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과는 너무 거리가 먼 배우 강동원이 세상에서 가장 평범한 남자를 연기했다. 14일 개봉한 영화 <골든슬럼버>에서 그는 유력 대통령 후보 암살 누명을 쓴 착하고 평범한 택배기사 ‘건우’ 역을 맡았다. “배우라는 직업 빼면 평범한 사람”이라는 그를 개봉 당일 종로구 삼청동 한 카페에서 마주했다.
강동원은 사실 이 영화에 ‘무한책임’이 있는 사람이다. 7년 전 일본 원작 소설을 읽고 ‘영화사 집’ 대표에게 영화화를 제안한 이가 바로 그다. “당시에는 그냥 원작이 재밌고 흥미로웠어요. 다소 허무맹랑 하지만 한 번쯤 해 볼 만한 이야기라 생각했죠. 그런데 7년이란 시간이 흐르면서 정말 영화 속 사건이 일어날 것만 같은 현실감이 들더라고요. 7년 동안 사회 분위기가 점점 무서워졌잖아요? 촬영하는 동안에 우리도 ‘타깃’이 되는 거 아니냐 싶기도 하고. 하하하.”
제안도 강동원이 했지만, 영화를 전적으로 책임지는 것도 강동원이다. 그간 많은 영화의 주인공으로 나섰지만, <골든슬럼버>처럼 홀로 끌어간 적은 없었다. 부담감도 컸을 법하다. “아무래도 책임감이 더 크죠. 누가 도와줄 사람도 없고, 감독님도 상업영화로는 신인이시니. 그래도 젊은 감독과 작업하니 편한 부분도 있었어요. 서로 아이디어도 편하게 이야기했어요. 영화 속 ‘조작된 가짜 건우’ 역시 제가 연기하는데요. 선해 보이는 왼쪽 얼굴로 ‘건우’를 연기하고, 다소 날카로워 보이는 오른쪽 얼굴로 ‘가짜 건우’를 연기하자는 아이디어도 제가 냈어요.”
고교 밴드부 동창으로 출연한 김성균(금철), 김대명(동규)과 ‘동갑내기’인 점도 촬영장 분위기를 화기애애하게 만드는 데 일조했다. “성균이는 <군도> 때 저를 죽창으로 찔러 죽이는 역할로 출연하며 알게 됐는데, 하하하, 이번에 정말 친해졌어요.” 영화를 보는 내내 ‘방부제 외모 강동원과 김성균·김대명이 어찌 동갑일 수 있나’라는 생각이 들 것 같다니 그는 “우리 다 동갑 맞다. 내가 또래보다 ‘조금’ 어려 보이긴 하지만, 고등학생으로 나오는 회상신을 찍으며 이젠 나도 점점 무리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컴퓨터그래픽(CG)과 색 보정으로 만져줘서 그나마 다행인데, 성균이를 고등학생으로 보이도록 작업하는 데 힘들었다고 하더라”는 우스개도 덧붙였다.
<골든슬럼버>는 단순한 오락영화만은 아니다. 그 안에 인간에 대한 신뢰의 중요성, 그리고 잘못된 공권력 때문에 망가지는 평범한 사람의 고통이 녹아 있다. “과거에 억울한 일을 당했다가 (재심에서) 무죄 판결받는 분들이 최근 많이 있는데, 제대로 보상도 못 받잖아요? 그리곤 곧 잊히죠. 이 영화가 그런 분들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는 계기가 됐으면 해요.”
그는 영화 <1987>을 찍고 난 뒤로 ‘사회구성원으로서의 책무’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게 됐다. “배은심 어머님(이한열 열사의 어머니)을 만나며 새 할머니가 한 분 생겼죠. 이한열 열사의 일기와 관련 책 등을 읽고 준비를 하면서 우리가 잊고 지냈던 역사적 부분을 많이 곱씹게 되더라고요. 사실 그 영화에서 빠져나오기가 쉽지 않았어요. 새 작품을 찍으면서도 문득문득 떠올라 감정이 흔들렸어요.” 배은심 어머니는 <1987>은 끝내 보지 못했지만, 대신 <골든슬럼버> 시사회장을 찾았다고 한다. “‘또 힘든 걸 했네. 왜 이렇게 힘든 역할만 하냐’고 말씀하시며 안쓰러워하시더라고요. <1987>을 찍을 때의 고통에 견주면 사실 그리 힘든 건 아니었는데….” 그는 배은심 어머님이 <1987> 포스터에 자신(강동원이자 이한열)이 없는 점을 못내 서운해하셨다며 “기회를 봐서 내가 직접 제작해 드릴까도 고민 중”이라고 했다.
<골든슬럼버>는 일본판(2010)이 먼저 만들어졌다. 한국판은 일본판보다 규모도 크고 스피드와 리듬감이 더 살아있다. 광화문 폭파 신이 특히 인상적이다. “허가받는 데 힘들었어요. 일요일 하루 4시간 촬영허가가 떨어졌는데, 찍는 동안 인터넷에 촬영장면이 실시간으로 뜨더라고요. 하하하. 한쪽에선 촛불집회하고, 한쪽에선 태극기 집회를 하는 시기에 광화문에서 영화 찍는 것도 새로운 경험이었어요. 폭파신 찍고 청와대에서 경찰에 연락이 왔대요. 경호팀이 놀랐나 봐요. 하하하.” 광화문 폭파신 허가가 한 번 엎어지면서 제작사가 큰 손해를 보기도 했다. “한국은 촬영허가 시스템이 구축이 안 돼 있어요. 경찰·서울시·국토교통부 등에 따로 허가를 받아야 하고요. 시스템이 좀 바뀌었으면 해요.”
그는 ‘개고생’해서 찍은 장면이 많이 빠져 아쉽다고 했다. “비틀스의 ‘골든슬럼버’ 부르는 장면이 왜 없느냐고들 하시는데, 불렀거든요? 근데 빠졌어요. ‘골든슬럼버’, ‘그대에게’, ‘힘을 내’까지 다 연습시키더니…. 그 추운 날 해병대 대기시키고 바다 수영 장면도 찍었는데, 다 들어냈더라고요. 에잇!”
강동원은 현재 김지운 감독의 차기작 <인랑>을 촬영 중이다. 40㎏짜리 옷을 입고 뛰고 달린다. 남성미가 넘치는 역할인 탓에 몸을 만드느라 운동도 열심이다. <인랑> 촬영이 끝나는 3월 말엔 할리우드 진출작인
촬영이 시작된다. “영어요? 대사 외워서 할 정도는 되니까 캐스팅이 되지 않았을까…. 하하하. 안정적인 길만 가면 재미가 없잖아요? 그래서 도전했어요. 제가 조금 더 유명해지면 언젠가 한국영화도 ‘아시아 동시개봉’, ‘전 세계 동시개봉’을 할 수 있지 않을까…. 목표이자 바람입니다.” 유선희 기자 duck@hani.co.kr