는 러닝타임 내내 서커스장에 서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레미제라블>(2012) 이후 5년 만에 뮤지컬 영화에 다시 도전한 휴 잭맨이 펼치는, 나이가 무색할 정도의 빠르고 격렬한 안무에 눈이 호사스럽다.
뮤지컬 영화의 가장 강력한 무기는 바로 음악. 휴 잭맨과 미셸 윌리엄스가 부르는 ‘어 밀리언 드림스’(A Million Dreams), 잭 에프런과 젠데이아의 ‘리라이트 더 스타스’(Rewrite the Stars), 모두가 합창하는 ‘더 그레이티스트 쇼’(The Greatest Show), 영화의 메시지를 가장 잘 담은 ‘디스 이즈 미’(This Is Me) 등의 삽입곡은 강한 중독성을 자랑한다. <라라랜드> 음악팀이 합류해 만든 이들 곡은 <라라랜드>의 ‘시티 오브 스타스’(City of Stars)에 버금가는 ‘올해의 후크송’에 등극할 만하다.
영화 <위대한 쇼맨>의 한 장면. 이십세기폭스코리아 제공
영화가 전하는 메시지도 뭉클하다.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냉담한 시선을 감내해야 했던 서커스 단원들이 자존감을 회복하고 편견을 깨며 세상으로 나서는 모습은 촉촉한 감동을 선사한다. 인종과 신분의 벽을 넘어 사랑을 택하는 필립과 앤의 용기, “누군가를 행복하게 만드는 것이 진짜 예술”이라는 바넘의 소신도 특별한 울림을 전한다.
피니어스 테일러 바넘의 또 다른 별명은 ‘지상 최대의 사기꾼’이다. 한시간 반 동안 휘황찬란한 쇼에 눈과 귀를 맡기노라면 “세상은 꿈이 있어 살 만하다. 우린 누구나 특별하다”는 확신이 밀려온다. 그것이 비록 쇼가 끝나면 들통날 사기라 해도 뭐 어떠랴. 잠시라도 행복할 수만 있다면.
유선희 기자
duc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