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정우의 요즘 스케줄은 한마디로 “아이돌 수준”이다. 극장가 연말 대전에서 <신과함께-죄와벌>과 <1987>을 연달아 선보이다 보니 무대 인사만 35번을 소화했다. 19일 삼청동 한 카페에서 만난 하정우는 “꿈같은 이야기지만, 쌍천만을 달성하면 친구들이 여권 사본 보낸다더라”며 폭소를 터뜨렸다.
그는 하루아침에 “생태계 교란종”이 됐다. “하루는 <신과함께>, 하루는 <1987>을 홍보하니 이쪽에도, 저쪽에도 못 끼는 이상한 현상이 벌어져요. 사실 <강철비>도 제 소속사 대표인 정우성씨 영화라 3편 모두 저랑 연관이 있어요. 침묵으로 지켜보렵니다. 하하하” 당혹스러운 질문마다 특유의 ‘유머’로 넘긴다. <신과함께>(롯데)가 마련한 인터뷰에서 <1987>(씨제이) 질문이 절반이라는 지적에 “인터뷰 부대비용을 두 배급사가 나눠 냈으면 마음이 편할 텐데. 뭐, 돈을 낸 롯데에 의리를 지켜야죠?”라며 눙치는 식이다.
<신과함께>는 저승에 간 자홍이 그를 변호하고 안내하는 ‘삼차사’와 동행하며 칠지옥의 심판을 받는 이야기다. <1987>은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으로 불붙은 ‘6월항쟁’을 다룬다. 서로 다른 장르지만 하정우는 두 영화 모두 자신의 역할이 “길잡이”라고 설명했다. “<신과함께>에선 자홍과 수홍의 드라마를 잘 소개하고 2편으로 가는 징검다리를 놓는 안내자(강림 차사)고, <1987>에선 사건의 무게감을 초반에 좀 덜어주며 영화 입문을 돕는 가이드(최 검사)인 셈이죠.”
두 영화는 서로 다른 의미로 촬영 내내 그를 고민하게 했다. “<신과함께>는 컴퓨터그래픽이 많으니, 찍을 때 허공에 대고 칼을 휘두르고 발차기를 해야 했어요. 하하하. 소도 때려잡을 기세로 액션을 하다 ‘뿅’ 사라지는 연기를 맨몸으로 하자니 어찌나 민망하던지…. ” <1987>은 “실존인물에 대한 예의와 존경, 그리고 사건의 무게감”이 그를 짓눌렀다.
두 편 모두 가볍지 않은 메시지를 담았건만, 하정우만 나오면 관객은 박장대소를 한다. “<1987>에서 평안도 사투리를 쓰는 박 처장(김윤석)에게 “김일성이녜?”라고 비아냥대는 대사가 제 애드리브긴 해요. 그래도 그렇지. 너무들 웃어~ 조만간 호러물에 출연해 이미지 리셋 좀 해야겠어요. 하하하.”
그는 <신과함께>를 둘러싼 일부의 비판과 우려에도 재기넘치는 답변을 내놨다. ‘신파’라는 지적엔 “신파를 너무 낮잡아 보는데, 셰익스피어 작품도 모두 신파다. 신파 없이 이 영화의 메시지에 어떤 우표를 붙여 관객에게 보내겠냐”고 답했다. 반면, 원작 팬들의 불만에 대해선 ‘철저한 이해’를 표했다. “전 스타크래프트의 프로토스 유저인데, 이 게임을 모티브로 한 영화엔 저그와 테란 종족만 나오는 거예요. 매우 분개했죠. 그 심정 100% 이해해요.”
<1987>을 보게 될, 촛불을 들었던 젊은 세대에게 전하는 당부도 잊지 않았다. “<1987> 속 주인공들에게 감사하는 것처럼, 30년 뒤엔 우리가 들었던 촛불도 후대가 감사할 역사가 될 지 몰라요. 그런 의미에서 <1987>이 소중한 경험이 되길 바라요.”
사실 내년 여름에도 그는 올겨울과 비슷한 상황에 처할 ‘위기’다. <신과함께2>와 <피엠시>가 개봉을 기다리고 있다. “제발 그것만은 피해달라고 빌어보려고요. 아 놔~”
“활짝 열린 하정우의 시대”는 당분간 계속될 듯하다. 일단은 ‘잘 생긴 정우성’이 버티고 선 <강철비>를 넘어야 한다. 하정우만의 ‘무기’를 물었다. “뭘까요? 하정우 자체가 무기? 하하하.” 분명한 건, 올겨울 어떤 선택을 하든 관객은 3분의2의 확률로 하정우와 만나게 돼 있고, 후회는 없을 거란 점이다. 유선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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